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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차이나] 누가 야만인인가: <충돌하는 제국> 2장 발제2020-03-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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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제국》 제2장 초기호의 탄생

 

제국이 충돌하고 있다. 스스로를 보편이라 여기는 영국이 아시아에 와서, 자신들처럼 보편을 자처하는 중국을 만났을 때 제국은 충돌했다. 이 상황은 영국인들이 주저 없이 야만인이라 부르던 다른 피식민지와 접촉할 때랑은 달랐다. 자신들이 넓고 미개한 땅이라 부르던 중국에 도착했을 때, 영국인들은 모종의 낯설고 불쾌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리디아 류의 지적대로, 충돌한 것은 제국이지 문명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보편이라 여겼던 거대한 제국의 자존심들이 충돌했고, 충돌은 그 자체로 상처였다. 충돌의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상처였으며, 보편의 자존심에 미세한 균열을 남기는 상처였다.

 

제국의 접촉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동반했다. 누가 야만인인가. 제국의 언어와 정체성은 타자를 지칭하면서 만들어진다. 타자를 지칭해야만 자신을 지칭할 수 있다. 접촉을 통해 영국과 중국은 서로가 서로를 타자로 지칭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곧 자신이 보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불쾌감이 이어졌다. 제국의 특성상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침입자 영국은 자신들이 보편임을 증명해야 했다. 충돌을 감내하며 스스로가 보편임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이면에는 제국의 의심과 불안이 존재한다. 의심과 불안을 떨치기 위해 침입자는 외친다. ‘야만인은 너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과 영국이라는 두 제국의 충돌에서 읽어내는 것은 식민주의의 경제적 특징만이 아니다. 두 제국의 충돌은 정치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언어, 특히 번역이다. 번역을 통해 연결되는 두 단어가 만들어내는 초기호에서 저자는 제국의 심리를 읽어낸다. 1858년 톈진조약에서는 한자 이夷의 사용이 금지된다. 이전부터 영국은 두 나라의 외교에서 영어의 권위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다. 한자의 영어 번역은 그 자체로 영어에 근거해 중국어의 의미를 정하는 일이 된다.

 

“夷/barbarian"이라는 초기호가 만들어질 때도, 중국인들이 문화적·역사적으로 夷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초기호는 두 단어가 서로 번역가능하다는 점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두 단어가 초기호로 연결되는가에 있다. 한 단어를 외국어의 다른 단어로 번역하는 일은 언어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역사적 맥락의 문제이다. “夷/barbarian"이라는 초기호에서도 영국인들은 낯선 夷가 아닌 자국의 언어 barbarian에 집중한다. 이들에게는 누가 자기들을 barbarian이라고 부르는가가 중요하다. 물론 중국인들은 barbarian의 사회·역사적 의미를 영국인들만큼 잘 알 수 없다.

 

초기호는 자칫 상호 대등한 언어의 접합으로 이해되기 쉽다. 리디아 류는 그 접합의 이유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언어의 접합은 순수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정한 목적을 가진다. 번역은 접합과정에서 이루어진 언어의 위계를 숨기고, 접합의 흔적마저 지우면서 초기호를 생산한다.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초기호는 탄생 순간부터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리디아 류는 언어학 혹은 문헌학적 탐색을 통해서는 이 초기호의 이질성을 은폐하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자 夷 혹은 영어 barbarian의 어원 분석은 두 단어가 접합된 초기호 “夷/barbarian"의 이질성을 은폐한다. 각각의 단어가 아닌 두 단어의 접합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夷/barbarian"이라는 초기호는 실제로 두 단어를 대등하게 번역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 번역은 한자 夷의 사용을 금지시켰고, barbarian을 중요하게 부상시켰다. 한자 夷는 사용이 금지된 동시에, 중국 중심주의와 중국의 외국인 혐오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중국 중심주의와 중국의 외국인 혐오는 유럽의 식민주의를 은폐하면서, 국제법상 중국에 대한 침입을 정당화한다. 여기서 국제법의 공정성과 번역의 순수성을 믿는 태도는 초기호 “夷/barbarian"을 단순히 문명의 접합 혹은 충돌로만 보게 만든다. 리디아 류는 제국이 괴물이라면, 초기호 역시 괴물이라고 주장한다. 초기호는 제국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제국의 자식이다.

 

리디아 류는 영국이 중국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던 시기를 “夷/barbarian"이라는 초기호의 탄생 과정, 夷가 barbarian으로 번역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夷라는 단어에 담긴 중국의 통치나 외교방식은 무시된다. 대신 외국인, 특히 유럽인을 barbarian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오만함과 혐오는 강조된다. 물론 그 오만함과 혐오는 유럽인들이 서로에게 보여주던 것이다. barbarian이라는 단어에 담긴 멸시를 중국인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한편 규정하기 힘든 초기호의 성격은 초기호에 신비한 역량을 부여한다. 초기호는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어떤 언어에도 지배당하지 않는다. 결국 영국인과 중국인 모두 “夷/barbarian"이라는 초기호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중국의 황제가 영국과의 관계에서 경제 문제를 고민할 때, 영국은 제국의 존엄을 내세웠다. 제국의 존엄은 평등한 협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디아 류는 제국의 존엄에 대한 이런 집착에서 식민주의의 상처를 엿본다. 식민지의 지배자로서 영국인들은 애정과 존경을 받기를 원했다. 애초에 존엄이 훼손되었다는 제국의 상처는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였다. 동시에 언제든 타자에게 barbarian으로 불릴 수 있다는 두려움은 전혀 다른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夷 사용 금지에 대한 강력한 요구에서 이 상처를 드러난다. 누구나 타자에게 ‘야만인’이라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야만인’이라는 단어의 허구성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자신을 야만인으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 두 타자는 접촉하자마자 서로를 파괴하려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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