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아시아의 특수성과 보편성2023-03-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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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세계다5장 지방 형식·방언과 항일전쟁 시기 민족 형식논쟁, 6장 트랜스시스템사회와 방법으로서의 지역

 

이 책의 5장에서 왕후이는 언어와 관련된 근대 중국의 특수성에 대해 논한다. 근대 중국의 가장 큰 특수성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이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에서 구체화시키자고 주장했다. 서구의 공산혁명이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하는 방식을 의미한다면, 중국의 공산혁명은 제국주의에 맞서 국가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항일과 반식민의 기치 아래에서 중국혁명은 민족과 애국을 강조했다.

 

근대 국가의 토대를 민족으로 꼽지만, 민족의 역사는 짧고 기원은 불분명하다. ‘민족20세기 전후 전 지구적 식민주의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구성된다. 중국이 내세우는 중화민족역시 마찬가지다. 왕후이는 중화민족의 토대를 문화적 동일성에서 찾는다. 공산주의에서 계급문제가 국제문제라면, ‘민족문제는 지방문제이다. 그렇다면 국제문제와 지방 문제는 깔끔하게 구분되는 문제일까. 왕후이는 아니라고 답한다.

 

중국의 공산혁명은 국제문제와 지방 문제, ‘중앙-변방의 구분이 희석되고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왕후이는 이 과정을 항일운동 당시 혁명 근거지를 중심으로 나타난 민족 형식논쟁에서 찾는다. 5·4 신문화운동과 백화문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민족 형식논쟁은 근대성과 함께 계급성 문제를 논한다. 귀족문학과 고전문학을 겨냥한 백화문운동의 계급성을 지적하고, 대중성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서이다.


혁명은 도시-향촌 간의 차이를 부각하고, 향촌의 대중이 주체화되어야 할 필요를 제기했다. 한편으로 항일과 근대화는 민족과 국가를 만들기 위한 문화적 동일성구축 작업 또한 해내야 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영향 아래 변증법적 방식으로 민간(지방) 형식을 민족 형식에 통합하는 방식이 제기된다. 왕후이는 이렇게 민간(지방)의 문예와 도시의 근대 언어운동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중국 민족주의의 기본 동력으로 작동했다고 본다.

 

중국 근대 문학운동은 오랫동안 근대 서면어를 형성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서면어를 보편 언어화하려 했다. 국어의 통일은 지방 방언의 차이를 소거하려 하면서 정치적으로 지방과 대립한다. 특히 백화문운동은 서양화 경향과 동시에 진행되면서 방언과 충돌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했다. 왕후이는 이 한계가 방언을 통한 보편화의 지향, 보편적 언어와 지방성을 뛰어넘는 예술형식을 만들어내면서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 6장에서 왕후이는 다시 중국과 아시아의 특수성 문제로 되돌아간다. 서문에서 언급했던 트랜스시스템사회개념을 다시 꺼내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조공시스템 이야기가 반복된다. 왕후이는 트랜스시스템사회가 민족공동체와 다른 관점으로 각종 사회를 서술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410) 왕후이가 보기에 조공시스템은 트랜스시스템사회적 연결 방식이면서 초사회시스템적 연결망이다.

 

이런 개념들은 왕후이가 서양의 인식개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내거나 발굴해낸 인식개념들이다. 서양의 인식개념이 아닌 이 개념들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특수성을 재조명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왕후이의 과감한 접근과 꼼꼼한 연구에 무척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긴다. 아시아에는 특수성만 있을까? 보편성은? 중국 중심 조공시스템은 서양의 제국주의와 다르지만, 제국주의 맥락을 소거한 조공시스템이 과연 가능할까?

 

아시아 변방 오랑캐의 후예인 나는 중국은 서양 제국과 다르다고 열렬하게 주장하는 왕후이에게서 오히려 국가와 제국주의에 헌신하는 지식인의 일면을 본다. 그러면서 책 앞부분에서 왕후이가 유럽연합을 모델로 한 아시아공동체를 이야기했던 부분을 다시 짚어보게 된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채 12년도 지나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연구했을 왕후이를 떠올려보면 유럽연합의 등장이 얼마나 그를 고무시켰을지도 예상이 된다.

 

안타깝게도 불과 10년 정도의 시간에 국제정세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왕후이가 아시아공동체의 모델로 삼았던 유럽연합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유럽연합에 참여한 주요 국가들이 과거에 가장 열렬한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과거의 식민지를 바라보는 그 국가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왕후이가 아시아 조공시스템을 회상할 때 그의 입장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입장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왕후이의 주장대로 중앙-변방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서로 넘나들면서 변화한다. 동양과 서양도 그렇고, 아시아와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특수성과 보편성은 언제나 공존한다. 아시아는 당연히 세계이고, 세계 없이는 아시아도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왕후이는 아시아 학자들과 함께 서양 학자들의 개념과 이론까지 끌어온다. 왕후이가 이런 방식으로 세계에 대항하는 중국의 서사를 쓴다면, 이제 우리 오랑캐들이 중국 제국에 대항하는 서사를 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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