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3장 변신-자궁변형: 여성/동물/곤충 되기 여성/동물/곤충 되기와 이미 여성/동물/곤충임을 인정하기. 들뢰즈의 되기는 존재를 긍정하지만, 스스로 소수자임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존재를 긍정한다. 들뢰즈에게 소수자는 주체를 탈구축하는 새로운 세계의 주체(혹은 비체)이다. 모더니즘이 주체의 사유를 강조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체를 해체하고 타자를 귀환시킨다. 인간(남성) 주체의 몰락은 곧 휴머니즘(인본주의)의 위기이다. 생물학의 발전은 인간(남성) 주체의 본질적 우월성을 과학적 방식으로 부정한다. 인간(남성) 주체의 우월성을 보증했던 신의 자리는 과학이 보증하는 기술문명으로 대체된다.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는 타자들이 온다. 여성/동물/곤충이라는 타자들. 들뢰즈의 ‘되기’는 바로 이 타자들의 담론과 실천에 관한 이론이다. 철학적 유목론은 자기반성 속에서 타자성의 담론과 실천에 관여한다. 이 타자는 변증법을 통해 동일자에 포섭되는 타자가 아니며, 동일자의 권위를 비난하면서 해체하는 타자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들뢰즈의 ‘되기’를 은유나 모방, 소비의 방식으로 읽지 말자고 여러 번 강조한다. 순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만 ‘되기’가 자기를 변형하고 세계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하는 파괴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되기들은 외부의 다른 타자들과 끊임없이 마주치면서, 주체를 그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228쪽) 모든 되기의 주체는 소수자이다. 비통일적이며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주체이다. 되기는 언어를 넘어선 표현의 힘을 주장하며, 정동으로 작용한다. 여성/곤충/지각할 수 없는 것/ 분자 되기는 주체(동일자)가 타자들과 자신을 분리했던 경계를 침범하며 파괴한다. 특히 ‘여성 되기’는 ‘소수자 되기’의 문턱이다. ‘여성 되기’는 모든 되기의 개념과 과정에 필수적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많은 동물 되기의 예시에서 성차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철학 전통에서 동물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타자로 나타난다. 동물은 이성의 반대편에서 인간을 위태롭게 한다. 다른 철학자들이 이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성을 이용한다면, 들뢰즈는 동물의 힘을 빌린다. 동물은 세계를 재현하거나 해석하지 않으며, 바이러스처럼 침입하여 오염시키고 전유한다. 동물은 주체의 내부에 네트워크의 형태로 이미 존재하며, 주체가 정복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신분석학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정상성의 시선으로 이 정복 불가능한 대상을 정복하려 들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빠져든다. 들뢰즈는 주체를 보는 규범적 시각에서 벗어나 욕망을 해방하려 한다. 욕망을 해방하는 힘은 언어가 아닌 신체의 힘이다. ‘여성 되기’와 ‘동물 되기’에는 신체에 대한 범성애적 접근이 필요하다. 들뢰즈에게 되기는 사유의 힘과 같다. 이 사유는 변형이고, 육체적인 힘이며, 쾌락으로부터 추동된다. (239쪽) 차이의 철학은 이런 방식으로 주체를 긍정적인 구조로 다시 본다.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는 인간 존재의 성향, 수용력, 능력, 사유에 관한 열망에 달려 있다. (240쪽) 사유에는 언어나 이성이 아닌 정동의 힘이 작용한다. 인간은 오래도록 자신들과 동물의 생명을 구분해왔다. 조에와 비오스의 구분이 대표적이다. 동물의 삶이 조에라면 인간의 삶은 비오스라는 설정 안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동물과 다른 점을 찾으려 애쓴다. 조에는 비오스를 중시하는 인간의 타자로 설정되지만, 생명이 있는 동물계의 일부로서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조에가 중요하다. 우리가 삶의 역량(포텐티아)이라고 부르는 힘은 우리 안의 타자, 조에에서 비롯된다. ‘동물 되기’는 신체의 힘과 욕망을 끌어내며,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인간과 동물의 근접성을 미화하고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낭만화하는 일을 거부한다. 동물적 본성을 가져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거나 인간 남성의 욕구를 단순하게 다루는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되기는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혼종적 상상력에 대한 개념이다. 도나 해러웨이의 페미니스트 사이보그가 그 예로 적절하다. 새로운 상호작용 안에서 타자와 결합하면서 탄생한 혼종 주체를 긍정하고 싸울 힘과 영감을 불어넣는 방식이 도나 해러웨이의 방식이다. 여기서 되기는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물 중에서도 곤충은 오래된 문화적 타자이다. 혐오와 공포, 불안을 불러오는 존재인 곤충. 곤충에 대한 공포는 변신력, 기생력, 모방력, 환경과 혼합되는 힘, 이동 속도, 무리 짓는 특성을 통해 증폭된다. SF나 호러 장르에서 곤충은 기술이나 여성과 결합될 때가 많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변신의 시작 지점과 결과 모두에서 나타나는 성차에 주목한다. SF나 호러 장르 속 곤충 묘사에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공포나 이방인에 대한 공포가 드러나며, 종종 이 둘이 결합된다. (영화 <에일리언>) 또 인간과 곤충의 결합에는 과학기술이 매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기술, 곤충은 서로 기묘하게 연결되면서 현대 사회의 타자성을 형성한다. 들뢰즈의 ‘되기’를 수용하는 로지 브라이도티는 곤충과 기술이 ‘인간 본성’에 가하는 타격을 확인한다. 여성은 곤충 되기, 이미 곤충임을 알기를 통해 새로운 주체가 된다. 사이버 페미니스트들이 매듭처럼 연결되며 관계 맺는 능력은 거미의 집 짓기 능력을 닮았다. 기술과 결합된 곤충은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며, 한층 공포스러운 존재가 된다. 곤충은 엄청난 활동력과 번식력으로 생존하며, 중력마저도 거스르는 움직임을 보인다. 곤충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시각은, 곤충이 가진 성적 ‘퀴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많은 동물이 번식과정에서 인간의 성 규범을 조롱하는 양태를 보이지만, 특히 곤충은 퀴어의 정점에 있다. 곤충의 퀴어함은 지배적 주체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지배적 주체는 여성의 몸에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곤충에 대한 공포에 연결한다. 여성은 자신이 곤충이며 물질임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포스트휴먼이 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모든 되기에서 성차의 문제를 발견한다. 여성에게 성차는 소수성으로 이미 존재하는 정체성이다.
여성 되기의 공허는 남성 철학자의 허무와는 달리, 상호의존성에 직면한다. 자궁은 여성의 몸에서 타자와 조우 가능한 비체적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모든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임신과 생명의 중단이 이루어진다. 여성은 자신의 자궁을 이용하고 변형하는 방식을 통해 포스트휴먼이 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성차에 대한 강조를 통해 들뢰즈의 ‘되기’를 더욱 실천적인 개념으로 만든다. 여성의 변신-자궁변형은 매우 급진적인 정치적 기획이다. 인간의 생명에서 타자로 밀려났던 조에가 비오스와 불경스럽게 결합하면서 이 급진성을 추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