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니체] 듣고 읽은 것이 나의 것인가? (0308 후기)2019-03-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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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이 때 저는 예전에 들었던 강원국 님의 강연이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그 분 맞습니다. 소위 대학을 나온 먹물과들이 그렇듯이 평생을 읽고 들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강연, 강의를 들었으며, 얼마나 위대한(?) 책들을 끼고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말하고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그렇게 많이 듣고 읽었는데, 정작 ‘자기의’ 말은 하지도 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왜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강원국 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를, 자신의 수준에 실망할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읽고 들은 것의 수준은 엄청 높은데, 함부로 나의 ‘말’과 ‘글’을 내놓았다간 그 수준이 뽀록날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더하여 자신의 말이 틀릴까봐 두려웠다고도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말과 글이 자신이 모시는 상사의 생각과 다를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상사가 질문하면 그 상사가 원하는 대답을 할 줄 아는 능력을 오히려 연마했다고 합니다. 그룹으로 모여서 세미나나 회의를 할 경우에는 거의 말을 안 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그 그룹의 대세의 생각과 자신의 말이 다를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강원국 님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요리하는 능력만 키워왔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두 분 대통령의 말을 반쯤만 들어도 나머지 이 후에는 무슨 말을 하실지 다 넘겨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책 내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만 탁월해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것을 끄집어내고 키우는 능력은 기르지 못했고, 자신의 것을 ‘표현’해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강원국 님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 듣고 읽은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다. 말하고 쓴 것이 자기의 것이다.

- 말하기 쓰기를 위한 듣기 읽기여야 한다.

- 내 ‘말’과 ‘글’을 발전시켜 나가야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남이 말할 수 있다.

- 말해야 한다. 그래야 남이 당신을 알아갈 수 있다.

  그래야 뭔가를 공유하며 공감하며 공동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워가며 책을 뒤적거리는 자들을 미워한다.”(차라, 63쪽)

 

피로 쓴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미나 대부분을 니체가 한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분석, 해석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 무슨 뜻이예요? 누가 이해한 분 있으면 말 좀 해주어요?....^^;;;) 집에서 혼자 눈으로 읽었을 때 알았던 거 같은데, 세미나 시간 말해보려면 좀처럼 쉽게, 매끄럽게 말해지지 않는 경험도 많이 합니다. 느낌으론 알 것 같은데, 말로 표현이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니체 세미나를 시작한 지 반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입니다.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세미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치는데요. 지난 주 니체의 글과 강원국 님의 강연 내용이 뒤섞이면서, 우리가 이렇게 한 책을 읽는 세미나로 모여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누구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내 말을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어, 다시 내 말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는 셈이니까요.

 

“너는 네 벗에게 맑은 대기이자 고독이며, 빵이자 영약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리조차 풀지 못한다.

 그런데도 벗에게는 구세주가 되지.”(차라, 94쪽)

 

다른 사람이 말할 수 있도록 들어주기.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갈 수 있도록 말하기.

한 발 더 나아가 ‘쓰기’(저도 이게 숙제입니다).^^

 

한 주 동안 니체의 문장을 잡고 끙끙댔을 얼굴들...

세미나 후엔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마음들...

오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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