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남장을 하는 비올라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여자로서는 오르시노를 사랑하면서 남장일 때는 올리비아의 사랑을 받는다. 올리비아의 숙부인 토비는 친구인 앤드류 경을 위하는 척 하지만 그를 속여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고 그가 없을 때는 그를 비웃는다. 비올라의 쌍둥이 오빠를 구하고 그에게 애정을 고백하던 안토니오 역시 궁지에 몰리자 신의를 배신하고 돈을 요구한다. 이들 사이에서 계략을 꾀하는 올리비아의 시녀 마리아는 그녀의 주인에 대한 충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물론 마리아와 토비의 계략에 빠져 오해한 것이었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신하 말볼리오를 광인으로 취급하며 가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건을 관조하는 어릿광대 페스티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세대를 들여다보면 한심하죠! 말꾼에겐 문장이란 쉽사리 뒤집어 낄 수 있는 가죽 장갑에 불과해요, 속을 재빨리 뒤집을 수 있거든요....... 말 없인 근거를 대지 못하겠소. 말이 너무도 믿지 못할 것이 되어서 그걸 가지고 근거를 대기가 싫소. (3막 1장) 이 모든 사건의 난장판은 서로를 속이고 속는 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사람이 나약한 것은 사자에게 잡아 먹히는 신체의 나약함이 아니라 말에 속는 ‘가장 솔직하고 주의 깊은 귀’(3막 1장 비올라의 말)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의 무지란 이처럼 듣는 말에 속고 보고도 보지 못하는 아둔함 때문일 것이다. “무식이 지옥처럼 깜깜하다면 확실히 이 집은 무식처럼 깜깜하오.”(4막 2장)라고 말한 말보리오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세상을 뒤집어 봐도 좋을 것이다. 말보리오 : 원수들은 솔직하게 저에게 바보라고 하니까 원수들한테서 저 자신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고 친구들한테는 기만을 당하죠. (4막 2장) 원수는 원수가 아니고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허상이다. 결국 우리의 어리석음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비바람 속에서도 연극 같은 삶을 순간 즐기는 일 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페스티 : (중략) 하지만 아무 데나 쓰러져 잠이 들면 휘휘 사납게 불어치는 비바람 주정꾼과 언제나 머릴 맞댔지 비란 놈은 매일같이 죽죽 내리지. 까마득한 옛날에 개벽된 세상, 휘휘 사납게 불어치는 비바람 하지만 어쨌거나 연극은 끝났어. 매일같이 즐거움 선사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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