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문학] 보르헤스 읽기 :: <픽션들> 3번째 - 발제 2019-03-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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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③

 

주 호

 

오클랜더 이곳에 앉아 계신 모든 사람들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알고 싶어합니다.

보르헤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사람이라면 넌더리가 나는걸요.

-1980.3월 인디애나대학교에서의 인터뷰 (보르헤스의 말, p.15)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마치 한 편의 역사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컬패트릭이라는 허구의 영웅에 관한 소설인데, 이 소설속에서 그는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누군가에 의해 암살당한다. 후에, 그의 증손자 라이언이 증조부의 암살사건을 파헤치는 도중 컬패트릭이 사실은 영웅이 아니라 배신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라이언은 고민 끝에 그 사실을 은폐한다. 이 작품은 어떻게 배신자가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둔갑되어 왔는가 하는, 진리의 이면에 대한 짧은 고찰이다. 순환론적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시저-컬패트릭-링컨)

 

죽음과 나침반

이 작품은 총 세 건의 연쇄살인 사건마지막에는 네 건을 암시하지만이 발생하고 공식적인 수사기관인 경찰과 사설탐정, 기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이 서로 상이한 가운데 각자의 방법으로 사건을 독특하게 추리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소설이다.

보르헤스에게는 흥미롭게도 장르작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죽음과 나침반이라는 작품 또한 추리소설로 쓰여진 것이며, 영화화되기도 하였고 실제로 <앨러리퀸미스터리매거진>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미권에 보르헤스를 처음으로 알린 사람 또한 앨러리 퀸이었다)

 

비밀의 기적

시간의 선형성, 시간의 외재성, 시간의 단일성에 대한 반문을 정지된 시간의 형식으로 던지는 작품이다. 자로미르 흘라닉은 프라하에 사는 유태인으로 히틀러가 프라하를 침공하고 며칠 후 체포되어 329일 총살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그는 무한한 상상 속에서 수없는 처형들과 맞닥드리며 총살에 대한 공포를 이겨가고 있었다. 흘라닉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자신의 저작을 미완으로 남긴 채 떠나는 것을 매우 아쉬워하며 이 미완성 저작을 끝낼 만 1년의 시간을 자신에게 줄 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그날 흘라닉은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 그는 시간을 주겠다는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처형 날, 흘라닉은 상상 이하의 초라한 뒷마당으로 끌려가 몇 명의 군인 앞에 서서 처형을 기다리고, 마침내 9시 하사관의 명령과 함께 총알이 발사된다. 그러나 흘라닉은 죽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물질적 세계시간이 정지한 것이다. 신은 꿈속에서의 약속대로 비밀의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흘라닉은 치밀어오르는 감사함을 느끼며 기억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기록 방식도 허락되지 않은 그 1년 동안 자식의 미완성 저작을 완성한다. 그리고 329, 예정대로 총살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성경을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간주한다면, 예수를 논함에 있어 유다만큼 흥미로운 인물이 또 있을까. 그토록 흥미로운 인물이니 단테(신곡,1321)에서부터 레이디 가가(주다스,2011)에 이르기까지 숱한 예술가들이 아직도 그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리라. 보르헤스 역시 그 숱한 예술가들 중 하나이다. 그는 닐스 루네베리라는 가공의 인물이 쓴 책을 통해 유다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 번째 유다의 배반 행위인 적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예수에게 입을 맞추어 그들이 체포해야 할 사람을 알려준 행위는 신이 자신을 희생했으니 인간의 희생도 필요하다는 것. , ‘말씀이 자신을 낮추어 사람(예수)이 되었으니 말씀의 제자인 유다도 자신을 낮추어 밀고자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닐스 루네베리는 유다가 고작 은화 서른 닢에 예수를 배반했을리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다의 행동을 지배한 것은 탐욕이 아니라 금욕이라고 말한다. , 선행과 행복은 신의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므로 유다는 신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스스로 추락했다는 것, 그리하여 무한한 금욕의 정신으로 천국을 포기하고 지옥으로 갔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닐스 루네베리가 제시하는 마지막 유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가히 충격에 가깝다.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으로 낮추었다. 바로 그 인간은 예수가 아니라 유다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기희생이 완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더욱 철저하게 인간에 가까운 인간, 죄의 인간이 되길 선택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인간성과 무죄성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은 영원한 벌을 받아 끝없이 깊은 구렁에 빠질 정도의 인간이 되었다그것이 유다인 것이다.

 

에르란데스의 마르띤 피에로의 끝부분을 다르게 패러디하는 작품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에서는 흑인과 마르띤 피에로가 검을 들고 결투를 벌이게 된다. 흑인은 마르띤이 자신의 형을 죽였을 때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과 결투해 줄 것을 요구한다. 처음엔 마르띤이 우세해 보였으나 결국에 대결은 흑인의 승리로 끝났고 마르띤 피에로는 죽음을 맞이한다.

 

불사조 교파

가장 완벽한 비밀이란 모든 말에 의해 치장되는 비밀이고 감추어지지 않은 비밀이라는 역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부

남부의 스토리는 세 가지로 읽힐 수 있다.

첫 번째, 일종의 패러디로써 우화적 요소를 지닌 이야기이다. 이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죽인다의 뒤집기를 의미한다. , 한 남자후안 달만이 남부로 가기를 염원하는데 그가 정작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남부에 도착했을 때, 남부가 그를 죽이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를 그저 사실적으로 읽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후안 달만이 어떤 큰 상처로 인해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한 후, 자신이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남부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술에 취한 젊은이들과 싸움에 휘말리는 이야기라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세 번째, 어쩌면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맥빠지는 해석인데 이야기 후반부, 회복 후 남부로 여행을 떠나는 부분부터는 전부 후안 달만의 꿈이라는 것이다. 후안 달만은 결국 죽을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서 꿈을 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후반에 전개되는 남부로의 여행을 보여준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 세 번째 해석을 가장 흥미로워했다. 왜냐하면 달만은 열차를 타고 가다가 계속 선잠에 빠져 꿈을 꾸기도 하고 깨기도 하고를 반복하는데 스페인어로 꿈과 잠은 하나의 단어(sueño)로 쓰이며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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