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아시아를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루ㄷㅏ…2023-02-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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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세계다_1+2_20230216]

아시아를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루ㄷㅏ…

에레혼

《동양적인 것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다. 읽은 지 10년이 넘은 책이라 전체 내용은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하지만 제목만은 똑똑히 기억난다. 촌스러운 제목이지만 동양이라는 단어의 핵심을 짚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슬픔은 두 가지 의미이다. 먼저 관습적인 동양의 이미지. 이 슬픈 기운은 처연함에 가깝다. 비극적인 설화, 구슬픈 민요 등등. 이러한 맥락 아래 동양이라는 단어는 왠지 사연이 많아 보이는 단어로 둔갑한다.

동양적인 것이 슬픈 또 다른 까닭은 이 단어의 기구한 운명 탓이다. 동양은 외따로 존재하는 어휘가 아니다. 동양은 서양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동양적인 것의 슬픔》을 쓴 저자도, 슬픔의 두번째 의미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플라톤 이래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는 서구의 대표적 지성들의 동양관을 통찰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논리와 태도가 그 숱한 역사와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결같이 편견으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해 오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이데아세계 정신해방 등의 온갖 지고한 이념들과 정교한 이론들로서도 잠재울 수 없는 이 배타적, 이기적, 종족적 욕망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철학 이전에 동물적 인간학의 문제일까? _정재서, 《동양적인 것의 슬픔》, 31.

대칭적 개념인 동양이 멸시의 대상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되면, 동양 두 글자의 처지는 더욱 가련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슬픔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동양적인 것의 슬픔》과 같은 논조로 오리엔탈리즘을 지적하는 글들을 수없이 보았기에, 이를 지겨운 소리라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과거와 달라진 동양/아시아의 위상 때문에 ‘우리가 왜 슬픈 존재인가’ 하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테고.

역설적이게도 익숙함과 자긍심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에 다시금 동양 혹은 아시아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 대륙에 살고 있으면서 이 지역을,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던가. 중국에 대한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변방에 대한 정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고, 놀라움 뒤에 따르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중국을 읽는 공부가 중국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변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 끝에 아시아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중국과 아시아를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든 학자가 바로 왕후이였다. 왕후이는 중국 사회와 정치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전지구적 맥락을 병치하려 애쓰는 학자이다. 그가 2011년에 발간한 《아시아는 세계다》 역시 그의 학문적 실천 연장선상에 있다. 왕후이는 중국의 근대/근대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라는 개념을 소환한다. 그리고 왕후이는 책의 서두를 여는 글에서부터 아시아(동양)라는 개념의 허위성, 서구중심주의를 고발한다.

‘탈아론’의 틀 안에서 아시아라는 개념은 두 가지 차원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아시아는 문화적으로 고도의 동질성을 가진 지역이라는 개념, 즉 유교주의적 아시아다. 둘째, ‘탈유교주의’의 정치적인 함의는 바로 중국 중심의 제국 관계로부터 탈피하여 ‘자유’ ‘인권’ ‘국권’ ‘문명’ ‘독립정신’을 지향점으로 삼아 일본을 유럽식 민족―국가로 탈바꿈하게 하는 것이다. … “동양이 유럽의 유럽식 요소에 존재함을 실현하도록” 한다면 ‘동양’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동양의 자기부정을 낳는다. _본문 36

19세기 말엽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장했다는 ‘탈아론’에는 정작 유럽 문명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입구’라는 표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팩트체크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억울함(?)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를 벗어나자는 주장은 곧 유럽이 되자는 구호의 동의어이이다. 마침 아시아라는 말의 어원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언어로 동쪽=해가 뜨는 곳을 의미한다. (유럽 역시 이 지역 언어에서 발원한 것인데, 당연하게도 이 단어는 서쪽을 말한다.) 문명의 시원인 아시아는 지나치게 낡고 오래되어, 멸족을 피하기 위해서는 탈피해야만 하는 모집단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이 구태를 빠져나와 향해야 하는 목적지는 당연히 문명 기원에서 가장 먼 지역이 되어야만 한다.

20세기 초 중국에서도 이러한 ‘탈아론’에 공감한 이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중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혁명을 주장하는 이들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국의 혁명은 오히려 중국적/아시아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현가능한 것이었다. 쑨원과 레닌의 혁명에 대한 공명(共鳴)에서 발견할 수 있듯, 아시아를 아시아가 되도록 구성하는 것은 유학이나 어떤 문명적인 유형에서 실마리를 찾아낸 문화적인 본질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갖는 특수성이다. 본문 68

이후 아시아 개념이 대두되는 기점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세계화에 속도가 붙는 최근의 상황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아시아/동아시아의 연합 운운하는 이들은 ‘자기부정(탈아론)의 방식’이나 ‘지역적 특수성(혁명 담론)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를 논하는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추세는 국가 간의 합종연횡을 당연한 미덕으로 탈바꿈 시켰다. 세계화에 동참하는 후발주자 아시아를 두고는 희망 섞인 메시지가 들리기도 했다. 동아시아는 유기체라느니, 문화적으로 유사한 지점이 많아서 지역적으로 융합하는 데에 더 수월하며 뭉치면 다른 지역보다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느니 하는 핑크빛 전망들. 전통적으로 중국이라는 구심점과 그 영향권에 포함된 인접 국가의 상호 유기성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논의는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동아시아 유기체론’에 대해서 왕후이는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비판은 조공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아시아론을 파훼하는 데에 있다. 아시아는 ‘조약 및 교역 시스템이 일찍부터 자리한 유럽’에 비해 낙후된 조공 방식을 고집하는 지역이었는가? 조공과 조약을 구분하여 바라보는 것은 “제국―국가의 이원론에서 파생된 형식본문 95”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원론은 고대 중국 왕조들이 항상 제국형 통치를 답습해야 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정작 제국의 형태에 가장 가까웠던 청나라가 문호 개방 이전부터 인접 국가와 조약을 맺었다는 사실 역시 조공/조약의 이원론적 구분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왕후이는 일관된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아시아와 중국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아시아(혹은 중국)를 탐구하는 작업에서조차 우리는 ‘태생적으로 서양에 꿀리는 입장’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는 세계다》 2장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송대 자본주의 맹아론(초기 근대론)’을 살펴보자. 송나라 때 상업의 발달과 이학이라는 국민주의 이데올로기가 발달했다고 보는 해당 이론은, 교토대의 사학 연구자들의 역사 해석이다. 이 관점은 지금까지 고대 중국을 이해하는 도구처럼 통용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 서서 우리를 분석한’ 고무적인 학술 성과이다. 물론 이 모든 학문적 시도가 서구적 역사 분석 틀에 맞춰 중국 사회를 이해한 것에 불과하지만.

교토학파는 중국 학자들의 이념과 이론 위주의 역사 해석에 반기를 들고 문헌 중심 연구를 표방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방법론은 중국 문헌 검토를 철저하게 진행하는 미덕을 높게 평가할 수 있을 뿐, 과거 시점의 근대적 실마리를 찾는 작업에 불과하다. 왕후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문헌에 근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는 틀 역시 고대인의 시각을 빌려올 것을 주장한다. 이런 방식에 따른 역사 해석은 서구 역사학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결론을 내놓고는 한다. 왕후이는 송대를 탐구하기 위해 삼대()에 대한 송대 유학자들의 해석을 언급하고 있다. 일반 역사학의 관점만 따르자면 삼대에서 송대까지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반박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왕후이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통쾌한 기분이 들지만 어째서인지 찝찝한 뒷맛이 남는다. 우선, 과거 역사에서 근대적 요소를 발견하는 일을 탈피하자는 주장을 하는 왕후이 본인은 ‘숨은 그림 찾기’식 방법론에서 자유로운가? 서구 중심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고대 중국사에서 반례를 소환하는 일 역시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본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왕후이가 언급한 내재적 시각은 그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닐까? 고대인의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 문헌을 동원하고 사료를 방대하게 살피는 작업은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는 문헌 소실이 빈번한 시기를 연구할 때에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동양적인 것은 슬프다. 아직도 아시아에 대해서 살얼음판 건너듯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나의 시각이 타자성에 근거하지는 않나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끔 ‘빻은’ 생각을 하곤 한다. 모든 목적과 근거나 나-여기-지금에서 출발하는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아시아인이 하는 이러한 발상이 오만함으로 치부되는 상황은 이 책을 덮은 순간에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열패감이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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