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유라시아의 몇몇 국가가 전 세계의 다른 대륙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는지를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어떤 이들은 유라시아 문명의 우월함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런 시각이 편견과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며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총과 균, 쇠가 바로 그 다른 이유이다. 그러니까 유라시아 문명은 총, 균, 쇠를 통해 다른 대륙을 정복했다. 총, 균, 쇠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인구증가와 과밀화가 필요하다.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식량 생산 방식이 발전해야 하고, 이동 생활보다는 정주 형태가 유리하다. 수렵•채집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생산하게 된 이들은 좁은 공간에 많은 인구는 물론 동물들과도 함께 살았다. 인간과 동물에 적응하는 세균도 정주 생활과 함께 적응을 시작한다. 많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생겨나고, 그만큼 인간과 동물의 면역체계도 발달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달리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는 가축화할 동물의 수가 적었고, 그만큼 인수공통감염병이 생겨날 여지도 적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사람들과 접촉하자마자 함께 들어온 온갖 세균성 질병으로 쓰러졌다. 한 집단 내에서 특정 질병에 면역체계가 생겨나려면 어느 정도의 인구 규모가 필요한데,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서는 면역체계가 생길 만한 시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한 부족 전체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생겨났다. 흔히들 문자를 문명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자가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의견에 비관적이다. 문자를 통해 확실히 더 풍부하고 자세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가능하고, 실제로 정복 전쟁에서도 명령지시서나 해도에 적힌 문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의 거대 제국들 역시 일찍부터 문자를 사용했다. 고대부터 많은 문명이 고유의 문자를 만들거나, 들여와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초기의 문자들이 주로 회계 용도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초기의 문자 사용에서 지배계층은 자신들을 위해 용도와 이용자에 제한을 두었다. 문자를 이용하는 이들은 식량 생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으니, 식량 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계층이 분화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보기에 식량 생산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어느 사회든 시간의 문제일 뿐 문자가 발명될 여지는 충분했다. 문자뿐 아니라 다른 기술도 마찬가지다. 인쇄술, 증기기관, 전기, 자동차 등 인류의 많은 발명품도 오랜 시간 기술이 축적되면 어느 사회에서나 발명될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뒤집어 오히려 ‘발명품이 용도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발명은 한 개인의 천재성보다 사회의 전체적인 기술 축적에서 비롯되고, 이런 사회에서 경쟁적인 발명이 의도하지 않은 수요로 이어질 때가 많다. 발명이 필요를 만드는 셈이다. 역사책에서는 흔히 인간이 사용하던 도구를 기준으로 삼아 석기, 청동기, 철기 등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각 시대가 구분되는 시기에는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엄청난 기술 혁신이 나타났다. 쇠로 만든 무기와 총을 든 유럽인은 석기를 사용하는 폴리네시아인들이 합금기술 등을 축적할 틈도 없이 기술적으로 개입해 버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유라시아인들이 이렇게 빠른 기술혁신을 이룬 이유도 단지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제3부에서 다루는 정복자들의 마지막 도구는 국가이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사회 발전 단계를 보면, 사회는 비교적 평등한 무리와 부족 사회를 지나 불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추장 사회와 국가로 진행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추장 사회와 국가의 특징을 거대한 규모의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과 도둑 정치로 꼽는다. 불평등한 추장 사회와 국가는 엘리트가 재분배라는 명목으로 공공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일이 가능하다. 대중들이 이런 도둑 정치의 위험 아래서도 추장과 국가에 충성하는 이유는 폭력을 억제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기능 때문이다. 추장과 국가에 대한 충성은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통해 더 강화된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국가가 다른 지역을 정복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역할도 한다. 대량으로 식량을 생산하게 된 초기 국가들은 각 직업을 전문화하여 정복 전쟁을 더 크게 벌였고,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아 다시 식량 생산에 투입했다. 국가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했고, 루소는 사회 계약으로 국가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대규모 관개 시설을 건설한 시기와 국가 형성 시기가 겹친다는 점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국가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거나 사회 계약 및 다른 이점으로 생겨난다고 보는 견해에 회의적이다. 중앙집권적 권위체인 국가는 갈등 해결과 재분배를 내세우지만, 평화로운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의 불평등을 전제로 형성된 국가는 무리에서 부족, 부족에서 추장 사회, 추장 사회에서 다시 국가로 규모가 커지는 과정을 거쳐왔듯 점점 더 큰 규모의 국가를 지향한다. 다른 국가를 정복하거나 여러 국가를 합쳐 제국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정복은 국가 내부의 불평등과 경쟁을 완화하면서, 식량 생산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이용된다. 유라시아의 여러 국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유라시아에서 전 세계로 정복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많은 대륙이 유라시아 국가들에 쉽게 정복당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전에도 그 이유를 밝히려는 학자들은 있었고, 유라시아인들의 우월함과 다른 대륙인들의 열등함을 대비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결론에 반대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도구와 기술, 문자와 국가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는 정복당한 이유가 아닌 정복에 나선 이유와 정복을 정당화하는 도구를 밝혀낸다. 역시 이유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쪽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