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가량의 세미나 시간은 수많은 말들로 틈없이 가득 채워졌다. 해석은 해석을 낳고, 의미는 의미를 불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무리하게 정리를 시도하던 나는 돌연 그 무수하던 말들을 모두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짧은 단상으로 후기를 대신하련다.
말이 트이고 나서도 귀가 트인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로소 세상의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하자 그것들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 들어왔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엔 신기한 이야기들이 어찌 그리도 많던지. 어린시절 나는, 특히 그리스신화나 아라비안나이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10년 인생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회한 이야기들로 넘쳐나 무조건 대박이라는, 나만의 영화 선택기준도 갖고 있었다. 그러다 그것이 언제인지도 모를 어느 시간에 이르자 나의 귀는 닫혔다. 이제 세상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독해한다.
보르헤스 전집 1편인 불한당의 세계사는 보르헤스가 세상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유일한 순수창작품 - 1편 중 문장력, 구성, 재미 모두 유일하게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다(내 기준으로는) - 인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도 ‘나’라는 화자가 보르헤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는 세상이 아득해질수록 귀가 맑아져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일까. 형체를 잃은 실체, 실상을 구분할 수 없는 형상은 그의 단골 이야기 소재가 됐다.
그래서, 보르헤스씨, 불한당 중의 불한당은 당신이 아닌가 싶구려. 당신의 이야기는 끝이 없으니. 왜냐하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은 나 같은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로 당신을 영예롭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