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또는 의식을 설명하는 일은 과학계가 풀어내야 할 도전 과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의식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이 아직 없다. 이에 저자는 생명 물질이 가진 놀라운 속성들을 역시나 정보 개념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뇌가 가진 높은 기능들은 신경 짜임새의 집단적 조직화와 연관되어 있다. 신경세포 수백, 수천만 개가 통합되어 복잡하고 상호연결성이 높은 네트워크를 이룰 때에만 의식은 떠오른다. 사람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의식 경험은 동시에 현전하는 수많은 성분들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의식(마음)에 대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다음의 두 물음에 대한 답이다. 어떤 물리적 과정이 의식을 생성하는가? 마음이 존재한다고 하면, 마음은 물리적 세계에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는가? 저 두 질문에는 한 가지 가정이 깔려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식을 ‘소유하는’ 어떤 행위자 또는 인격 또는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누군가‘의 것’이다. 마음은 정보가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고 정보는 물질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따라서 마음 또한 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인 작용과 필히 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과거, 현재, 미래는 고집스럽게 부여잡고 있는 착각일 뿐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침반 바늘이 화살의 북쪽을 가리킨다고 해서 내가 북쪽으로 운동하고 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공간적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뿐이다. 시간은 방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태들의 순서일 뿐이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장비는 없다. 시계는 그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을 측정한다. 실제로 지나가는 것은 내가 흘러간다는 의식적 인식이다.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 사이에는 매우 강한 상관성과 상호의존정보가 많을 뿐이다. ‘지금’이란 사실.. ‘그 시간’에서의 ‘그 나’에게만 ‘지금’인 것이다. 배선 속의 악마 신경세포는 신호를 전달하는 수동적인 중계기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신경세포에는 신호를 처리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내부 구조가 있다. 시냅스 틈새의 간극을 잇는 다리의 역할은 전류 자체가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이 하고 있다. 수많은 신경세포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수렴하면서 혼합될 수 있기 때문에 계는 논리회로처럼 작동하며 들어오는 신호 조합 상태에 따라 신경세포는 켜지거나 꺼진다. 신경회로 역시 정적이진 않다. 개인이 해나가는 경험에 따라 신경회로는 바뀐다. 의식이란 것이 어떤 조직된 전체에서 떠오른 집합적 결과물이라면, 정보의 측면에서는 의식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부분의 합보다 전체가 더 크다고 보는 직관적인 관념에 입각하여 통합정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생명은 통합계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구성요소와 연결의 관점에서 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토로니의 연구진은 “단순한 계여도 최소한의 의식을 가질 수 있고, 복잡다단한 계여도 의식이 없을 수도 있으며, 두 계가 서로 다르지만 동등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한쪽은 의식이 있지만 다른 쪽은 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통합 정보에 주목하는 것은 의식을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인과성과 정보의 흐름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유의지와 행위성 목적을 가진 행위자의 행동, 행위자를 이루는 성분들의 목적 없는 활동, 이 둘은 아직 서로 이어지지 못한 상태다. 정보이론이 그 답을 가졌을 수 있다. 계가 열려 있는 한, 원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와 행위자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서로 모순됨 없이 나란히 펼쳐질 여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환경을 포함한 계의 환경, 그리고 또 그 환경을 포함한 계의 환경 등등 뇌 모듈들의 활동을 비롯해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 하더라고 우주는 비결정론적인 양자계이다. 양자뇌 폰 노이만을 비롯한 몇 사람의 물리학자들은 마음이 ‘구체화 인자(흔히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불린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내놓았다. 측정 결과가 측정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올 때 흐릿했던 양자세계가 상식적인 실재로 구체성을 입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물질에 대해 일종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의식이 물리이론의 틀에 어떻게라도 들어맞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인가 의식이 양자역학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정당하다. 나가는 말 1943년 슈뢰딩거가 던진 도전과제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 정보가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 강력한 다리가 되어준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생물학적 정보가 물질 속에 현시되는 것은 맞지만, 그 정보가 물질에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 비트들이 물리법칙을 어기지는 않지만, 그 법칙 안에 싸 담기는 것도 아니다. 곧 현재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에서 정보법칙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둘을 적절하게 합쳐 넣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리법칙 자체의 본성을 새로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법칙들, 적어도 체계적인 규칙성들이 복잡계 행동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부분적으로나마 생물이 가진 것 같은 특징을 잡아낸 패턴들, 즉 ’정보 조직화 속의 보편성‘ 같은 것들 말이다. 작가는 상태의존적인 정보법칙이 내재해 있을거라 주장하며 고차적 정보처리 모듈의 자발적 조직화가 복잡계들에게 선호되었을 가능성을 소개한다. 새로운 물리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면 아마 상태의존성과 하향식 인과관계(또는 상향식 인과관계가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와 관련된 정보법칙일 거라 역설한다. 물리법칙 안으로 생명을 가져오려면, 그리고 정보가 근본적인 존재자로서 실재함을 뒷받침할 기초를 제공하려면 물리법칙의 본성을 철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