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성의 역사 2> 제1장 발제2019-10-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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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성의 역사 2권 제1장 발제.hwp (33KB)

쾌락의 절제에서 존재의 미학으로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 제1장 쾌락의 도덕적 문제설정

 

지금 우리가 ‘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고대 그리스의 어휘 중에서 찾아내기는 어렵다. ‘성 관계’나 ‘쾌락’을 보는 태도가 지금의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복원 혹은 발굴해보려고 한다. 푸코가 찾아낸 단어로 ‘아프로디자아’가 있다. 불어로 정확히 번역하기 어렵다는 이 단어는 ‘성행위’, ‘사랑의 쾌락’, ‘성 관계’, ‘육신의 행위’, ‘관능적 쾌락’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 장에서 푸코는, 성적 행동의 주요한 양식화 유형들의 뼈대가 되는 몇 가지 일반적인 특성을 도출해내려 한다. 고대 그리스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에 ‘아프로디지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아프로디지아에 관한 여러 사상의 공통된 특성을 보여주어 이해를 도우려는 듯싶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쾌락을 거론하는 방식에서 도덕적 문제를 인식했다. 푸코는 그들이 아프로디지아에 제기했던 도덕적 질문들의 일반적 형태를 밝히고자 한다. 성도덕에 관한 고찰에서 종종 부딪히게 될 네 가지 개념들이 있다. 바로 아프로디지아(성적 행동의 ‘윤리적 실체’), 크레시스(‘활용’), 엔크라테이아(‘제어’), 소프로쉬네(‘절제’)이다.

 

1. 아프로디지아

아프로디지아를 ‘아프로디테의 행위’로 정의한 문헌 이외에 정확한 의미나 규정, 분류, 해설 등을 늘어놓은 문헌은 찾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성에 대해 접할 수 과도한 관심과 참견들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프로디지아에 대해 제기한 질문의 종류를 고찰하는 방식 자체에서 그들과 우리가 ‘성’을 대하는 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1] 아프로디지아는 어떤 형태의 쾌락을 제공해 주는 행위, 몸짓, 접속이다. 육체의 쾌락 이외에 지금 우리가 상상, 충동,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동이며, 역동성이었다. 아프로디지아와 쾌락, 욕망을 연결 짓는 것은 역동성의 문제이다. 쾌락과 욕망, 행위의 성격을 규명하거나 행위의 규범을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 셋을 연결시키는 힘이 문제이다. 아프로디지아라는 윤리적 경험의 씨앗은 이 역동적 관계이다. 역동성을 분석하는 두 가지는 변수는 양적인 것(과도함)과 역할(수동성)에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성적 쾌락에서 부도덕이란 늘 과도함의 문제이다. 또 무절제는 쾌락과의 관계에서 수동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2] 성적 활동이 도덕적 평가와 구분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성행위가 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위로서 인간의 가장 완성된 존재양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실천의 정도에 대한 도덕적 배려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또 그것이 자연스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만큼 강렬하다고 믿었으므로, 아프로디지아의 쾌락은 하등하고 종속적이며, 피제약적이라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언제든 과도하게 탐닉할 수 있는 이 강렬한 쾌락에 맞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관리술이 도덕적 문제가 되었다.

 

2. 크레시스

이처럼 성적 행동이 도덕적 문제로 설정될 때, 여기에 내포된 복종양식은 어떤 것일까?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 지향하는 것은 크레시스(활용)의 조건 및 양태를 구상하는 것이다. 이 양식이 ‘크레시스 아프로디지온’(쾌락의 활용)이다. 여기서 문제는 허용이나 금지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배분하고 조절하는 방식에서 얼마나 신중하고 심사숙고하며 계획적이냐 하는 것이다. 이 도덕적 규칙은 잘 정의된 규약에 복종하는 것보다, 욕구와 시간과 위상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조절하는 일에 더 가깝다.

 

[1] 욕구의 전략. 쾌락을 무화시키는 게 아니라 쾌락을 유지시키는 게 관건이다. 욕구를 지배하는 전략을 통해 쾌락과 욕망의 역학에 균형을 부여한다. 절제는 규약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활용하며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쾌락의 기술이고 실천이다.

[2] 카이로스. 쾌락의 활용에서는 적절한 순간, 카이로스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까다로운 목표 중 하나이다.

[3] 주체의 위상. 절제를 통해 우월함을 입증하므로, 절제가 어떤 특권과 관련된 자질로 제시되기도 한다. 어떤 태도의 추구를 통한 개인의 윤리적 주체화의 문제.

 

3. 엔크라테이아

고대 그리스든 기독교든 도덕의 문제에서 자기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 엔크라테이아는 소프로쉬네와 자주 함께 쓰이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소프로쉬네’가 절제와 경건함의 의미라면, ‘엔크라테이아’는 욕망과 쾌락에 대한 저항과 지배의 능동적 형태에 가깝다. 소프로쉬네가 무절제와 대비되는 상태라면, 엔크라테이아는 실행하지 못하는 상태와 대비된다. 대체로 엔크라테이아는 자기에 의한 자기지배의 역학과 그에 필요한 노력을 가리킨다.

 

[1] 이런 지배의 훈련에는 투쟁관계가 함축된다.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논쟁적’ 태도가 촉구된다. 쾌락에 관한 도덕적 행동의 기초는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권력을 위한 투쟁이다.

[2] 이때 적수는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의 일부이다. 자기와 자기의 대립이 욕망과 쾌락에 대한 개인의 윤리적 태도를 구성한다.

[3] 완벽하고 굳건한 지배력을 요구하면서도, 엔크라테이아가 욕망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의 현존이 싸움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며, ‘지배-복종’, ‘명령-굴복’, ‘억제-순종’과 같은 관계를 자기 자신과 맺어야 한다.

[4] 개인의 덕목은 도시국가와 함께 구성되며, 쾌락의 윤리학은 정치적 구조와 같은 차원이다.

[5]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훈련은 자기배려와 자기인식, 자기변화로까지 연결된다. 훈련은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상태가 아니라 실천 그 자체이다. 또 자기지배는 타인들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간주된다. 자신에 대한 지배자와 타인에 대한 지배자는 동시에 형성된다.

 

4. 자유와 진리

[1] 소프로쉬네는 자유와 유사한 특징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각 개인은 자신과 맺는 관계를 통해 자유로워지는데, 이 개인들의 자유는 국가 전체에도 필요하다. 이때 개인적 자유는 자유의지의 독립 같은 의미가 아니라, 자기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남과 비슷하다. 나아가 가장 충만하고 능동적인 형태의 자유란, 타인들에게 행하는 권력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권력이다. 뒤집어 말하면 타인들을 통치해야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완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왕다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왕인 자이다.

 

[2] 자제를 능동적 자유로 보면서, 절제의 ‘남성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언어로 자기지배는 자기 자신에 대해 남자가 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남자는 도시국가의 주인이며, 자유롭고, 언제든 타인을 통치할 권한을 가진 자로 읽을 수 있겠다. 근대적 의미의 인간 규정은 고대부터 써왔던 단어의 뜻을 확장하는 식으로 변형되어 왔다. ‘인간’ 혹은 ‘남자’라는 단어에 유색인종이나 여성, 노예 및 하층계급을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남자’라는 개념에는 근대적 의미에서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는 여성과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다. 다만 미성년자, 장애인,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 등은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남자들이 자기를 도덕적 주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과 자신 사이에 남성적 구조를 세워야 한다. 이 구조는 자유민 남자가 자기 하급자들에게 세우는 지배, 계급, 권력관계와 같은 형태이다. 절제를 본질적으로 남성적 구조로 이해하면, 무절제를 수동성과 여성다움에 결부시킨다. 남성적 구조에서 여자(지배할 수 없고, 지배받기만 하는 자)의 특성을 무절제와 복종으로 귀결시키는데, 인간 안에는 능동성과 수동성의 형태로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 모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능동성과 수동성의 대립은 도덕적 태도와 성적 행동의 영역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한 남자가 ‘여성적’이라고 간주될 때는 남성을 사랑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쾌락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다. 능동성과 수동성은 쾌락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3] 자유-지배력은 진리와의 관계로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프로쉬네의 특징으로 ‘욕망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푸코는 쾌락의 실천과 로고스와의 관계 기술에서 세 가지 특징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① 절제하는 인간의 구조에는 이성이 맞다. ② 로고스는 도구이기도 하다. 절제에는 실천적 이성이 필요하다. ③ 절제에는 자기에 의한 자기 존재론적 인식이 필요하다. 욕망을 지배하기 위해 자기 인식의 필요가 있다는 것. 이런 식으로 진리가 영혼과 관계하여 에로스가 정당화하면, 에로스는 육체적 쾌락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후대의 자기 해독이나 욕망의 해석학보다는, 진리(진실)와의 관계를 통한 존재의 미학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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