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난민화되는 삶》 3부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제2회 로힝야 난민 이야기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여기에 ‘로힝야’는 어떻게 도착해 있나: ‘로힝야 학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이 책 3부는 2019년 <난민×현장>이 3회에 걸쳐 진행한 티치인의 결과를 정리한 글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티치인이 신인종주의와 난민, 차별금지법을 다루었다면, 두 번째 티치인 주제는 로힝야 난민이었다. 티치인은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 공적인 관심사를 토론하는 장이다. 난민에 관해서도 당사자와 활동가,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여긴 <난민×현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로힝야 난민들에 관한 이야기는 국내 언론에도 짧게나마 종종 소개되었고, 2019년 2월에는 경향신문이 집중 보도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게 냉담하거나 무관심하다. 미얀마의 다수인 버마족 불교도들처럼 로힝야인들을 적극적으로 차별하거나 학살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무관심을 통해 동조하는 셈이다. 단순히 무관심과 동조에 그치는 일을 넘어, 무관심과 동조를 옹호하는 수준까지도 쉽게 진행된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그렇듯 미얀마도 19세기와 20세기에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었다. 영국은 버마족과 여러 소수민족이 살아가던 영토를 분할 통치했고, 인도인들을 데려다 관료로 삼았다. 영국의 지배와 일본의 지배를 겪으며 각 민족은 자신의 이익에 맞는 선택을 하려 했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들 민족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민족 간 증오와 분쟁의 형태로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로힝야인들은 자신들이 16세기 그 땅에 정착한 중동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버마족들은 그들이 영국 지배 시절 방글라데시에서 흘러들어온 이주노동자의 후예인 ‘불법이주자’라고 주장한다. 또 로힝야들이 식민 지배 시절 관료였던 인도인들과 닮았으며, 영국인들의 앞잡이였다고도 말한다. 버마족 대부분이 불교도이지만, 로힝야인들은 그들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더욱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식민 지배 역사와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다른 인종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 종교적 차별 등이 로힝야 난민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문제에서 국가는 해결의 주체가 되기는커녕 제도적이고 물리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실행하며, 가짜 뉴스를 생산하여 혐오를 증폭한다. 로힝야인들은 이미 미얀마 내부에서 법적으로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미얀마 인주화에 가담했던 인사들조차 로힝야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용인한다. 로힝야인들은 미얀마 정치의 희생양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이라는 가상의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내부의 적을 만들어낸다. 버마족이나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인들을 탄압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모두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가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과거 조상의 행적으로 그 후손들을 단죄하는 일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로힝야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아야 한다. ‘국민’이라는 집단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구성된다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늘 내부에서 배제되는 외부가 구성된다. ‘우리’는 언제나 차별을 암시하고 배제를 은밀히 실행하는 이름이어야만 할까? 난민이 ‘비국민’으로 고통을 겪을 때, 법적 ‘국민’으로 지위를 보장받는 나는 폭력이나 고통을 떠올리지 않고 ‘우리’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되기에는 서로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존재들이다. 다만 이 책의 결론에서 참가자들이 내리는 결론에 일말의 희망을 품는다. 화자는 증언(커밍아웃)을 통해 청자에게 ‘비커밍아웃’을 요청하는 말. 김기남의 글이 여섯 살 어머니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로힝야의 여섯 살 아이를 거쳐 자신의 여섯 살 아들로 끝나듯, 우리는 그들의 말이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안다. 나아가 그들의 말은 우리 삶을 관통하여 국가 밖의 아시아라는 또 다른 ‘우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