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제13곡 ~ 제23곡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지옥 기행이 계속되며, 제7원의 각 둘레와 구렁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제7원의 둘째 둘레에서는 자살한 자들이 나무가 되어 하피들에게 뜯어먹히는 벌을 당하고 있다. 이어 셋째 둘레에서는 신성을 모독한 자들이 불타는 모래밭에서 불비를 맞는 모습이 묘사된다. 여기에는 남색을 행한 이들과 고리대금업자들도 함께 있다. 제7원이 끝나는 곳의 절벽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괴물 게리온을 만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게리온의 등에 타고 열 개의 구렁으로 이루어진 제8원에 도착한다. 첫째 구렁에는 뚜쟁이와 타인을 유혹하고 배신한 이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을 맞고 있다. 둘째 구렁은 더러운 오물에 빠진 아첨꾼들의 차지다. 셋째 구렁에는 성직이나 성물을 매매한 이들이 바닥의 구멍에 거꾸로 처박혀 발바닥만 불에 타는 중이다. 넷째 구렁에서는 머리가 등 뒤로 돌아간 예언자들이 베르길리우스의 만토바 유래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듣게 된다. 다섯째 구렁에서는 끓는 역청 속에 잠긴 탐관오리들을 만난다. 이들을 감시하는 악마 무리 말레브랑케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일행을 막아서며 위협한다. 악마들은 베르길리우스의 위엄에 굴복하며 길을 비켜주는 척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따라오며 은근히 위협하던 악마들은 한 죄인에게 속아 역청에 빠지게 된다. 화가 난 악마들이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에게 달려들지만, 베르길리우스의 민첩함 덕에 악마들에게서 벗어나 여섯째 구렁에 도착한다. 포악한 말레브랑케는 다섯째 구렁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므로, 여섯째 구렁까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쫓아갈 수 없다. 여섯째 구렁에는 황금색 옷을 입은 위선자들이 있다. 위선자들은 무거운 납으로 만든 옷을 입고, 옷의 무게를 견디며 피로한 채로 천천히 걷는다. 바닥에는 유대민족을 위해 예수를 못 박으라 했던 사제 가야파가 못 박혀 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길이 무너졌다는 말에 말레브랑케에 속았음을 알게 된다. 흥미롭게도 제7원의 셋째 둘레에서 만난 신성을 모독한 자들에는 남색을 행한 이들도 포함된다. 남색이 자연의 법칙이나 순리를 어겼기 때문이라 설명하는데, 기독교 안에서 기독교의 신성과 자연의 법칙이 어떻게 중첩되고 교차하는지 궁금하다. 단테는 이곳에서 만난 죄인들에게 경멸보다 연민을 느낀다. 심지어 여기서 단테의 스승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단테는 현실의 스승보다 베르길리우스에게 더 존경과 애착을 느끼는 듯 보인다. 지금까지 전개를 보면 나는 이 책에서 단테의 지성이나 선량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옹졸함이나 고집, 오만함, 본인 위주로 사고하는 편협함을 많이 느낀다. 지옥의 고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동시에 선량한 자신은 그 고통과 멀리 있다고 여기는 안일함이 조잡한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누가 지옥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유명한 죄인들과 수다를 떠는 일에 몰두할 때는 한심하기까지 하다. 특히 심각한 여성혐오와 괴물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게리온이라는 괴물을 묘사할 때는 괴물의 흉측한 외모를 이용하여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흉측하고 포악한 괴물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베르길리우스가 시키는 대로 원하는 곳에 데려다준다는 전개는 독자를 맥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포악하고 흉측한 괴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좀 벌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반면에 말레브랑케에 대한 묘사는 장르소설에 진심인 단테의 일면이 엿보여서 흥미로웠다. 각각의 말레브랑케에게 이름을 붙이고 성격을 부여한 점도 놀라웠다. 적당히 사악하고, 적당히 어리석고, 적당히 포악한 악마 무리와 함께 하는 불안한 여정이 재미와 동시에 모종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들의 거짓말이 앞으로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이 정도면 지옥의 악마들 캐릭터를 충분히 잘 살려주었다고 본다. 지옥편의 2/3 정도를 읽고 나서 내가 보는 단테는 확실히 지식인이나 종교에 심취한 사람은 아니다. 지옥에서 피렌체 사람을 만나 피렌체의 예절과 가치가 이렇게 떨어졌다고 한탄할 때는 그냥 퇴근 후에 소주 마시고 세상 욕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소시민이다.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었거나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지옥에 모아놓고 벌주는 글을 쓰면서도 자기 자랑이나 변명은 빼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갈수록 거리감보다는 친근감이 쌓여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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