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자본 1 다시 자본을 읽자》 1 『자본』, 나를 긴장시키며 나를 매혹하는 책 2 『자본』, 우리 시대를 명명하고 우리 시대를 비판하다 3 『자본』이 비판한 정치경제학이란 무엇인가 4 정치경제학의 위선-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왜 더 가난한가? 5 과학에 대한 비판은 과학보다 멀리 간다 많은 이들이 『자본』을 객관적인 이론보다 편파적인 주장이자 선동이라고 말한다. 저자인 마르크스 역시 학자보다 정치가나 선동가로 아는 이가 많다. 이런 평가를 오해라고 할 수 있을까? 《북클럽 자본》의 저자 고병권은 이런 평가가 오해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은 세간의 평가대로 주관적이며 편파적인 주장을 담은 책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책을 읽을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서 책을 썼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학문 자체의 객관성을 의심하고 부정한다. 마르크스는 단지 『자본』이라는 책을 쓴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책을 통해 모든 지식이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안에서 가능함을 보여주려 한다. 어떤 지식도 시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같은 시대와 지역 안에서도 모두에게 통용되거나 이로울 수는 없다. 마르크스는 자기 시대 특정 지역과 계급에 속한 이들에게 이 점을 알리려 한다. 마르크스와 동시대에 살지 않으며 지역도 다른 우리에게 마르크스의 지식은 유용할까? 책에서 언급되듯 20세기에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마르크스의 글은 낡은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더 첨예하게 발전한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의 시대 초기에 자본을 이해하려고 했던 마르크스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가 필요하다. 『자본』의 부제목은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자본』의 이해를 돕는 이 책은 ‘정치경제학’과 ‘비판’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단어의 조합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목이 마르크스의 작업 전체를 설명하는 중요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비판하는 ‘정치경제학’은 서구의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정치경제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 영역이었던 ‘폴리스’와 사적 영역이었던 ‘오이코스’를 결합한다. 가정관리술이 국가통치술로 확장되었다는 말이다. 이 결합과 확장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경제학은 한 국가의 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하는 학문이 아니며, 특정 계급의 이익을 도모한다. 개별 인간의 집합을 ‘인구’라는 개념으로 통칭하고 ‘사회’를 내세우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착취와 일방적인 희생을 정당화한다. 정치경제학의 모순은 ‘빈곤’ 문제를 다룰 때 잘 드러난다. 정치경제학자들은 빈곤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았고, 빈곤의 사회적 효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빈곤이 ‘사회’라는 개념을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변화시킨 점은 분명하지만, 빈곤은 태생부터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였다. 가치의 축적은 노동력(인간)의 축적을 통해 가능했고,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임금을 낮추려면 언제나 과잉인구가 필요했다. 부의 증대와 빈곤의 증대는 함께 나타나며 분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경제학을 통해 형성된 국가의 부가 구성원 일부에게는 부를, 다른 일부에게는 빈곤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엥겔스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경제학은 ‘국민경제학’이 아니라 ‘사적 경제학’이다. 발리바르는 여기서 나아가 ‘착취’는 이 메커니즘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였음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밝혔다고 설명한다. 『자본』이 독특한 점은 당시의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이론과 현실이 다름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이론 자체를 문제 삼는다. 여기서 벌어지는 ‘착취’가 불법이라고 고발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적용되는 법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식이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도 늘 누군가에 유리하도록 편파적이었듯이 법도 언제나 편파적이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또 변화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비판’은 이처럼 그 지식이 더 이상 이전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인다. 비판은 한 학문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 학문이 기대고 있던 근거를 허물고 그 학문과 연관된 권력관계 속으로 뛰어들어 싸우는 일이다. 지금 그 학문이 아무리 보편타당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 평가 역시 앞으로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과거의 기원 속에서 현재 혹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식에는 언제나 입장이 있으며, 아무리 현명한 이라도 그의 지혜에는 의지와 욕망이 드러난다. 문제는 지식에서 입장과 의지와 욕망을 분리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입장에서, 어떤 의지와 욕망이 지식을 추동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일은 결국 정치경제학이 추구하는 이익이 나(와 내가 속한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도 역사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