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이를 위한 문학사 에레혼 "이들 모두는 마음에 맺힌 바가 있어 뜻을 펼치지 못하였기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다가올 바를 염두한 것이다." _사마천, 《사기史記·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중국 고대 문인들의 글은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 말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누군가는 상대방을 논쟁에 참여시켜 논리에 스스로 순응하도록 만든다. 우화를 동원하여 독자를 자연스럽게 논의에 접근하도록 만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되뇌며 반복해서 텍스트를 읽게 만들며 독자가 빠져들도록 만드는 이도 있다. 유협 역시 자존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것을, 《문심조룡》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렵다. 유협이 가진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방대한 데이터. "천 곡 이상을 연주한 다음에야 음악을 이해할 수 있고, 천 개 이상의 검을 관찰한 다음에야 비로소 보검을 식별할 수 있다"(922쪽)는 이야기가 허세인 것만은 아니다. 《문심조룡》에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품평이 여러 번 등장한다. 유협의 중국 문학에 대한 검토는 통시적인 방식으로, 《문심조룡》 여러 챕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상고시기부터 유협이 활동했던 동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나열하며 그가 주장하려는 바는 단순하다. '글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세우자.' 《문심조룡》이 바라본 올바른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무엇인가. 전자에 대해 설명하려면 A4 용지 몇 장을 빼곡히 채워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협의 눈 밖에 난 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문심조룡》에서 줄곧 부정적인 대상으로 소환되는 것은 동시대인의 글이다. 유협은 "자고이래로 지음 대다수는 동시대의 사람은 경시하면서 고대인은 그리워하는데"(917쪽)라며 중국 역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요즘 것들에 대한 혐오 정서'를 언급한다. 재미있는 점은 유협 본인도 그런 생각을 가진 자고이래의 문인이라는 사실. 유협은 위진남북조 시기가 저물어가던 제나라와 양나라에 걸쳐 활동안 인물이다. 흔히 이 시기를 묶어 '제량시기'라 부르는데, 특히 문학사에서 이 시기는 시의 율격이 중시되고 언어적 미감에 치중한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 때이다. 그런데 《문심조룡》에서는 이 '제량문풍'이 주요 비판대상이 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수사에만 능했기 때문이다. 유협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들이 문학 작품이 전달해야 하는 본질, 시인의 마음을 글에 형상화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고 폄하한다. 《문심조룡》 곳곳에서 이른바 '기습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문학 작품은 《시경》과 《초사》이다. 예컨대 "시인(《시경》의 작가)들은 경물에 감응해 끝없는 연상에 빠졌"고, 덕분에 "경물의 기운과 모습을 묘사함에 사물과 완전히 하나가 되"(874-875쪽)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찬탄만 보아도 유협의 고전 작품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요즘 문인'들에게는 "유송(위진남북조의 왕조인 송나라) 이후로 사물의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중시에 풍경에 억지로 감정을 덕붙이고"(879쪽) 하는 식의 힐난이 꼬리처럼 붙는다. 이처럼 특정 문인이나 글에 대한 숭배와 비난이 교차하는 각축장이 《문심조룡》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셈.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알력다툼을 두고, 고대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 중에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 어구가 있다. '글 쓰는 사람끼리는 서로를 경시한다'라는 의미로, 중국 고대인들의 존귀한 에고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한다. 이 말을 처음 남긴 인물인 조비曹丕는 글 짓는 사람들이 자기 장점을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부연했다. "사람이 자기 장점은 잘 알아본다. 그런데 문장에는 여러 체제가 있기에 모든 면에서 뛰어나기 어렵다. 하여 각자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평가하는 것이다." _조비, 《전론典論·논문論文》 편의상 조비가 이 글에서 언급한 논의를 '문인상경론'이라고 하자. 조비의 문인상경론은 약 300년의 시간을 지나 유협의 시대까지 회자되고 있었다. 《문심조룡》에서 유협은 문인상경론을 단순히 문인 사이의 '기싸움' 정도로 치부하지 않는다. 유협이 보기에 너의 글(동시대 문인)이 내 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당대 사람들이 '글의 맥'을 전혀 짚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맥'이란 '《시경》 전통에 《초사》가 가미한 개량'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소박함을 가리킨다. 이러한 문풍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히거나 혹은 변형된다. 다음은 문학사의 후발주자에 평탄한 서술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유협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낄 수 있다. "은중문은 고흥을 읊조렸고 사혼은 한정을 묘사했으나 모두 문사의 체제를 분산시켜 결국 부화하고 애매한 작품으로 전락했다. 비록 도도한 청담의 기풍을 만들었으나 문의를 너무나 부화한 것으로 전락시켰다."(909쪽) 《문심조룡》 속 꾸준히 나타나는 문인상경의 정서는 문학사적 비평과 무관한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성정을 언급하는 〈정기程器〉에서도 유협은 동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는다. "…후대의 작가는 화려함만 추구하고, 실질을 버리고 말았다. (…) 후인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해 빼어난 것과 졸렬한 것을 섞어 놓고 모두 같은 것이라 말하니, 아! 슬프다!" (932쪽) 유협에게 글의 맥이란 중국 철학사에서 유가를 중시한 지식인들이 자주 언급했던 '도통道統' 개념과 유사하다. 도통이란 단어는 원리(도)와 전통(통)의 결합어로, 유가 사상의 핵심 사상이 계보를 그리며 이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실제로 이러한 계보가 존재했는지와는 무관하게, 후대에는 이 도통이 정통과 주변부를 가르는 유가의 핵심 강령처럼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주공과 공자, 그리고 다시 맹자로 이어지는 유가적 전통의 계승 관계와 유사하게, 《문심조룡》 속 문학사 반복 서술을 통해 독자에게 주입되는 이상적 문장의 전범은 '《시경》-《초사》-위나라-유협 자신'이라는 직선으로 느슨하게 이어진다. 자신이 옛시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느슨하지만 확고한 믿음. 이 마음이 유협에게 《문심조룡》을 작성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문심조룡》에서 문학사적 서술에 치중한 챕터는 <시서時序>이다. 해당 챕터는 "시대의 기풍은 교체를 거쳤고, 질박과 문채도 시대를 달리하면서 변화"(833쪽)한다는 '시간의 질서(時序)'에 따른 진보적 사관으로 출발하는 듯하다. 하지만 유협은 <시서>의 마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과거로 시계바늘을 돌린다. "고대는 비록 요원하나 눈앞에 있는 듯하다."(866쪽) 까마득한 고전의 시대가 지금 사람들과도 공존할 수 있는 까닭은 꾸준히 《시경》의 정신을 계승해 온 이들이 꾸준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문심조룡》 역시 그러한 고전의 정신을 붙들고자 하는 책이다. 문학사는 언제 서술되는가. 거칠게 말하자면 문학사 집필의 동력은 특정 민족이나 문화의 흥성 혹은 쇠퇴라는 양극단의 사건과 연관된다. 소위 말해 잘 나가는 국가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국가 프로젝트로 문학사 서술 작업에 착수하기도 하지만, 망국의 지식인들이 자문화의 뿌리를 보존하는 심정으로 문학사를 집필하기도 한다. 《문심조룡》의 문학에 대한 통사적 접근은 굳이 따지자면 문화의 쇠퇴와 관련된다. 유가적 글쓰기 방법론에 기반한 시작詩作은 위진남북조 후반기에 오면 꼰대 담론처럼 변해버렸고, 유협과 같은 시대를 살던 문인들 사이에서는 음성학적으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 지상 최고 과제가 되었다. 제량문풍에 대한 비판과 《시경》·《초사》에 대한 긍정. 《문심조룡》에는 시대와 불화하는 유협의 모습과 스스로를 전통의 전수자라 규정하는 고집스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문심조룡》 후반부 내내 펼쳐지는 고전의 명맥을 잇는 작업을 살피고 나서 다시금 <서지序志>를 보면 아래의 구절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내가 일곱 살 때, 꿈에 비단같이 아름다운 채운을 보고 올라가 잡았다. 나이 서른 즈음, 일찍이 꿈에서 붉은 칠을 한 예기를 들고 공자를 따라 남쪽으로 간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너무나 기뻐했다. 위대한 성인은 만나기 어려운데 부족한 저의 꿈에 나타나시다니!"(952쪽)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비운의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성인으로 추앙되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루저스러운' 면모가 유협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꿈에서 주공을 만나곤 했다는 공자처럼, 유협도 꿈에서 공자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저작을 통해 후대에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자신의 문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당장은 세간의 인정을 받을 수 없겠지만, 미래의 누군가가 《문심조룡》을 읽고 자신의 주장을 알아봐주길 기다린 것이다. "시간은 날아가듯 흘러가니 인간의 재능과 지혜는 영원할 수 없기에 명성과 공적의 전수는 오로지 창작에 의지할 뿐이다."(95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