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4장 사이버 기형학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이 남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타자들이 귀환한다. 타자들의 귀환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대중문화 속 괴물들의 형태이다. 타자들은 괴물, 악마, 비정상적 존재로 귀환한다. 차이는 이들에게 문제인 동시에 해답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타자의 존재에서 특히 성차의 문제를 눈여겨본다. 타고난 동물성을 가진데다 21세기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기술과 결합하는 존재. 괴물 타자는 여성에 대한 남성 주체의 공포를 반영한다. 괴물 타자들은 20세기의 대중문화를 지속해서 잠식해갔다. 괴물이 등장하는 B급 영화들의 주요 관객이 전후 베이비붐 세대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중문화는 전쟁 대신 새로운 공포의 대상을 발굴했다. 좀비, 뱀파이어, 반인반수, 악마, 연쇄살인마, 외계인이 주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새 괴물은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괴물은 다수자 주체의 불안을 드러내는 존재인 동시에 그들을 매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괴물에 대한 억압은 괴물에 대한 매혹과 비례했다. 다수자 주체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동시에 끊임없이 매혹하는 존재, 그들을 파멸시킬 힘을 가진 존재는 누구였을까? 괴물은 사회에서 배제된 모든 이들, 이방인과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은유이기 이전에, 여성이었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SF의 역사 안에서 오랜 여성 혐오와 공포를 확인한다. 괴물들은 사회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며, 규범을 파괴하고, 질서를 뒤흔드는 존재였다. 20세기 들어 더욱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하고 권리를 획득해가는 여성의 모습은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한다는 공포를 유발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의식적 공포는 거대한 신체를 가진 여성과 폭력적인 여성, 괴물을 낳는 여성의 모습으로 대중문화에 반영되었다. 물론 괴물이 변형된 존재이듯 SF 장르 안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모습도 점차 변화한다. 불안을 드러내는 일은 그 자체로 자신의 공포를 말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SF에 반영되는 공포 역시 조금씩 변형된다. 거침없이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SF의 급진성은 그 변형을 더욱 가속한다. 냉전 시대 이후 괴물 타자에 대한 대중문화의 소비가 더 늘어나면서,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가 괴물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의 타자였다. 소수자들의 욕망이나 페미니즘과 결합하면서 SF는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여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인간을 낳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경외이기도 하다. 폭력적이고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의 재생산 능력에 대한 권리를 내세우는 여성. 이들에 대한 남성들의 거부감은 가부장제만큼이나 그 역사가 길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이런 강인한 여성의 모습 역시 여성에 대한 혐오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폭력적인 여성 영웅이나 팜므파탈, 괴물의 아이를 잉태하는 여성은 모두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와 혐오를 반영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여성이 당연히 영웅이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구조에 대한 변화 없이 고학력 백인 여성들의 이익에만 의미를 둔다면 페미니즘은 실패한다. 로지 브라이도티에게 페미니스트는 인간 최후의 존재이다.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소거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페미니즘은 인본주의의의 재구성에서 그치고 만다. 차이를 확인하는 일이 다수자 주체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다면, 우리의 목적은 여성을 다수자 주체에 포함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보다 포스트휴먼적 관점에서 인간주의를 의문시하면서 인간의 미래를 묻고자 하는 데 있다. 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포스트휴먼적 관점은 인간주의의 붕괴를 비극적 기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유목적 주체의 정치적 감수성은 긍정의 윤리를 지향한다. 유목적 주체로서 우리는 이미 괴물인 동시에 변형된 존재들이다. 긍정과 기쁨의 윤리가 우리 괴물들이 가진 잠재성과 스타일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변형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