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Red Mao] 발제문 : 붉은 심장을 찾아서2019-01-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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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기억. 어느 날 뉴스에서 ‘단교’라는 말을 떠들썩하게 떠들어댔다. ‘단교’라니 뭔가 나쁜 말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는 호소를 듣고 자랐던 까닭에 중국에 가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헌데 어느 날 뉴스를 보니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나 두 손을 꼭 잡고 인사하는 게 아닌가. 김일성 사망에 환호하던 일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출국 전부터 기묘한 긴장이 온몸을 감았다. 처음 해외로 나가는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공산국가에 발을 내딛는다는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공항에 내리기 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중국 땅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똑같은 건물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문득문득 보이는 커다란 글씨는 뭔가 무서운 말들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오랜 기억을 꺼내 든 이유는 저자 에드거 스노의 모험을 읽으며 그 옛날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는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포와 호기심이 적당히 섞인, 그러나 예상치 못한 연속된 호의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버린 경험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중국의 붉은 별>을 읽기 시작하며 그 생생한 묘사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 이방인이, 양놈 귀신(洋鬼)이 대도시를 떠나 중국의 변방으로 떠난다는 자체도 큰 위험이었지만, 그것도 다양한 소문이 쏟아져 나오는 붉은 비적 떼(红匪)의 심장부로 들어간다는 것은 도무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가 곳곳에서 언급하듯 어느 순간 목숨을 잃어도 이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백색’ 세계를 벗어나 ‘붉은’ 루비콘 강을 건너도록 한 것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의문들 때문이었다. 


그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홍군, 중국공산당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이 국민당과 장제스를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반대로 장제스가 질 수 없었던 싸움을 진 이유도 흥미로운 질문거리기는 하다.) 그들의 과업을 ‘혁명’이라 부른다면 그들의 운동을 뒷받침한 혁명적 기반은 무엇이었는가?(25) 


잘 알려져 있듯, 애드거 스노가 마오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약 1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를,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거쳐온 상황이었다. 대장정이라는 그 모험을 가능케 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들의 지도자, 소문처럼 들려오는 주더, 린뱌오,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이상과 이념, 신조를 열렬하게 신봉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사회적 예언가들인가. 또는 생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투쟁하는 무지한 농민에 불과한가?(26) 


전통적인 공산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국의 소비에트는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발흥했다. 농민이 그 주축 구성원이었다. 그렇다면 농민이 모인 그곳은 과연 ‘사회주의’를 어느 정도까지 성취했는가? 홍군이 대도시를 장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점은 이들의 투쟁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운동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농민 반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인가?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농토에 매달려 있고, 산업 조직도 소아마비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유치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중국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나?(27)


시진핑의 중국은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내겠지만 애드거 스노는 그들의 운동이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었다. 아니, 당시에 그런 질문을 갖는 자체가 불온한 것이었다. 약 20여 년 전에 이웃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있었다고 하나, 그것이 중국에서 반복될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애드거 스노는 그와는 다른,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읽고 있었다. 성공한다면 그런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 정치에는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또 세계 역사에는? 중국에 대한 영국, 미국,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의 방대한 투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29)


그는 이런 질문을 갖고 시안으로 떠났다. 몸이 불편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맞을 수 있는 예방주사를 팔다리에 모조리 맞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중국의 서부는 메마른 지역이었으나 마치 정글로 떠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모험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그 여정은 붉은 비적떼에 대한 호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시안으로 떠나는 기차에서 만난 중국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당시 중국에도 그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음을 전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낸 편지로는 그들은 쑹판에서 고리대금업과 아편을 없애 버리고 또 토지를 재분배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들은 분명 비적은 아닙니다. 이들이 원칙들을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들은 악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요.”
“그들은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소!”(34)


비록 대화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둘의 짧은 대화는 이후에도 계속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평가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그들은 과거 지주를 몰아내고 토지를 재분배했다. 이점이 그들이 지역의 농민들에게 환영을 받은 이유였을 테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애드거 스노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의 악행에 대한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애드거 스노는 시안에 도착한다. 당시 시안에는 장쉐량의 동북군이 머물고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그해 12월, 1936년 12월은 서안사변이 일어난 해였다. 이것이 훗날 역사의 주요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왕 목사의 도움으로 덩파를 만난다. 중국 홍군 정치보위국 국장. 5만 위안의 상금이 걸려있는 그를 시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시안의 독특한 정세를 잘 보여준다.


그는 결국 여러 인물의 도움으로 홍군과 접촉하고 드디어 홍군의 주둔지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정치적 상황 때문이겠지만 그가 어떻게 동북군의 보초선을 통과해 무인지대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기록에 주목할 뿐이다. ‘중국에서는 중국식을 따르기만 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체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는 정도만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겠다.(58)’


‘중국식’…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다른 국가, 사회, 문화의 구성원이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그들만의 예외적 법칙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중국식’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일 테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식 경제, 제도, 문화 때문에 중국이 곧 망할 것이라 예견한다. 그러나 거꾸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또 다른 식으로 굴러갈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지난 2018년 12월 18일은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 기념일이었다. 그간 중국은 어떻게 변했는가? 그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국이 커다란 질문 덩어리로 덩치를 불릴 때까지 여전히 중국은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덧붙이면 2018년 5월, 맑스 20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은 독일에 맑스의 동상을 보냈다. 일부 사람은 이것을 하나의 촌극으로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식으로 보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중국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체로 서구 중심의 편협한 시각이 낳은 단편적인 반응은 아닐까?


애드거 스노는 백비, 국민당군의 추격을 받는다. 이로부터 도망쳐 홍군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길에 그는 소귀小鬼, 소년 공산당원을 만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


“소년을 소귀라고 부르거나 ‘동지’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지만 ‘어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동지입니다. 이 소년들은 소년선봉대이고, 이들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은 혁명가로서 자발적으로 우리를 돕기 위해서죠. 그들은 하인이 아닙니다. 이들은 앞으로 홍군 전사들이 될 소년들입니다.”(73)


애드거 스노는 이들에게서 ‘청소년 십자군 정신(74)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말한다. 과연 그것이 60년대 중국을 다시 뒤엎은 새로운 기운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마오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홍군 무리를 만나는데 그 가운데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홍군에서 ‘민족적’ 성격을 읽어내는 부분이다. 중국은 큰 나라(?)이며, 성省 단위로 무리가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서북쪽으로 밀려났음에도 ‘동북군’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상황을 보라. 그러나 애드거 스노는 ‘출신 성별로 조심스럽게 무리를 만드는 중국 군대보다는, 혼합된 조직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족적' 성격이 더 짙었다’(95)라고 언급한다. 이를 참고하면 홍군은 국민당과는 달리 ‘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자신을 고양하며, 동시에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과업을 완수한다는 만족감을 선물하는 존재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길에서 만난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자본가에 대한 말. 9살이나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말을 보자. 


“공산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이지?”
“홍군이 백비나 일본군과 싸우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그 밖에 또 무슨 일을 하지?”
“지주나 자본가와 싸우도록 도와줘요!”
“그럼 자본가란 어떤 사람이지?”
“자본가는 자기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해 일하도록 시키는 사람이에요.” (97)


아직 붉은 심장, 적도赤都에 도착하지 않았으나 붉은 심장의 본질에 적잖이 가까워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차근차근 읽어볼 일이다. 앞서 애드거 스노가 던졌던 질문들을 붙잡고. 수십 년 뒤까지 풀리지 않는, 혹은 새롭게 등장한 질문들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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