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권력》 1장 선제 우선주의, 2장 국가사업 비상사태 브라이언 마수미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 선언 이야기로 ‘존재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마수미가 말하는 ‘선제성’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선제는 예방과 다르다. 예방이 원인을 아는 일에서 시작된다면, 선제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예방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사건과 관련된다면, 선제는 오히려 선제를 통해 실재하리라 예견된 사건을 실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예방이 불가능한 곳에서 억제가 출현한다. 억제는 인지되고 측정이 가능한 위험에 대비하는 일이다. 억제의 대상이 되는 위험은 외부의 것이지만, 억제의 프로세스는 내부에 원인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억제는 원인을 스스로 생산하면서 프로세스의 토대로 삼는다. 군사적 억제는 ‘상호 확증 파괴(MAD)’라는 이상한 상호성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행위를 통해 원인을 생산하는 억제의 과정은 자가 추진력을 가진 자율 주행 프로세스와 같다. 선제는 억제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선제는 불확실성에 대응하지만, 선제가 효과적이라면 불확실한 위협은 결코 구체화되지 않는다. 언제나 위협은 잠재적인 상태로 남는다. ‘악의 축’이라는 부시의 규정은 새로운 정보가 아닌 도덕적 무지를 드러낸다. ‘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에만 ‘인간성’을 부여한다면, 선제의 대상은 ‘비인간’으로 규정된다. 여기서 ‘비인간’은 죽여도 되는 대상이며, 도덕적 무지는 이 존재론적 비대칭을 정당화한다. 마수미는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군사적 ‘선제’에서 존재권력을 보며, 이 선제권력이 존재권력의 한 양식이라고 말한다. 존재권력의 특성은 푸코가 설명한 주권권력, 규율권력, 생명권력(생명정치와 통치성)과의 연속성과 비교 속에서 드러난다. 푸코는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군주의 권력이 근대에 와서 억압 대신 규율을 내면화하는 형태로 이행했다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는 다시 살리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권력과 결합한다. 푸코가 설명하는 권력에는 위의 세 가지 특성이 혼재하며, 존재권력 역시 마찬가지다. 존재권력은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사이에서 주권권력을 재창안하면서 나타난다. 마수미가 권력의 형태와 작동방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시 행정부의 문제를 단지 부시라는 인물의 무지함이나 폭력성, 보수성과 연결하여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시 이후 오바마 행정부 역시 부시가 유용하게 사용한 ‘선제성’을 철회하지 않고 일정 부분 유지하는 전략을 보였다. 부시는 군사적 ‘선제성’을 테러 위협이 아닌 카트리나 허리케인 때도 이용했다. ‘비정상적’이며 ‘비인간’적이었던 불확실한 테러에 대응하던 선제성은 이제 ‘비정상적인’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무기가 된다. 기후에 ‘정상성’이 적용되면서 이제 기후는 테러보다도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 인식된다. 전 지구적 위험인 기후가 인간의 규정인 ‘정상성’에서 작동할 리 없음을 감안하면, 이 위험을 대비하는 선제적 권력의 크기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가 된다. 자연에 대항하겠다는 부시의 태도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낳는다. 테러리스트와 자연재해, 생화학테러와 팬데믹이 한데 묶이면서 선제성은 원인과 대책을 함께 만들어낸다. 자연은 이제 시스템의 진화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비결정성의 힘으로 이해된다. 이런 측면에서 오바마는 ‘국가 안보’와 ‘자연 안보’를 동화시켰다. 우리가 ‘자연’과 ‘문화’라고 부르던 대상은 이제 구분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순수한 자연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제권력은 삶의 환경적 조건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환경에는 우리가 ‘문화’와 ‘자연’이라고 부르던 것이 모두 포함된다. 부시가 카트리나 허리케인 피해 현장에서 우리의 목표는 ‘삶을 되찾는 것’이라 말했을 때, 이 ‘삶을 되찾는’ 환경적 권력이 바로 존재권력이다. 존재권력은 자연의 창발적 힘을 이겨내고 그 힘을 대항-모방하면서 다시 합류한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프로세스였다.
마수미는 생명정치를 존재권력과 대조하면서 재사유하려 한다. 아감벤은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을 가져와 동물성을 배제하면서 인간-예외주의로 돌아간다. 마수미는 푸코가 아감벤과 달리 ‘자연의 주체들’(비인간 주체들?)에 대해 고민했음을 강조한다. 푸코는 통치성을 생물학적 인간-종보다 인구나 안전, 영토 등 환경적 조건과 관련하여 다루었다. 마수미도 푸코와 마찬가지로 이 환경적 조건에서 존재권력의 작동지점을 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