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문학] 홍루몽 71회 - 80회: 진짜_홍루몽_진짜_최종.docx2019-11-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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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홍루몽 71회 - 80회.docx (76.2KB)홍루몽 71회 - 80회.pdf (228.7KB)

진짜_홍루몽_진짜_최종.docx

에레혼

현대 중국 최고의 여류작가로 불리는 장애령張愛玲. 많은 사람들은 장애령을 소설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홍루몽염紅樓夢》이라는 책을 낸 적 있는 홍학가이기도 하다. 장애령은 《홍루몽염》에서 ‘정말 아쉬운 세 가지 일三大恨事’을 이야기하는데,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여기서 세 가지 아쉬운 일이란, 첫째는 해당화에 향기가 없는 것海棠無香, 둘째는 준치에 가시가 많은 것魚多刺, 셋째는 《홍루몽》이 완결되지 않은 것紅樓夢未完이다. 어째 맨 마지막을 이야기하기 위해 앞의 두가지를 가져왔다는 의혹이 든다. 실제로 첫번째와 두번째 아쉬운 일은 송나라 문인이 썼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한때 《홍루몽》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 알아주는 《홍루몽》 덕후(?)가 던진 말이기에 《홍루몽》이 완결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개인적으로 80회를 읽게 되는 세미나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81회가 시작되면 대관원 시즌 2’가 시작이 되는 것인지, 어째서 몇몇 《홍루몽》 연구자들이 81회 이후 내용에 대해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루려면 원문으로 필체의 변화를 확인해봐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81회부터 120회까지의 내용을 독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 지금 《홍루몽》을 읽는 단계에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란 것이다.

고악의 후반부 40회와 이전 80회를 비교하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야할테지만, 71회에서 80회를 읽으며 이야기가 마지막을 향해 가는신호를 작품 여러 군데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잦은 병치레, 청문과 같은 주요 인물의 죽음은 금릉십이차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는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병이 난 왕희봉의 상황을 묘사하는 평아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냥 보다 못해서 내가 몸이 좀 어떠냐고 물어보기만 해도 화를 버럭 내면서 병이 나라고 저주하는 거냐며 난리치시니 낸들 어떡해? 형편이 그런데도 날마다 이것저것 살피고 챙기시며 자기 몸은 돌볼 줄 모르시니 큰일이야.” 72, 321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삼국지》 속 제갈량이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위와 촉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사마의는 제갈량이 적게 식사하며 스무 대 이상의 형벌에는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비가 사망한 이후로 국정의 세세한 부분에도 관여하고 있던 제갈량의 모습을 듣고 사마의는 제갈량이 얼마 살지 못할 것임을 확신한다. 대관원의 크고 작은 일을 총괄하던 왕희봉은 병이 나서도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희봉의 행동은 병을 핑계로 자신이 뒤로 물러났을 때 권력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왕희봉의 성미를 건드리는 가련의 행동들까지 가세하면 그의 최후가 곱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왕희봉이 대관원에 없다면─관리자라는 타이틀을 붙일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홍루몽》 세계에서 왕희봉의 최후는 곧 대관원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71회에서 80회까지의 소설 내용이 금방이라도 마무리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대관원이 몰락해가는 신호가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330쪽에서 왕희봉의 입을 통해 직접 대관원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 말고도 많은 구절들을 통해 독자들은 대관원의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속담에도 갈수록 전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예전에 잘 나가던 때를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72, 335

우리 집 하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겉치레로 허례허식이나 체면만 따지고 있다니까.” 75, 401

이런 부분들을 읽고 나면 대관원은 여태까지 돌아가던 관성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홍루몽》의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려면 가보옥을 지상으로 보낸 하늘에서 다시 그를 거두어가는 과정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대관원이 서서히 자멸하는 연대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74회에서 등장하는 탐춘의 대사는 이와 같은 스토리라인을 암시하고 있는듯하다. 옛말에도 있듯이 다리 백개 달린 지네는 죽어서도 꿈틀거린다고 했잖아요. 반드시 안으로부터 망해들어가야 비로소 완전하게 몰락하는 법이에요.” 74, 384

앞부분에 언급했던 80회본─120회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최용철 번역본에는 첨부되지 않았지만 고악이 쓴 120회본 《홍루몽》 원문에는 저자의 서문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이 책의 결말이 몹시 궁금했지만 온전한 《홍루몽》을 찾아낸 사람은 없었다. 정위원과 고악이 사탕을 파는 노점에서 둘둘 말려 있는 오래된 종이뭉치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그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찾지 못했던 《홍루몽》의 후반 40회였다. 이것을 특별히 교정하여 전반부 80회에 이어붙였다.”

호적胡適은 세상에 이런 절묘한 우연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서문의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의 소설이 되어버린 케이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조설근은 쓴 《홍루몽》은 전체 분량으로 놓고 보았을 때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판본 때문에 의견이 분분했던 《수호전》과 비교할 때, 《홍루몽》의 판본 문제는 논란이라 할 것도 없을 정도이다. ‘진짜 《홍루몽》이라는 말을 쓰는 연구자들이 있다 해도,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120회본을 정본으로 인정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81회부터 작품 이어쓰기에 큰 논란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고악의 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회부터 80회까지의 내용이 인물 구조, 이야기의 복선 등 많은 부분에서 이미 조설근이 정해 놓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작품에 암시된 내용들을 파악한 사람이라면 《홍루몽》을 이어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홍루몽》의 후속 작품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조설근이 구축한 세계관이 탄탄하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작품에서 암시된 내용을 이야기할 때 금릉십이차의 운명을 시로 예견하는 5회를 언급하지만, 조설근은 생각보다 세세한 부분에 복선을 깔아 놓았다. 대관원의 몰락 역시 이미 2회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 냉자흥은 가우촌에게 영국부와 녕국부를 이야기하며 두 집안이 쇠락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다리 백 개 달린 벌레는 죽어도 꿈틀한다百足之蟲,死而不는 동일한 표현이 등장한다.) 조설근이 설계한 시나리오에서 움직이는 것은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81회부터 바통을 넘겨받게 된 고악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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