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마오] <고별혁명> 2부 & 3부2019-07-1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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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고별혁명 2부+3부.pdf (183.9KB)

《고별혁명》: 현대 중국 지식인의 심리상자

에레혼

《고별혁명》이 대담집이라는 사실은 양날의 검처럼 보인다. 일단 대화체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다른 인문학 서적보다 글자 자체는 쉽게 잘 들어온다. 하지만 리저허우李澤厚와 류짜이푸劉再復의 대화는 중구난방으로 흐르고 산만한 느낌마저 준다. 개인적으로 《고별혁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은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지점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두 학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실소가 나올 때도 있고 허탈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고별혁명》 독해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두 사람이 중국 역사와 인물에 대해 전면적인 재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 《고별혁명》의 독해를 어렵게 한다. 이런 어려움은 특히 2부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대대적으로 역사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시도했으며, 1996년에 발표된 《고별혁명》에는 중국 지식계에 축적되어 온 논의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리저허우ㆍ류짜이푸의 정리가 실제 중국의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21세기 중국의 발전 방향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서 ‘불편한 독서’의 두 번째 원인을 포착할 수 있다. 1부에서부터 내내 두 학자는 면밀한 분석을 진행하고 나서 맥이 풀리는 결론을 내놓고 만다. 또다시 도덕적인 우월성(215)에 집착하고, 난데없이 쑨원을 ‘밥 먹는 철학(239)에 결부시키는가 하면, 심지어는 중국 근대의 폭력적 사건들을 피할 수 있는 방도라는 이유로 복벽 역시 수용할 만한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253)

 

리저허우ㆍ류짜이푸의 역사 진단─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역사에 대한 가정’은 회한의 감정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마오쩌둥이 아니라 더욱 도덕적으로 뛰어난 쑨원이 중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면”, “캉유웨이의 변법이 받아들여져서 중국식 입헌 군주제가 시행될 수 있었더라면”, …… 물론 두 학자가 문혁을 경험한 인물들이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문혁의 대척점을 적극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반대의 해결책을 도입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두 인물의 논의를 듣고 나니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쑨원은 마오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인가? 이는 도덕적 우월성이 폭력성(혹은 권모술수)에 수반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같다. 신해혁명이 황제를 위안스카이로 교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도덕성이 넘을 수 없는 울타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은 리저허우가 ‘실용성’을 중국 철학의 주요 논의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 묵자나 순자, 동중서, 섭적, 황종희, 캉유웨이 등은 모두 ‘이’를 강조하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을 강조했지요. …… 특히 신유가新儒家는 경세치용을 강조했던 사상가들을 아주 소홀하게 다루고 있지요.(277)” 이 발언은 《고별혁명》에서 여러 번에 걸쳐 등장한 ‘밥 먹는 철학’, 그리고 90년대 중국 사회의 ‘샤하이下海: 개혁개방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사업이나 이윤 추구에 뛰어드는 모습을 바다에 입수하는 것으로 비유한 표현. 당시 지식인들도 이러한 경향을 따르며 중국의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 바 있음.’ 현상을 연상시킨다. 실용에 대한 강조는 리저허우가 중국 전통을 바꾸려면 새로운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관련되어 있으나, 그의 주장이 지금 중국의 주축이 된 890년대에 태어난 청년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고별혁명》에서 리저허우가 강조한 것이 무색할 만큼, 지금의 중국은 밥 먹여주는 일이 아니라면 어디서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 ‘밥 먹는’이라는 수식어에 ‘철학’이란 단어가 뒤따르는 것은 다소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백 번 양보해서 리저허우의 말이 대약진 시기와 문혁을 경험한 인물의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약진ㆍ문혁을 역사 교과서나 드라마에서 겨우 접할 수 있는 세대들에게 학문과 ‘먹고사니즘’을 결부시키는 것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처럼 사용되지 않고 있는 지금, 밥 먹는 철학이니 실용성이니 하는 말을 들으니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착잡한 기분도 든다. 리저허우와 류짜이푸는 이런 결론으로 향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역사 속 인물을 동원하고, 동ㆍ서양을 넘나드는 철학 개념을 인용한 것인가? 《고별혁명》은 개량과 혁명에 대한 이야기지만 중국 지식인들의 내밀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 이 책은 (저자들의 저술 의도와 거리가 멀지만) 어떤 자본주의 사회보다 모든 것을 자본과 결부시키는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상과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지식인의 모범으로 추앙되는 사람 가운데 송나라의 인물 범중엄范仲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악양루기岳陽樓記>라는 글에서 지식인(당시에는 ‘문인’)의 임무를 이렇게 규정한다. “세상이 근심하는 것보다 먼저 근심하고, 세상이 즐거워한 이후에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중국 지식인과 학자들에게 이 구절은 좌우명처럼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지식인에게 더 이상 선각자의 역할을 요구하지 않고, 그들도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물론 이러한 추락과 거리를 둔 채로 학문에만 몰두하는 지식인들도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소한 일을 궁리하느라 긴 시간을 허비했다(214)’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별혁명》에 나타나는 상투적이면서도 깊이가 떨어지는 결론 도출을 보면서 세상 보다 먼저 근심한 결과가 겨우 그 정도인가 하는 감상이 뒤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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