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3장 27. 포스트휴먼 관점주의 ~ 30. 다중우주
탈-인간주의, 탈-인류중심주의, 탈-이원론을 표방하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상대주의는 절대주의를 필요로 하는 이원론일 뿐이다. 포스트휴먼은 관점주의가 필요하다. 관점주의는 니체로부터 시작됐다. 니체에게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란 없다. 그저 상황적 관점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은 없고 오직 해석뿐이며, 진리가 아니라 진리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탈-진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니체의 철학은 신체적이다. 관점주의는 필연적으로 신체화되어 있다. 니체는 후기 저작에서 신체가 물리적이라는 전제를 거부한다. “모든 것은 힘에의 의지”임을 강조한다. 행위성은 생물학적 유기체에 한정될 필요가 없이 비유기적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적 단체나 체계 또한 성찰할 수 있다. 신체화는 디지털일 수도 있고, 가상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꿈일 수도 있다.
포스트휴먼의 존재론적 국면을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흐름이 바로 신유물론이다. 신유물론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 로지 브라이도티와 마누엘 데란다가 각각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물질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여성주의 논쟁에서 이들은 물질을 물질화의 과정으로 간주한다. 문화가 물질적으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ex. 여성의 몸)도 문화적으로 매개되어 있다. 신유물론은 물질을 계속 진행되는 물질화의 과정으로 보고, 과학(양자물리학)과 문화(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모던) 이론 사이에서 화해를 모색한다.
신유물론 사상가들이 안고 있는 위험 중 하나는 생기론이다. 생기론은 전-과학적 전제를 수반하며 궁극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생명 개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신유물론 사상가들은 생기론이라는 용어를 스피노자-들뢰즈 계보학으로 접근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개념을 생기와 연결하는 것이다. 생기는 단순한 물질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변한다. 그 결과 물질성과 물질 사이의 이원론으로 선회한다.
제인 베넷은 <생동하는 물질: 사물의 정치생태학>에서 명시적으로 생기론을 표방한다. 베넷은 “생기적 물질성”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의 존재론적 특권보다 비인간 물질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은 윤리적 결과를 함축한다. 생기론적 유물론자는 비인간(동물, 식물, 지구, 나아가 인공물과 상품)을 보다 조심스럽게, 보다 전략적으로, 보다 생태적으로 다루게 된다. 베넷의 전략은 생태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에서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철학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인간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덧) 생기를 고유 진동수를 가진 물질의 전자기파로 생각하면 더 신유물론에 가까운 주장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음.
캐런 버라드는 <우주와 타협하기: 양자물리학, 그리고 물질과 의미의 얽힘>에서 이론물리학에서의 전문적인 식견과 여성주의 이론을 결합한 행위적 실재론을 제안한다. 행위적 실재론은 현상의 개념을 “내부-작용하는 행위성의 존재론적 분리 불가능성”으로 재정의하고 비인간 영역의 행위성을 인정한다. 행위적 실재론은 관계적 존재론에 기초한다. 물질에 대한 버라드의 이론적 연구는 선과 악을 넘어선다. 버라드는 기원의 환영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 자신도 내부-작용이다. 이와는 달리 베넷은 그의 출발점과 윤리적 전략을 규정되지 않은 생기적 원리로 개별화한다.
그레이엄 하먼은 객체지향적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을 주장한다. 객체지향적 존재론은 2010년대 초반에 뚜렷해진 철학적 운동으로, 객체, 보다 구체적으로는 객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다시금 주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객체를 주체에 의존하거나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고려해보자는 취지다.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과 OOO 둘 다 철학적 존재론의 혁명에 속한다. OOO는 생각하는 인간 존재를 한 종류의 존재물로, 비인간 동물, 비활성 존재 그리고 인간 신체를 또 다른 종류로 보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OOO에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첫 번째 분석틀인 탈-인간주의가 빠져 있다. 인간 개념은 여전히 “중립적”이고 일반화된 인간 주체를 가정한다.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을 자명하거나 당연하지 않은 항으로 이해한다.
마누엘 데란다는 들뢰즈의 개념을 발전시켜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ies)을 주장한다. 평평한 존재론은 존재론적 위상이 아닌 시공간적 크기에 의해서만 차이가 나는, 유일하고 특이성을 가진 개별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론이다. 평평한 존재론 개념은 OOO에서 더욱 발전되었으며, 인간이 특권적 지위를 갖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전략적인 탈-인간중심주의를 취한다.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존재론을 보다 면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인간도, 로봇도, 해파리도, 장미도 모두 물질이다. 물질이란 무엇일까? 물질은 관계적이며, 하나의 결정된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 초끈이론에 의하면 물질은 끈의 진동과 관계가 있고 동시에 끈의 진동으로서 나타난다. 모든 물질은 입자-파동의 이중성과 양자적 얽힘 상태에 있으며, 입자(물질)가 관찰되는 방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구분의 해소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 사이 구분의 해소와도 통한다. 캐런 버라드의 관계적 존재론도 같은 선상에 있다.
양자물리학은 관계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이원론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며, 인지적 자기생성 그리고 관점주의와 동일선상에서, 주체와 객체를 관계적이고 상호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초끈이론은 지금의 이 특정한 차원이 다수의 차원 중 하나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다중 우주 가설을 제시한다. 이 우주가 여러 우주 중 하나라는 것. 이는 우주 중심적 관점을 확대하고, 엄격한 이항들, 이원론적 양태, 배타주의적 접근의 해소를 구체화된다. 다중우주는 인간의 궁극적인 탈중심화이자 엄격한 이원론의 최종적인 해체를 표상한다.
철학 영역에서도 다중 우주 개념이 있다. “다중 우주”라는 용어는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에세이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가?>(1896)에 처음 등장했다. 철학의 영역에서 가능 세계 개념은 라이프니츠의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프니츠는 현실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이라 주장했다. 다른 세계들이 존재한다면 이 세계들은 어떤 것을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포스트휴먼 다중우주 사고실험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의 존재 방식이 다차원적인 진동 효과를 가졌다면 어떨까? 모든 차원은 다른 여러 존재 양상들과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의 자기생성적 양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리좀 개념처럼 끊임없이 교차하고 겹치기도 하면서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탈-인간주의, 탈-인류중심주의, 탈-이원론을 표방하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우리 시대의 철학이다.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이원론적인 경향이 규범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존재들이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를 자각하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실천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열린 연결망으로 접근하며, 이 행성에 대한 우리의 영향, 결과들 그리고 정서가 얼마나 넓고 또 방대한지, 그리고 얼마나 얽히고 미묘하고 확산된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과정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다른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의 한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다. 인간성을 다중보편성 안에, 자아를 타자성 안에 계보학적으로 재배치하면서, 개방적으로 사고하라는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이론.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은 개인적 견해에서부터 종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른 수준의 이해에 적용할 수 있는 급진적인 전환을 가져다줄 것이다.
덧) 여성주의와 양자물리학 없이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