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발제 _ 0308 아라차
<과학혁명의 구조> 이전과 이후
‘과학science’은 라틴어 scire에서 나온 말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안다’라는 의미다. 한자 과학科學은 ‘나누어지는 학문’이다. 모두 학문을 뜻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자연을 탐구하여 알아낸 지식’을 뜻한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학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은 무엇이고, 토마스 쿤은 ‘과학’의 무엇을 바꾼 것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한다. 여기서 성취는 과학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 이런 성취들이 과학 교과서에 자세히 실려 있다. 완결된 과학적 업적만을 알려면 과학 교과서를 보면 된다.
대다수 과학의 초창기 발전 단계는 자연에 관한 상이한 견해들 간의 부단한 경쟁이 있다. 각각의 견해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과학적 관찰과 방법으로 유도된 것이다. 나름대로 과학적이었던 이런 견해들을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공약불가능한 방식으로 보고 그 속에서 과학을 해야 한다. 공약불가능성이란 새로운 개념이나 주장이 다른 개념이나 주장과 엄격하게 비교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관찰과 경험에는 개인적인 이유에서나 역사적인 우연 때문에 만들어진 임의적인 요소가 항상 끼어들게 마련이다. 과학자 공동체에 의해 제창된 믿음이라는 구성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구성 성분이 과학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적 해답은 과학자 공동체들의 효율적인 질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과학에는 임의적 요소는 존재하고 그것 역시 과학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상과학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도전을 받는다. 변칙현상이 나타나고 전통을 전복할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이 책에서 과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이다. 과학혁명은 전통준수적인 정상과학 활동을 보완하는 전통파괴적인 활동이다. 코페르니쿠스, 뉴턴, 라부아지에, 아인슈타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과학자 공동체들이 한때 높이 기리던 과학 이론을 버리고, 그것과는 양립되지 않는 다른 이론을 받아들이게 한다. 과학적 상상력을 변형시키고, 세계의 변환을 이끈다.
새로운 이론의 창안이 혁명적인 충격을 주는 유일한 과학적 사건은 아니다.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간단히 사실로 도입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 커뮤니티가 전통적인 실험 과정을 재평가하고, 익숙했던 실체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자신들이 세계를 다루기 위해서 사용하던 이론의 연결망을 개편시키는 등 질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학자 공동체의 분파 간 경쟁은 실제적으로 이론을 폐기하거나 다른 이론을 채택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과학사학자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색다르고 덜 누적적인 발전 노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옛 과학이 이룬 성취의 영속적 기여를 부각하기보다, 당대에 이뤄진 비슷한 다른 그룹들의 견해를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쿤은 새로운 과학사 서술의 함의를 밝힘으로써 새로운 과학의 이미지를 그리고자 한다.
혁명은 과학의 영역을 바꾸며 우리가 자연의 일정한 측면에 대해 말하는 언어 그 자체를 바꾼다. 혁명은 격변을 일으킬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한 이전 세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는 미리 설정된 목표를 향한 진보가 아니다. 한때 잘 작동했지만 더 이상 새로운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진보다. 과학의 진보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인 경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덜 적절한 관념, 덜 적절한 상호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로서의 진보만이 가능하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3년. “과학도, 역사도 ‘구성’되었다”는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은 사실이나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과학자 공동체와 자본의 임시적·임의적 결론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거나 비로소 진리에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니다. 과학은 이전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을 선택한 과학자 공동체들의 방식의 변화가 이어진 것들에 불과하다. 패러다임이 없으면 과학 연구는 불가능하고, 패러다임이 있으면 그 패러다임에 구속된 채로 과학 연구에 몰입하게 된다. ‘과학’과 ‘패러다임’을 연결시킨 그 작업 자체가 ‘과학’의 기존 이미지를 바꾸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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