《퀀텀스토리》 7부 양자적 우주론 양자역학 이전 물리학에서는 중력을 이해하는 문제가 중요했다. 시간과 공간을 동등한 차원으로 이해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20세기 물리학의 새로운 지점이다. 문제는 이 일반상대성이론이 양자역학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시공간이라는 배경과 무관하다면, 양자역학은 공간이라는 배경 속에서 파동과 입자를 설명했다. 양자역학의 공간은 수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입자들의 세계이다. 이제 물리학자들의 새로운 과제는 중력이론(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일이 되었다. 중력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이론을 양자중력이론이라고 부른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과거 뉴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우주의 현상들을 설명해주었다. 물리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해야 비로소 우주에 대한 설명이 통일된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믿었다. 자, 이제 두 이론을 통합하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고된 여정이 시작된다. 마이스너라는 물리학자는 ‘양자중력에 이르는 세 가지 길’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게이지대칭성에 기초한 양자화 방법으로 ‘정준접근법’이라 불린다. 두 번째는 리처드 파인먼의 경로적분을 이용하는 법, 세 번째는 가상의 ‘평평한 공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의 일반적 공변성을 만족시키는 ‘공변접근법’이다. 정준접근법이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와 물체의 역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공변접근접은 양자장이론과 중력의 매개 입자인 중력자에 중점을 둔다. 최초의 양자중력이론은 존 휠러와 브라이스 디윗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디윗은 초기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양자파동방정식에 시간이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디윗은 시간이 본질적 실체가 아니며,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와 그 안에 있는 물체의 질량이 변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디윗은 우주의 파동함수를 설명하는 문제에서 고충을 겪었다. 외부가 없는 우주 안에서 우주를 관찰하는 일에 따르는 문제였다. 시간과 관측 문제에 대한 디윗의 고민은 휴 에버렛 3세의 다중세계 해석으로 연결되었다. 외부가 없어 파동함수를 붕괴시킬 수 없는 우주에서 관측이 이루어질 때 모든 가능성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동시에 공존한다. 1980년대 로버트 그리피스는 다중세계 해석에 영감을 받아 ‘일관된 과거’라는 개념으로 양자역학을 새롭게 해석했다. 1994년 페이 도커는 자연의 법칙에서 ‘올바른’ 과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과거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블랙홀이 입자를 생성하고 방출한다는 소련의 물리학자 젤도비치의 의견을 수용한 스티븐 호킹 역시 양자중력이론의 길에 들어섰다. 물리학자들은 미시세계 현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거시적인 블랙홀에 적용했다. 그전에는 블랙홀 연구에 주로 일반상대성이론이 적용되었으나,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양자장이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하며 서서히 ‘증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사실은 지금 ‘호킹복사’라 불린다. 표준모형에 대한 의심도 ‘초끈이론’이라는 양자중력이론으로 연결되었다. 초대칭이론과 끈이론이 결합된 초끈이론은 기본입자를 점이 아닌 1차원의 아주 작은 ‘에너지끈’으로 가정한다. 이때 입자가 각각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끈의 진동 패턴이 달라서이다. 입자의 질량은 끈의 에너지가 현실에 발현된 결과이다. 초끈이론은 모든 입자를 포함하며, 4개의 힘(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을 하나로 통일한다. 한때 ‘만물의 이론’이라 불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초끈이론의 치명적 오류 중 하나는 배경 공간에 따라 이론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끈이론의 라이벌로 등장한 ‘고리양자중력이론’의 강점은 이 배경이 되는 시공간과 무관하다는 점에 있었다. 리 스몰린과 테드 제이콥슨은 힐러-디윗 방정식을 연구하다가 1970년대에 케니스 윌슨이 도입한 ‘윌슨고리’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고리를 도입하여, 공간은 고리들 사이의 상호관계로 정의된다고 주장했다. 리 스몰린과 테드 제이콥슨의 연구는 까를로 로벨리를 만나 더욱 탄력을 받는다. 고리양자중력은 배경과 무관하지만, 상호관계 안에서 고리 주변 장에 영향을 받는다. 로벨리는 장에 대한 의존성을 없애는 형태로 고리이론을 재구성한다. 여기에 로저 펜로즈가 개발한 ‘스핀네트워크’로 입자와 장, 상호작용을 설명했다. 고리의 위치는 언제나 상대적이며, 고리는 공간 안에 아니라 다른 고리 위에 존재한다. 모든 부피와 면적을 기본 양자의 집합으로 보면, 시공간의 연속성도 사라진다. 1990년대 이후 물리학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가 물리학계 안팎에서 많아졌다. 방대한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저자 짐 배것은 물리학의 시간 대부분이 어쩌면 암흑기였다고 서술한다. 깜짝 놀랄 발견과 화려한 성과는 잠시였고, 오히려 과학에서 위기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과학의 역사는 성공보다는 실패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수한 실패를 딛고서야 혁신적인 발상이 떠올랐음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양자역학 100년사를 나름대로 상세하게 서술한 책을 읽고 나니 왜 이렇게 어려운 물리학 공부를 하느라 애를 먹는가. 하는 상념도 밀려온다. 한편으로는 물리학과 양자역학 공부를 하며 내가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양자는 에너지의 기본단위이고, 양자역학은 에너지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고정되고 불변하며 쉽게 파악 가능한 실체는 양자역학에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 우리는 이 에너지로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