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기계의 시작 생존 기계는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 처음 생겨났다. 생존 기계들은 다양한 형태의 생활 방식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책략을 진화시켰고, 새로운 종류의 생활 방식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곁갈래에 또 곁갈래가 생겨났다. 그리고 점점 더 특수화된 생활 방식을 진화시켰다. 이 곁가지들이 오늘날 우리를 감동시킬 정도로 다양한 동식물 세계를 만들어 냈다. 동식물은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복사본이 모든 세포에 들어 있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 유전체의 군체라도 그 행동 양상을 보면 몸은 이미 개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다른 유전자와 협력하는 유전자를 선호했다. 희소한 자원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나, 다른 생존 기계를 잡아 먹기 위한 또는 먹히지 않는 혹독한 싸움에서 공동체와 같은 몸이 중추에 의해 조절되는 쪽이 무질서한 쪽보다 더 유리했을 것이다. 복잡한 유전자 간의 공진화가 계속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개개의 생존 기계는 공동체의 성질을 갖는다는 점을 사실상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행동’의 특징은 그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이다. 빠른 운동을 위해 진화시킨 부품은 근육이다. 근육 수축의 타이밍은 신기할 정도로 복잡하다. 또한 생존기계는 뉴런을 가지고 있고 뇌는 기능상 컴퓨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 기계는 기본적으로 극히 단순하며, 의식이 없으면서도 목적의식이 있는 듯 행동한다. 유전자는 ‘예상’할 수 있는 많은 우발적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둔다. 생명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우발적 사건은 수없이 많고 그 모든 것을 예상할 수는 없다.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게 일반 전략이나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예측은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할 일은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뇌에 미리 프로그램을 짜 놓는 것이다. 동물이 의식적으로 계산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올바른 도박을 하도록 뇌를 만들어준 유전자의 개체가 당연히 더 잘 살아남고, 따라서 같은 유전자를 퍼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예측 불허인 환경에서 예측을 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학습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학습을 통해 유전자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속에는 규칙과 전술의 레퍼토리가 들어 있다. 그 의사 결정 과정에는 약간의 무작위성도 입력되어 있다. 과거의 의사 결정을 기록하였다가, 승리할 때마다 승리하기 직전에 썼던 전술의 비중을 약간씩 늘여, 다음에는 똑같은 전술을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시뮬레이션이다. 우리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실제로 행했을 때 각각 어떤 일이 생길까를 ‘상상’한다. 이때 마음의 눈으로 그것들을 생생하게 보기도 하고 그 항목들의 추상 개념을 상상하고 조작할 수도 있다. 뇌가 어떻게 세상의 모형을 표상하느냐에 대한 세부 내용보다는 뇌가 그 모형을 사용하여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생존 기계는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는 생존 기계보다 한 단계 앞서 있는 것이다.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진화를 초래한 듯하다. 시뮬레이션 자체도 시뮬레이션의 대상인 세상의 일부로 생각될 수 있는데 이는 ‘자기 인식’이라 말할 수 있다. 의식이란, 생존 기계가 그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의 정점이다.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내 유전자들의 차등적 생존을 통해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이타적인 것이든 이기적인 것이든 어떤 행동 패턴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다른 행동을 ‘담당하는’ 경쟁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 유전자 풀 속에서 더 잘 생존해야 한다. 공격 – 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5장에서 필자는 개체를, 유전자 모두에게 최선이라면 무엇이든지 실행하게 만들어진 이기적 기계라고 간주한다. 자연선택은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상관없이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동물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동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앞뒤 재지 않고 싸우는 것에는 이익과 동시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눈앞의 경쟁자를 없애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경쟁자의 죽음으로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싸움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므로 당분간 시간과 에너지를 축적해 두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한동안 먹는 것에 전념하고 싸움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장차 강대해질 것이다. 당장 서두르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편이 결과적으로 나의 승률을 높이는 선택일지 모른다. 즉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단에 앞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손익 계산’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발상을 표현한 것은 메이너드 스미스였다. 그는 ‘게임 이론’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를 응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이다. 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 개체를 제외한 나머지 개체들도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화하려는 개체들이므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일단 그 전략이 진화하면 다른 어떤 전략도 그 전략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없는 그런 전략이다. 환경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면 잠시 동안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올 수 있으며, 개체군 내에서 변동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이 일단 ESS가 되면 그것은 계속 ESS로 남는다. 자연선택은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벌할 것이다. ESS개념은 이해 대립이 있는 경우라면 거의 다 적용할 수 있다. 이 개념은 독립된 이기적 실체가 어떻게 해서 조직화된 전체를 닮게 되는가를 최초로 가르쳐 줄 것이다. 이는 유전자의 비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유전자는 혼자 있을 때 ‘좋은 것’이 아니라 유전자 풀 내 다른 유전자를 배경으로 할 때 좋은 것이어야 선택된다. 좋은 유전자는 수 세대에 걸쳐 몸을 공유해야 할 다른 유전자와 잘 어울리고 또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ESS 개념은 우리에게 독립적인 유전자 수준에서의 선택으로도 이와 똑같은 결과가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렇다면 좋은 유전자는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들의 세트가 될 것이며 이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도 침입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돌연변이나 재조합, 또는 이입으로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선택의 벌을 받아 즉시 제거되고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진화적으로 안정한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진다. 진보를 향한 진화는 꾸준히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한 안정기에서 다음 안정기로 불연속적인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잘 통합된 몸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들의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가 만들어 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