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제국과 확장 : 1980년대와 1990년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경제적 변화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를 강화했다. 문화적, 정치적인 공동체에 대한 감각은 정보 기술의 사용으로 커지고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이런 변화와 함께 미국은 주변화 되기 시작했고 개인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예전의 표준적이고 이성애적, 가부장적인 상상들은 일상생활과 상상 속 세계에서의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와 다른 정체성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정체성에는 비인간 주체의 정체성도 포함되었다. 동시에 시장은 다른 장르로의 교차적 시도와 하드 SF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 과정 속에서 예전 SF의 식민지적 토대와 보수적 지향에 대한 비판과 자기 성찰적인 형식이 자주 나타났다. 다른 텍스트간의 상호 침투되어 매체 산업은 수익성 좋은 작품을 중심으로 소설, 텔레비전 시리즈, 디지털 게임,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대중적 포스트모더니즘 이제 SF는 SF의 공식을 따르고 거기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가능성으로서의 새롭고 다양한 모색을 시도한다. 역사를 다르게 펼치는 평행 세계, 퇴역한 슈퍼 히어로들의 행로 등을 탐색하는가 하면 아이러니컬한 샘플링과 상호 텍스트적인 방식으로서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월드롭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 디즈니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애니메로닉스가 도쿄에서 뉴욕까지 횡단하며 인간이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찾아가거나 (소설<페리스피어의 상속자들>), 과거 SF 영화의 괴물과 외계인들이 파괴한 세계의 탈영병을 따라가며 탐색한다. <가까운 과거의 이상한 괴물들>) 이처럼 월드롭의 소설은 텍스트와 매개,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현실과 소설의 복잡한 중첩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뉴먼 역시 매체와 장르를 패러디하고 파스티슈하고 오마주한다. <빅피시>, <유명한 괴물들>에서 그는 20세기 대중 소설의 이야기들을 끌어들인다. 관료화된 영국 슈퍼히어로 선집에 실린 [핏불 브리턴]은 근육계가 완전히 발기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이밖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의 유산을 부수고 뒤틀어놓는다. 과거의 역사로 들어간 이야기들 속에서 화자는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사건들은 순서에서 벗어나고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정보는 결국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시간무덤’에 의해 나이를 거꾸로 먹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피로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끼리 양자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들은 스페이스오페라에서 모험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새로운 스페이스오페라 스페이스오페라는 이 시기에 가장 성공한 SF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 논평적 비평들은 제국 이후의 모호한 멜랑콜리의 특징을 보이는 영국 작가들의 작품들에 주목한다. 그린랜드의 스페이스오페라는 예전 SF와 다른 문학 텍스트들에 대한 암시를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매클라우드의 소설들은 정치적이며 기술적 사변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뱅크스의 <컬처> 소설들은 진지함과 변덕스러움을 결합해서 ‘컬쳐’라는 결핍 된 유토피아적 은하 문명을 서술한다. 이 유토피아에서는 자본주의적 불평등에서 자유롭지만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를 상기시키는 ‘컬쳐’가 타자들을 개종시키려 한다.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에 오면 ‘컬쳐’는 주인공 호르자(자기 몸을 다시 형상화해서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변형자)가 다른 생명체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파괴하려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새로운 스페이스오페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많은 사람이 박탈된 인간의 행위능력과 감각의 회복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고 불안은 커진다. 새로운 스페이스오페라를 시도했던 영국 작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작가들은 이전 시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군국주의적 줄거리와 주제들을 보여준다. 문화 다원주의와 정체성 이 시기 전반에 걸쳐 SF는 다문화 공동체 개념을 탐구하고 젠더, 인종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켰다. <세라노>의 저자 엘리자베스 문은 나이든 오펠리아를 통해 보살핌의 문화적 유대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옥타비아 버틀러는 인종적 정체성을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교차하는 복잡한 현상으로 재현한다. 귀네스 존스는 <알류샨>3부작을 통해 인간 공동체와 차이라는 관념을 탐구하기 위해 외계인을 끌어들여와 타자성에 대한 선입견이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린피스는 <암모나이트>를 통해 레즈비언 정체성과 공동체를 정상화하는 방식을 시도한다. 모린 F. 맥휴는 <중국의 정산>에서 중국이 제배하는 미래 속의 퀴어 정체성을 그리기도 한다. 생태학적 SF SF는 사회적 구조와 물리적 환경 사이의 관계를 계속 탐구했다. 메리 로젠블럼은 <육지>에서 물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를 통한 세계의 변화와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나타낸다. 셰리 S. 테퍼의 소설은 환경 재앙,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와 젠더 차별을 탐구해 모든 존재의 자율성을 인정할 때 종족간의 친절과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테퍼와 마찬가지로 환경적, 사회적 정의에 전념하면서도 다양한 정치적 지향들을 내포한다. 그의 작품 <화성>3부작은 테라포밍된 화성 식민화의 역사를 기술한다. 1부 [붉은 화성]에서는 화성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테라보밍해야 한다는 각성으로 새로운 문화와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낸다. 2부 [녹색 화성]에서는 지구에 별 관심 없는 화성에서 태어난 세대가 출현한다. 이제 정치적 투쟁은 대체로 행성들 간의 관계에 의한 것이 되었다. 프랙시스라는 기업이 화성 정착자들이 공유하는 원칙을 선언하며 그 원칙들은 화성이 지구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때 새 헌법의 기반이 된다. 이는 환경존중과 생명의 희귀성에 대한 숭배의 정신을 갖도록 명령한다. 3부 [파란화성]은 그 헌법을 작성하고 집행하고 독립을 유지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나간다. 10장 여러 가지 미래가 가능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SF는 경계들이 무너지고 범주가 확장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진보에 대한 비관주의와 현실과 가상의 혼란을 품고 있는 필립 K. 딕의 소설은 영화의 원작이자 영감을 주는 것으로 활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최근 들어 프리퀄 형식으로 제작되어 프랜차이즈화되기도 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테러리스트들이 핵과 생화학적 무기로 공격하는 근미래 소설이 급증하기도 했으며 존 버밍햄의 <시간의 축>에서처럼 미국 역사를 돌아보며 미 공화국을 재현하기도 했다. 적의 공격에 대한 불안은 사스와 바이러스 공격으로 인한 팬데믹과 연결되어 수많은 좀비 소설 같은 바이러스 서사를 통해 표현되었다. 저자는 21세기의 SF의 흐름을 여섯 가지로 구별하며 설명한다. 첫 번째는 근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지구온난화, 자본주의 종말, 경기 팽창, DNA결합에 의한 인조인간의 출현, 미국의 봉건제 출현 등이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한다. 두 번째는 하드 SF의 유행이다. 염색체 변이와 양자 물리학의 발전, 포스트휴먼 등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새로운 상상력이 출현한다. 세 번째는 기술변화가 가속화되어 이후의 생활을 예측하거나 존재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특이점의 소설들이 등장한다. 기계들은 인간을 미래의 장애로 보고 인간을 능가해 인간과 무관한 존재가 된다. 지적 기계에 의해 증강된 인간은 자연의 한계를 넘는다. 네 번째는 대체 소설들과 SF와 역사소설의 요소들이 결합한 소설들이다. 다섯 번째는 지구관광 SF라 불리는 세계화된 SF의 확산이다. 많은 외국어 SF가 번역되어 나오고 국가의 경계는 무너진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이기도 하며 서구의 문화적 형식들은 도전을 받는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서로 중복되고 경계를 부수고 매시업 되는 양상으로의 SF의 확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 인물은 두 개의 이야기로 분리되거나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저자가 진술한 SF연대기는 2000년대에서 끝이 난다. 그 이후에 우리는 더욱 다양하고 확장된 세계의 SF들을 접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판세가 기울어지고 있음에도 헐리우드에서는 끊임없이 블록버스터 영화가 성공을 거두고 있고 SF의 소재는 재활용되고 차용, 변용된다. 또한 넥플릭스와 왓차, 애플TV 등 OTT플랫폼의 등장과 동아시아 SF의 약진으로 SF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 책 말미에 저자의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일단 우리가 눈을 깜박이면, 일단 양자택일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알아차리면, 돌아갈 길은 없다.” 우리가 SF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능성으로 펼쳐진 광대한 이야기의 현재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 장르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이야기는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간다. 황폐해져가는 지구로부터, 인간성이라는 환상으로부터, 이야기의 질서와 현실의 규범으로부터 탈주하는 모든 가능성들이 이곳에 도사리고 있다. 물론 가능한 모든 이야기는 이미 누군가 꿈꾸었거나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탈주의 길은 여전히 무한하다는....... 꿈만은 아직 유효한 것 같다..... 돌아갈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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