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에세이][홍루몽] <홍루몽>의 이름으로2019-12-2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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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이름으로

2019 에세이/ 홍루몽 세미나/ 에레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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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제목들이 탄생하기까지

 

석두기石頭記, 풍월보감風月寶鑑,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정승록情僧錄. 이 단어들은 일정한 규칙이 보이지도 않고, 비슷한 구석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네 단어는 다름 아니라 중국소설 <홍루몽紅樓夢>을 부르는 서로 다른 이름이다. 심지어 <홍루몽>의 네 가지 이름 사이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존재한다. 독자들은 작품 첫 머리부터 이 소설이 여러 이름을 갖게 된 내력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이로부터 공공도인은 …… 스스로 이름을 바꾸어 정승情僧이라 하고 이 <석두기><정승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옥봉에 이르러 <홍루몽>으로 이름을 붙였으며 동로東魯의 공매계孔梅溪가 다시 이 책을 <풍월보감>이라 제목을 달았다. 훗날 조설근曹雪芹이 도홍헌悼紅軒에서 10년간 열람하면서 다섯 차례나 덧붙이고 목록을 만들고 장회를 나누었으니 책이름을 <금릉십이차>라고 하였다. (<홍루몽> 1)

 

위 내용이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홍루몽>이 존재 자체만으로 중국인들에게 신격화되어왔다는 점 역시 주의해야 한다. , <홍루몽>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접할 때는 이마저 소설일 수 있다는 경계의 태도가 필요하다인용한 홍루몽 1회의 내용에 대해 지연재指硯齋라는 인물은 작가(조설근)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소설 <장미의 이름> 서문에 나오는 “1986816, 나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한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라는 구절이 실제로 움베르트 에코의 체험담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시 <홍루몽>의 네 가지 이명異名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작품에 여러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하다고 여긴 요소를 부각시킨 결과이다. (최대한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하자면) <석두기>는 주인공 가보옥의 처지를 강조한 제목이고 <풍월보감>은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재인 거울에 주목한 것이다. <금릉십이차>는 말 그대로 <홍루몽>의 주요 여성인물 열두 명을 상징하는 것이고 <정승록>은 위의 글에 등장하는 공공도인의 이야기와 연관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홍루몽> 영어판의 제목에도 이와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는 점이다. <홍루몽>은 이전에 주로 “The Dream of Red Chamber"로 많이 번역되다 최근에 와서는 주로 “The Dream of Red Mansions"라고 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Chamber(규모가 큰 방)"라는 단어 대신 "Mansion"(대저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대관원大觀園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홍루몽>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어떤 이름을 지어 부를 것인가? 제목을 둘러 싼 쟁점 말고도, <홍루몽>이름 짓기와 관련된 이야기 거리가 많다. 애초에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작가의 특정한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홍루몽>에서 가씨 집안 네 자매 이름은 원춘元春영춘迎春탐춘探春석춘惜春인데, 이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딴 '원영탐석(元迎探惜; yuanyingtanxi)' 네 자는 원래 탄식하는 것이 마땅하다(原應歎息; yuanyingtanxi)’라는 의미의 한자 어구와 중국어 독음이 같다. 작가가 언어유희를 통해 암시한 것처럼, 네 자매의 최후는 읽는 사람에게 절로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내가 다시 짓는 나의 이름

 

대관원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 속에서도 이름 짓기 모티프가 여러 번 등장한다. 예컨대 대관원에서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곳에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17), 하금계夏金桂의 명에 따라 추릉秋菱으로 이름이 바뀌는 향릉香菱 이야기(79)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이름 짓기 소동37회의 시 창작 모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관원의 청소년(?)들은 여느 중국 고대인들처럼 글 짓는 소일거리를 통해 무료함을 달래려 한다. 탐춘은 보옥에게 편지를 통해 옛사람들처럼 시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것이 설사 일시적 흥취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마침내 천고의 미담으로 남게 되지 않았습니까.”(<홍루몽> 37) 호기롭게 시작된 시 모임은 나름대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홍루몽>에서 등장인물들이 짓는 시야말로 이 소설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알못인 나에게는 시작詩作 이외에 자꾸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홍루몽> 시 모임에서 시를 짓기 위해 가장 먼저 거치는 단계는 자신들의 이름을 다시 짓는 일필명을 만드는 과정이다.

 

정녕 시 모임을 만든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진짜 시인이 되는 것이니 우선 언니, 동생이니 시동생, 형수님이니 하는 호칭부터 없애야 비로소 속되지 않은 것 같아요.”

대옥이 이번에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제안했다. 이환이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거 아주 좋은 의견이야. 다들 멋진 아호를 지어서 서로 부르면 고상하겠군요.”(이하 생략)

(조설근, <홍루몽> 37)

 

37회 에피소드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흔히 자호自號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 기회를 얻을 때 누군가는 거창한 의미를 담아 작명을 할 것이다. 그러나 <홍루몽>의 시사 모임에 참여한 인물들이 지은 호는 소박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보옥대옥보차 등 주요 등장인물의 호는 그들이 거처하는 건물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가보옥을 부르는 이름인 이홍공자怡紅公子는 그가 이홍원怡紅園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그리고 임대옥은 소상관瀟湘館에 거처하기 때문에 소상비자瀟湘妃子, 보차는 형무원蘅蕪園이라는 곳에 살기에 형무군蘅蕪君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이런 호를 접하고 나니 호칭부터 없애야 한다는 임대옥의 선언이 무색해진다는 생각마저 든다. 부모 혹은 집안 어르신이 지어준, 내가 바꿀 수 없는 본래 이름 이외에 새로운 이름을 짓는 순간에 다소 맥 빠지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한 주변 사물을 따라 보잘 것 없는 의미를 담아 호를 짓는 경우는 <홍루몽>보다 더 이전 시대에서도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집 근처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따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는 호를 지은 시인 도연명陶淵明, 자신과 자신이 아끼는 물건 다섯 가지가 하나가 되는 흡족한 심정을 육일거사六一居士라는 호에 담았던 문인 구양수歐陽脩 등등. <홍루몽>의 등장인물들과 도연명구양수의 평범한이름 짓기는 호에 거창한 신념을 담는 행위가 이름에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 듯하다.

 

어떤 의미를 부각시킬 것인가

 

보옥이 이홍공자라는 호를 얻기까지 무사망無事忙(일없이 바쁘다)’, ‘부귀한인富貴閑人(부귀와 한가로움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과 같은 이름도 후보에 오른다. 보옥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아무래도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게 훨씬 낫겠어요.”

 

<홍루몽>의 이름 짓기를 포함한 여러 사건들은 복잡한 접근 방법 대신 반봉건한 단어만 추가하면 그럴 듯하게 퍼즐이 풀릴 때가 많다. 이 키워드는 마오쩌둥毛澤東이 본격적으로 <홍루몽> 해석에 적용하면서 널리 알려졌으며, 지금까지도 작품 해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사 모임에서 호칭을 없애자는 대옥의 발언에서 비장함을 느끼는 것, 혹은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필명에 허탈감이 느껴지는 것 모두가 반봉건과 저항정신의 관점에서 <홍루몽>의 이야기 전개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홍루몽> 속 인물들이 시사 모임을 통해 일상과 격리된 세계를 형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사 모임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앞서, <홍루몽>에서 그 중요한 모임이 정작 두 번밖에 결성되지 않았는지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시 모임의 원래 취지대로 한 달에 두 세 차례 회동이 있었다고 한 들, 이들에게 시 짓는 행위는 봉건 질서에서 잠시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렇게 시사 모임이 형성한 세계가 <홍루몽> 속 인물들이 택할 수 있는 소극적인 저항의 방식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문학 작품일수록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은 <홍루몽>이 본격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청대淸代에도 이미 회자되던 이야기였다. 당시 한 사람은 명제주인明齋主人이라는 필명으로 ‘<홍루몽>의 백가쟁명百家爭鳴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그 화려함을 좋아했고, 어떤 사람은 비극성이 깊은 것을 좋아했다. 또 어떤 이는 말투를 하나하나 묘사한 것이 현실과 닮아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어떤 이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작품에 나타난 광경이 다른 것을 좋아했다.或愛其繁華富麗, 或愛其纏緜悲惻, 或愛其描寫口吻一一逼肖, 或愛其隨時隨地各有景象 (<명제주인총평明齋主人總評>)

 

<홍루몽>에 다른 제목을 지은 사람들이 저마다 방점을 찍은 부분이 다른 것처럼, <홍루몽> 내용의 분석에도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이 당연한 독해 방식이 특정 시기를 거치면서 해석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변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오쩌둥의 <홍루몽> 해석의 그림자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했던 중국도, 교조적인 <홍루몽>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있던 우리나라도 해석의 다양성 차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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