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좀비학] 좀비, 노예의 다른 이름2021-02-2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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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좀비, 노예의 다른 이름.hwp (261.5KB)


아이티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 서인도제도(카리브해)에 위치한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2010년의 대지진으로 기억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대지진으로 당시 아이티 전체 인구의 1/3인 3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대지진 이외에도 홍수와 폭풍우 등 여러 자연재해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외국에 나가 노동하는 가족이 보내주는 돈과 국제원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수가 많다.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적이 있으며, 20세기에는 미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과 학살로 지금은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인구의 95%는 아프리카계 흑인이고, 나머지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이다. 원주민들이 사라지자,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을 시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티의 주민들은 대부분 그 흑인 노예들의 후손이다. 노예들은 낯선 땅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두교였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부두교를 통해 유대감을 가지며, 결속하게 되었다.

 

‘좀비’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아이티의 부두교에서 기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좀비는 노예들의 처절한 삶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부두교에는 독과 주술을 통해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노예들에게 좀비는 일종의 형벌이었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좀비형에 처했다. 노예들의 삶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자유나 안식이었는데, 좀비에게는 휴식도 없고 죽은 뒤에 올 안식도 없다. 그러니 좀비형은 노예에게 죽음보다 무거운 형벌이었다. 형벌을 통해 좀비가 되면 의식 없이 주인의 말을 따르며, 쉬지도 않고 노동만 하게 된다.

 

아이티를 방문하거나 거주한 백인들은 이 좀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노예들이 자신들에게도 주술을 걸어 좀비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어쩌면 백인들의 분열된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세계 곳곳을 침략하여 점령한 백인들은 ‘인간’의 범위를 아주 좁게 한정했다. 이 ‘인간’에 흑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흑인은 사고팔 수 있는 동물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러면서도 백인들은 두려움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흑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인간은 개념상의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 언제나 타자를 끌어온다. 인간을 설명하려면 먼저 비인간의 모습을 나열하고, 비인간의 속성을 제거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흑인노예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인들에게 노예들은 여전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언어를 사용하는 등 인간의 속성을 보이지만,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기는 주체성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무엇, 노예는 그런 존재였다. 인간보다는 좀비가 노예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고통에 대한 표현이나 저항도 없이 묵묵히 고된 노동을 해내는 모습은 분명 인간의 생존방식은 아니었다.

 

고된 노동과 환경은 노예를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좀비로 만들었다. 이 책 《좀비학》에는 한 영화에서 주술사가 좀비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장면이 묘사된다. “머더는 수많은 좀비를 만들어 마치 공장 노동자처럼 이들을 부리는데, 이 노동은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계적 작업으로 별다른 의식 활동이 없어도 가능한 노동이다. 영화 속에서 좀비들은 줄을 맞춰 굼뜬 동작으로 이 노동을 묵묵히 수행한다. 일부 좀비는 그 과정에서 분쇄기에 빠져 죽어 나가기도 하지만, 주위의 다른 좀비들, 그리고 빠진 좀비 자신조차도 여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158쪽) 조금 과장을 보태면 지금 우리 시대의 노동자는 바로 이 노예좀비의 후손이다.

 

노예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고 싶지 않아 좀비로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기 아내나 약혼녀를 좀비로 만들어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백인들의 분열된 무의식이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백인도, 흑인도 같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만든 영화에서는 흑인좀비와 백인좀비가 결코 같지 않음을 여러 면에서 강조하지만, 백인들은 흑인이 자신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20세기 초, 미국에서 링컨이 <노예해방선언>(1863)을 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난 후임에도 말이다.

 

미국의 독립전쟁(1775~1783)은 프랑스대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대혁명에서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이라는 인권선언이 등장한다. 이 선언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에 감명을 받은 아이티의 혁명가들은 프랑스에 식민지 독립과 노예제 폐지를 요구했다. 노예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던 프랑스의 시민(지식인/자산가)들이 이 요구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 인권선언에서 인간은 바로 우리 백인 남성들만을 말하는 거라고!’라며 소리치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을까. 마지못해 1825년에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주권을 인정한다. 당시 프랑스 전체 GDP의 2%에 달하는 1억5천만 프랑 배상을 약속 받고 난 후에.

 

이미 아이티의 수많은 주민과 혁명가들이 잔인하게 처형된 뒤였다. 아이티는 프랑스에 상환금을 지불하기 위해 20세기 중반까지 채무에 시달려야 했고, 이는 현재까지 아이티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아메리카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한 나라 아이티는 이후 독립국으로 발전하기는커녕 다시 1915년에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 지금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 본 영화들도 그 식민지 시절 무렵 전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강제로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했던 노예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던 이들의 다른 이름은 좀비였다. 이들을 좀비로 부르고자 하는 이들은, 이들이 가진 저항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한다. 어떤 의지도, 문명의 힘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감히 자신들에게 대적하지 못하리라 여긴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1793년 아이티혁명 당시 프랑스에서 온 행정관은 상황이 너무 다급한 나머지 본국 의회의 승인도 받지 못하고 노예제도 폐지를 선언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티인들의 저항에 당시 행정관이 느낀 공포를 프랑스에 있는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의지도, 문명의 힘도 가지지 못한 좀비의 파괴력을 얕잡아 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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