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R&D] 5월 11일 <총,균, 쇠>1부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
책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저자는 뉴기니의 정치인 얄리의 이 질문에 인류사를 꿰뚫는 중요한 핵심이 있다고 보았다. 얄리의 질문은 학자인 저자에게 와서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가 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총, 균, 쇠를 먼저 습득한 대륙이 더 빨리 발전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산업화된 국가가 수렵 채집민 부족보다 ‘낫다’든지, 수렵 채집민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철 중심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진보’라든지, 그와 같은 변화가 인류의 행복의 증대했다든지 따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문장이 중요하다. 물론 지리적 환경과 생태 환경이 사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새롭게 살펴볼 시기가 되었고,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한다. 특히 저자는 언어, 즉 문자가 발전 속도에 상당한 추진력을 제공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먼저 우리가 유인원에서 분기된 700만년 전부터 최종 빙하기가 끝난 1만 3천 년 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진화와 그 역사를 훑고 있다. 소위 ‘문명의 발흥’이 일어나기 직전 세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조상이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간 과정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약 5만 년 전으로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부터였다. 크로마뇽인은 석기, 골기 등을 사용했고 라스코동굴에 예술작품도 남겼다. 이때 한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인류의 뇌에서 후두가 완성됨에 따라 현대적 언어를 위한 해부학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저자는 <제3의 침팬지>에서 언어야말로 인간의 창의성을 구현하는 밑바탕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시기에는 인류의 지리적 범위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까지 확대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배를 사용했다는 것과 인간에 의해 최초로 대형동물이 대량 멸종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무엇 때문에 대형동물군이 거의 동시에 사라져버렸던 것일까? 기후변화 때문인지 현생인류에 의한 멸종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분분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북아메리카에서도 대형 포유류는 대부분 멸종했다. 시기는 대략 B.C 11000년경이다.
저자는 단락마다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각 대륙의 다양화를 불러온 환경적 차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 사회는 각기 경제적 전문화, 사회적 복잡성, 정치적 조직, 유형 생산품 등이 크게 달랐다. 원래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각기 다른 환경으로 인해 얼마 안 되는 지표 면적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그 사회의 차이점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폴리네시아는 환경과 관련해 인간 사회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렇다면 다른 대륙에서도 그랬을까?
근대에 이르러 가장 큰 규모의 인구이동이 일어난다. 유럽인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정복되는 시기다.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1532년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마주친 사건이다.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것은 유럽이 잉카제국을 정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선행으로 포장된 정복과 말살은 생각보다 어처구니없이 진행됐다. 168명의 스페인 군사와 8만 명의 대군을 거느렸던 잉카 제국. 쇠칼을 비롯한 무기들, 갑옷, 총, 말을 갖춘 군대와 돌, 청동기, 나무 곤봉, 갈고리 막대, 손도끼를 든 군대의 싸움이었다. 장비의 불균형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기타 민족들 사이의 수많은 대결에서도 역시 결정적이었다.
장비 외에 결정적 원인은 유행병이었다. 스페인 이주민들이 파나마와 콜롬비아에 도착한 후부터 인디안 사이에서 천연두가 퍼지기 시작했다. 황제와 신하들이 죽었고 후계자까지 죽어버렸다. 그들이 모두 죽어버리자 아타우알파와 그의 이복형제들이 제위 다툼을 벌였고 피사로는 이 분열을 재빨리 파악하고 충분히 활용했다. 상당한 면역성을 가진 침략자들이 면역성 없는 민족에게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페스트를 비롯한 유럽 고유의 전염병들을 퍼뜨렸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질병은 남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유럽인 사이에서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렇게 죽어간 아메리카 원민의 수는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유럽의 해양기술과 중앙집권적 정치조직도 크게 작용했다. 잉카 황제에게도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이 있었지만 침략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잉카의 관료 체제는 신과 같은 존재인 절대군주 체제였기 때문에 아타우알파가 죽자 송두리째 와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잉카제국에는 문자가 없었지만 스페인에는 있었다. 정보는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 문자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더 자세히 전파할 수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대한 정보가 곧 스페인으로 전해지면서 스페인인이 신대륙으로 밀려들었다. 피사로의 아타우알파 생포 소식은 전한 출판물은 9개월만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유럽 각국의 언어로 신속하게 번역되었고, 그로써 스페인 이주민들이 페루에 더 많이 흘러들어 피사로 지배력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이처럼 정복의 직접적 원인은 뚜렷하다.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이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는 그러한 직접적 원인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인류가 총기나 철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일부 비유럽계 민족들이 (B.C 11000년경)팽창한 배경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어째서 잉카족은 총과 쇠칼을 발명하거나, 말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유럽인에게 저항력이 없는 질병을 지니거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와 발전된 정치조직을 만들거나, 수천 년에 걸쳐 기록된 역사에서 경험을 얻거나 하지 못했을까? 책의 2부와 3부에서 직접적 인과관계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 인과관계 문제가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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