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터러시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2020. 11.17 손미경 파트 2 “물” 사라 알란은 고대 중국의 추상적 개념들의 최초의 구체적 뿌리로 물에 주목했다.( 뿌리은유 ) 즉 저자는 고대 중국 철학자들이 추상적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현상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종교적 전통 속에서 본체론에 대한 뿌리은유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서양 철학과 달리 중국의 철학 개념들의 뿌리은유들은 자연세계 가운데 그 근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추리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물로 은유하여 표현하였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은 어떤 것이 스스로 흘러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물에 매혹 당했다. 다양한 각도로 인식되는 물의 본성에 따라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공자는 주로 그를 해석한 맹자, 순자를 통해서 노자는 노자 자신과 혹은 장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물의 본성들 ‘끊임없이 흐르는 원천으로서의 물’ 원천으로 흐르는 물의 형이상학적 표현은 시간자체의 흐름이다. 공자는 흘러가는 것에서 시간과 인생 그 자체를 말했다면 노자는 도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의 하나 逝(서, 지나감, 멀리 감)로 생각했다. ‘길을 따라 흐르는 물 (수로)’ 맹자는 방해물을 피해가는 물의 자연적 성향으로 도가에서는 싸움을 피하는 물의 성격으로 인식하였다. 도 자체를 수로나 만물의 관개 수렁(注)로 인식한다. ‘아래로 흐르는 물’ 맹자는 이를 天命으로, 노자는 道로 봄. 초기 중국의 철학적 사고에서 물의 속성 중에 가장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 특히 맹자와 고자는 인간의 본성과 물을 같은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전제하였다. 즉 자연과 인간 현상에 같은 원리를 적용 할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仁政을 베푸는 통치자에게로 백성의 충성심이 움직이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발적인 것이며, 막을 수 없는 자연 질서의 한부분이다. 즉 인과 의를 실행하는 훌륭한 왕의 매력에 반응하여 물 흐르듯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향해 갈 것이다. 노자 또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속성을 매우 중요시 여겼으며 백성들이 성인에게 이끌리는 것은 그의 선함이 아니라 강처럼 낮은 위치에 처하는 성인의 겸손함 때문이라고 보았다. ‘파편을 나르는 물’ 물은 폐기물을 강으로 내다버리는 운반자. 강의 하류에는 파편이 쌓인다. 『노자』에서 하류에 다다름은 큰 국가와 비교되는데, 낮고 습기 많은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통 경시되었다. 노자 역시 하류가 그리 탐탁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정의된 최상의 선은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무르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반면 『논어』에서 하류는 군자가 싫어하는 흙탕이나 진창. 즉 부정적인 시각이 전형적인 태도로 이 점이 노자가 역설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한 이유의 하나이다. ‘부드럽고 다투지 않는 물 (침투력 갑) 물은 항상 양보하고 결코 다투지 않으며 저항을 최소화하는 길을 따른다. 하지만 물은 길에 놓인 어떤 장애도 극복하고 가장 단단한 돌도 닳게 할 수 있다. 맹자는 통치자에게 전자처럼 장애물을 피해서 禹처럼 국가를 다스리라고 충고한 반면 노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천하에서 제일 부드러운 것으로 가장 단단한 것을 극복함을 보았다. ‘어떤 형태를 취하는 물’ 이 특성은 사람이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능력, 즉 융통성과 유연성을 뜻한다. 도가에서는 통치자 특히 약한 위치에 있는 통치자는 압박에 양보하고 요구되는 어떤 형태라고 취하는 물처럼 행동할 것을 말하다. 반면 순자는 통치자를 容器에 비교. 그래서 백성들은 물이 되어 그들이 담는 용기의 어떠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고 보았다. ‘고요할 때 수평을 이루는 물’ 『장자』에서 물이 고요할 때 완전한 수평. 『순자』에서는 더 나아가 물의 평평함과 법의 공평성 정당성을 동일시했다. ‘침전물을 정화하여 거울이 되는 물’ 순자는 강물의 근원을 통치자와 동일시하여 원천의 질에 따라 흐름의 맑기가 달라지듯이 선정의 여부는 통치자의 맑음에 달려있다. 또한 맹자는 거울이 되는 물은 진실이나 원리를 반영하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장자는 물이 고요할 때 이물질이 가라앉아 맑고 빈 상태가 될 때 만물을 비춘다. 즉 물의 본성은 동요하지 않을 때 맑아지고 움직이지 않을 때 수평이 되는 것, 막혀 있다면 맑아지지 못한다고 하였다. 고요할 때 침전함으로써 자체를 공허하게 하고 거울이 되는 물의 능력은 도가의 心 개념들에서 특히 중요하다. ‘투명해서 보기 어려운 물’ 맹자는 투명하면서도 일반인의 이해를 넘어선 방대한 양의 물을 성인의 지혜에 비유하였다. 2. 水의 우주론적 짝인 산과 불 ‘산과 강’ 시공간을 언급할 때 강과 산은 함께 붙어 다닌다. 물리적으로 이 둘은 시간과 공간을 나타낸다. 산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반면 물은 땅으로 내려간다. 산은 높고 강은 낮다. 산과 강은 우주전체를 의미한다. 산은 영원한 것을 상징하고 강은 일시적인 것이자 연속성을 상징(영원성과 변화를 암시하기도 한다)한다. ‘물과 불’ 물은 인간 생명에 필요한 것이고 불은 인간 사회에 필요한 것으로 인식.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간다는 성질 때문에 높고 낮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물과 불은 산과 물과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러나 물과 불은 우주의 힘이어서 서로에게 파괴적으로 작용. 후대의 음양이론에서는 이 원리가 변하여 상극 관계의 연속체가 되었다. 물과 불은 음양이원론의 중심요소이다. 원래 음양은 기본적으로 풍경의 어둡고 그늘진 계곡과 밝은 산의 봉우리를 의미한다. 특히 맹자는 仁을 물로 비유하여 仁이 不仁을 이기는 것을 마치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저자의 결론은 고대 중국 철학자들은 단순히 물이 자발적으로 아래로 흐르고, 고요할 때 스스로 정화하며 단단한 것에 양보하지만 돌도 닳게 할 수 있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이 모두는 우주원리의 표현으로 보았다. 만약 그들이 이 원리를 잘 이해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잘 다스려 질서를 만들 수도 있고 개인의 잠재 능력을 완성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행동하는 올바른 길은 자연의 길을 따르는 것. 도덕적 원리는 초월적 존재의 명령에 기초하지 않으며 도덕적 명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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