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순전히 그들의 욕망인 이유 얼마 전 한 지인과 <스카이 캐슬>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난 여성 주인공들의 욕망이 드러난 작품으로 <스카이 캐슬>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지인은 그 작품에서 나타난 욕망이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욕망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했다. 다시 떠올려 본 <스카이 캐슬> 속 한서진은 완벽히 가부장제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고 있었고, 진진희는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압박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노승혜의 욕망은 가부장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즉 가부장을 벗어난 욕망은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여성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렇다. 영화에 묘사된 욕망이 온전히 여성 주인공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영화.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묘사된 욕망은 온전히 여성 주인공들의 것이었을까? 이 영화와 <스카이 캐슬>의 욕망은 서로 다른 것일까? 앤(올리비아 콜맨) 여왕은 프랑스의 운명을 쥐고 있을만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그 권력이 어떻게 앤에게 주어지게 됐는지 묘사하지 않는다. 앤이 어떻게 왕좌에 올랐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냥 권력만 있을 뿐이다. 앤에게는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되어서도 자신의 권력을 물려줄 자식 한 명 조차 없다. 즉 앤의 권력은 그의 남편이나 가족에 기대있지 않다. 따라서 앤의 권력은 그의 가족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된다. 가족이 없는 왕.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왕의 권력은 가족에서 나와 대물림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앤의 권력은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 있었다. 애비게일(엠마 스톤)과 사라(레이첼 와이즈)는 서로 앤을 차지하려 한다. 사라는 여왕의 뒤에서 영국을 대신 통치한다. 사라의 목적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해서 치르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을 고집했다. 나는 사라의 욕망을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 그 이유는 사라가 자신의 남편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전쟁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와는 반대로 여왕을 혼자 독차지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전쟁을 고집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애비게일의 신분은 아버지 때문에 낮아진다. 애비게일의 신분이 다시 높아지기 위해선 남성들의 힘이 필요하다. 야당의 당수는 애비게일과 함께 사라를 몰아내고, 마샴 대령과의 결혼으로 애비게일의 신분은 상승한다. 이 남성들은 애비게일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애비게일의 욕망은 오직 자신의 신분 상승이다. 그는 당수와의 대화에서 이 모든 것이 대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솔직하고 정치적이다. 이 영화 속에선 그 누구도 대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당수는 대의를 위해 싸우는 듯 보이지만, 정말 그런가? 그가 대변하는 지주들의 욕망이 정말 영국 국민 전체의 욕망일까? 그는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고 수도 없이 말한다. 그러나 망해가는 나라를 구한 것은 당수의 정치술이 아니라 애비게일, 개인의 욕망이다. 애비게일과 <스카이 캐슬>의 혜나는 비슷한 인물이다. 둘 다 신분 상승을 위해 캐슬에 들어가며, 라이벌과 싸운다. 그러나 둘의 결말은 180도 다르다. 혜나의 욕망은 가부장의 선택을 받는 것이었고, 결국 선택받지 못해 죽었다. 애비게일의 욕망은 주변의 남자들에게 선택받는 게 아니었다. 이 작은 차이가 정반대의 결말을 내는 원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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