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아방가르드
영화 산업보다는 아방가르드 영화가 여성에게 더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아방가르드 영화가 영화 산업에 속한 영화들보다는 저예산으로 촬영되며, 직업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 영화라고 해서 여성혐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은 별 이유도 없이 여성의 안구를 잘랐다. 또한 아방가르드 영화는 최첨단 작업을 하는 남자들의 집단이 하는 예술이었으며, 그들은 여성을 재현하는 데 무비판적이었다. 6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 안에서 성별성을 의제화할 자리는 없었다. 70년대가 되어 여성주의 예술가들은 문화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관습과 여성성의 의미를 고착시키는 도상적 관습 사이에 분열을 일으켰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작가가 영화 속에 자신을 기입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당시 페미니즘의 정치 의제였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를 영화적으로 실현시켰다. 마야 데렌, 샹탈 아커만, 발리 엑스포르트 같은 작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고 또 그것을 넘어섰다.
여성과 작가성
여성이 ‘나’를 표현하는 것은 문학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어렵다. 영화에서 여성은 ‘보여짐’으로 약호화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 ‘보여짐’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바르트의 ‘독자가 읽어 내는’ 텍스트 이론이 강조되면서 작가성은 점점 약화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작가성은 해체가 아니라 재구성의 문제였다.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영화에 출현해 ‘나’를 말하는 어려움과 싸운다. 저자는 이것이 영화 내적인 ‘나’와 외적인 ‘나’를 일치시키는 작업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와 영화 속 작가의 대리인은 서로 수행하며 서로를 오염시킨다. 작가와 영화 속 대리인은 고정된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변화 가능한 화자가 된다.
영화 스타로서의 아방가르드 작가 : 마야 데렌
마야 데렌은 미국 실험영화 계보 속 중요한 위치를 가졌다. 그는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192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와 50~60년대 미국 ‘시각’ 영화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실제로 그는 1917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61년 미국에서 죽었다) 데렌은 두 개의 국적, 세 번의 결혼, 서너 개의 직업 등 다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도 정체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오후의 올가미>, <육지에서>, <변형된 시간의 제의>. 40년대 만들어진 이 세편의 단편영화는 자신을 기입하는’ 여성 영화들의 고전적인 모델이 된다. 그는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앤디 워홀이 자신을 언더그라운드 스타로 창조하기 훨씬 전에 데렌은 이미 이미지 유통이 예술 경력에 도움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스타 이미지는 위의 언급된 단편영화 삼부작에서 분열과 분신의 수사로 주제화되었다. 그는 무용계에서 일하기도 했다. 무용과 부두교 제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에 참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영화 제목에는 의례,제의같은 낱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시에 관심을 쏟았고, 영화를 시적 구조로 이해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상징주의와 이미지즘 시를 다룬다) 실제로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영화 제작 방식을 ‘나의 모어로 된 어휘, 구문, 문법의 세계로의 귀향’에 비유하고 있다.
<올가미>는 데렌이 촬영감독 하미드와의 결혼 직후 함께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초기 초현실주의 영화로 분류되었지만, 최근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할리우드 도상학을 대항적으로 혼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데렌의 영화에서는 기존의 누아르 영화들이 전형적으로 그려 왔던 불길한 거실과 집의 이미지들이 다른 장소성을 갖게 된다. 데렌이 징후적 접근법을 거부했음에도 이 영화는 정신분석학으로 손쉽게 독해됐다. 촬영감독 하미드는 시선과 동작의 매치, 이중 노출 등 아방가르드 영화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관습적인 기법들을 영화에 넣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비범한 부분은 이런 기법들이 여성의 시각과 이 시각이 조우하는 세계에 휘발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할리우드와 대면했던 방식을 포기하고 성년식과 도주에 대한 여성적 환상을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렌은 사회성, 섹슈얼리티, 권력과 관련된 만남을 갖고, 그 경험들을 제어할 수 있는 몽상가처럼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꿈꾸는 상태에 대한 묘사를 찾기 어렵고, 영화의 시점 체계가 훨씬 간결하다. 어떤 비평가는 <올가미>가 가지고 있었던 윤택한 질감이 <육지에서>에서는 사라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해석이 <육지에서>가 가진 발전을 간과한 것이라 말한다. <올가미>에서 이성애 관계의 이분법이 주인공들의 충돌을 당연시하게 나타냈다면, <육지에서>는 그 이분법적 방식을 벗어난다.
<변형된 시간의 제의>에서 주인공인 과부는 신랑에게서 달아나 바다와 결혼한다. 이 영화의 앞부분은 60년대 행위예술의 형태인 ‘해프닝’을 예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티 장면을 정교한 집단 제의로 만드는 퍼포먼스) 나머지 뒷부분에서 데렌은 슬로모션, 반복, 정지 화면 등의 기법들을 사용해 춤을 영화화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데렌의 관심은 개인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때문에 인류학에도 관심을 가진다. 데렌은 제의가 사적인 정체성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흡인력을 갖고, 개인적인 것을 탈개인화 시킨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들어놨던 다양한 정체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이제 데렌은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저자는 데렌이 하미드와 함께 창조했던 거울의 방에서 벗어나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제의와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 갔다고 표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