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터러시 < 짱개주의의 탄생> 2022.10.20. 손미경 제 5부 짱개주의의 프레임1: 유사인종주의 1. 유사인종주의를 어떤 민족이나 국가는 무엇을 해도 나쁘다는 인식체계라고 할 때 중국을 미개하다고 규정지으면 미개한 국가인 중국은 무슨 일이든지 벌일 수 있는 국가로 규정 할 수 있다. 사실 ‘미개한 중국’이라는 프레임에는 거대한 중국의 등장에 따른 공포와 불안이 숨어있다. 2. 더 나아가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개한 중국에서 나쁜 중국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데 화웨이를 예를 들어 보면 미국은 화웨이를 스파이 기업으로 규정지었으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업을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고 일당 독재이기 때문에 이 기업이 독재를 돕거나 독재국가들이 악용할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종의 민족인종주위라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은 나쁜 중국의 논리를 그대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한국 언론은 습관처럼 중국의 정치 외교적 행위를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언어로 규정한 ‘중국의 보복’ 또한 유사한 프레임으로 사드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3. 중국이 문제다. 결국은 ‘문제는 중국’으로 상대방의 행위는 무엇을 해도 정당하다는 프레임이다. 즉 중국의 외교를 ‘전랑 외교’ 라고 부르고 이를 문제 삼는다. 중국의 외교가 영화 ‘전량’에 나오는 전사들처럼 툭하면 싸우는 외교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이 중심이 되어 신 냉전 정책을 수행하면서 일부 서구 언론들이 적극 활용한 신조어이다. 이프레임의 함의는 중국의 힘은 늘 갑 속의 칼 로 남아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국가관을 담고 있다. 4. 단하나의 중국. 한국 언론은 시진핑을 독재자로 간주, ‘시진핑의 중국’이라는 프레임에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중국을 하나의 색깔로 표상해 차별하는 유사인종주의가 숨어있다. 이 독재국가 프레임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표준화한 결과물이다. 서구의 대의제를 표준으로 정하고 그것을 민주라고 정의하면 중국은 서구화되지 않는 이상 중국은 비민주적 국가일 수밖에 없다. 시진핑을 황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잣거리에서나 통할 수 있는 몰역사적 규정이다. 사실 시진핑 독재설 보다 조영남 교수가 주장하는 ‘시진핑 CEO’이나 영국의 중국 전문가 케리 브라운의 ‘시진핑 교황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은 1인 지배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라고 본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제지만 일당에 헤게모니를 부여하는 시민들에게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데, 공산당 일당독재가 중국민이 찾아낸 최적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푸탄대 장웨이웨이) ‘시진핑의 중국’이 아니라 ‘중국민의 시진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진핑의 외교사상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중국민이 바라는 외교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민의 중국정부에 대한 신뢰는 시진핑 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 혁명 이후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뽕’은 동원된 애국주의가 아니라 자발 적 참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6부 짱깨주의 프레임 2 : 신식민주의 체제 옹호 1.중국이 성공할 리 없다. 한국 언론의 중국 미래에 대한 보도도 대개 ‘판다는 날 수 있을까?’라는 프레임 위에 서 있는데 이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 프레임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서방세계에서 끊임없이 얘기해온 ‘사회주의 중국이 성공할 리 없다’는 중국 붕괴론의 새로운 버전이다. 시진핑의 경제가 실패할 거라는 예측의 주요 근거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 경제에 개입한다는 것인데 사실 중국 경제는 실제적으로 일국 중심의 폐쇄 경제가 아닌 글로벌화 하며 세계경제로 나아갔다는 것인데, 오히려 부족한 개방이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개방이 문제 (아리기)일 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중국이 망한다’라는 전망은 대부분 예측이 아니라 일종의 기원이었고, 그런 기원들은 지금까지 실패했다. 또 전형적이 오리엔탈리즘적 유사인종주의의 한 형태인 대륙시리즈인데 중국과 중국민 전체를 표상해 버리는 ‘짝퉁의 나라’라는 시대에서 ‘대륙의 실수’의 시대로 진화했다.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기업이 샤오미. 실수가 거듭되어 이제 실력이 입증되고 있는데도 ‘대륙의 실수’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침묵한다. 중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프레임을 사용하다가 성공한 사례가 등장하면 대륙의 실수라는 프레임을 가져와 결코 중국은 성공할 수 없다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까닭은 신 냉전체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부상하다면 중국대안론이나 다자주의, 탈냉전체제의 움직임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을 단숨에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2. 중국은 패권을 추구한다. 미중 충돌이 가속화되면서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견제 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이 투키디데스 함정론 (그레이엄 앨리슨) 이에 다르면 중국의 부상은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이며 미중간의 충돌은 불가피하고 미국이 중국을 이기니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논지. 그러나 투키디데스 함정은 필연이 아니라 가능성이며 제어 가능한 상태라 판단한 점과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주장이 있음에도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들은 충돌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전쟁과 폭력의 20세기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신식민주의적 담론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투키디데스 함정론의 밑바닥에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깔려있다. 이런 주장의 세력의 목적은 분명하다. 다자주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원천 봉쇄이다. 아님 조금 더 나아가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 세계에 대한 정도. 결국 미국도 중국도 이기지 못하는 다자주의 세계는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프레임이다. 3. 중국은 다시 한반도를 지배할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에 유통되고 있는 중국인식은 중국의 북한 병합에 대한 가능성이다. ‘북한이 중국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대략 3가지 가설의 합체품인데, 북한은 무너질 가능성이 높고 중국은 북한을 자기 영토에 편입할 필요성과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동아시아의 역사와 북한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이다. 오히려 중국에게는 병합을 하려는 의지보다 통일이 되어 강해지고 중국에 적대적일 수 있는 ‘코리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존재한다고 보여 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중국의 상황인데 키신저 시스템에서 고도로 성장하여 G2가 된 중국은 ‘지금 이대로’가 최고의 시나리오로 다른 나라 북한을 점령할 것이라는 가설은 안보 보수주의자들의 ‘상상된 중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또한 자본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치환하는 대표 프레임으로 ‘연예계의 내정 간섭’이 있다. 한국 보수 언론이 중국인 문화산업 소비자를 피하는 태도는 매우 이중적인데 그들은 한국 문화 사업이 중국으로 진출하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지원한다. 그러나 이를 소비하는 중국소비자에게는 국적을 붙이고 유사인종주의를 작동시킨다. 글로벌 세계 경제체제 아래 자본이 국경을 초월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소비자나 노동자에게 국적을 붙여 권리를 제약할 때 동원하는 수단이 인종주의 이다. 또한 중국 네티즌의 반응을 두고 ‘연예계의 내정간섭’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글로벌 문화 산업 시대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안보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격이다. 4.미국편에 서야한다. : 사라진 탈식민주의 꿈 미국이 옳은가? 한국의 보수 언론은 미중 무역전쟁 초기부터 줄곧 미국편에 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키신저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정책을 지행하면서 신 냉전체제로 귀환을 서두르자 경제를 희생해서라도 미국편에 서야한다는 논리를 본격 강화시켰다. 이때 우리에게 강요된 프레임은 ‘미국이 옳다’ 이다. 이 논리의 대표적 아젠다는 미국의 군사비 증강이다. 냉전으로 적이 사라진 이후에도 군사 개입은 더 늘어났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은 미국적 이익을 위해 군사를 파견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다. 탈군사주의적 세계를 지향한다면 어떤 목적을 둘러대더라도 군비 증강은 그 자체가 나쁘다.(스테판 베르트하임) 그는 미국이 아니더라도 자유를 지킬 사람은 많다며 오히려 “미국의 군사주의가 덜한 세계가 일반적으로 군사주의가 덜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언론은 군사비 증강을 미국이 옳다는 프레임으로 접근 했다. 미국이 옳다는 전제하에 앞으로 미중 패권 다툼에서 당연히 미국이 이길 것이며 (앞서 말한 유사인종주의 시각과 미국 중심의 신식민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와 별도로) 나아가 미국이 이겨야 한다는 웃기는 이데올로기 이다. 하여튼 이 이데올로기는 안보적 보수주의 진영으로 하여금 미국이 옳고 미국이 이기니 중국을 버리고 미국편에 서라는 강요를 끊임없이 작동하게 한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은 미국도 중국도 우리에게 그들의 편에 서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대이다. 우리의 힘은 커졌고, 다가온 다자주의 세계에서 동아시아를 키신저 시스템 구축 이전으로 되돌리고 샌프란시스코체제 전선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 미국의 대중 미사일을 한국에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일은 식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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