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전쟁을 꼽는다.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여성의 활동 영역을 가정에서 전쟁터와 직장으로 넓혔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여성에게 가사와 양육의 책임을 지게 하는 동시에, 저임금이나 임시직으로 필요할 때마다 여성 노동력을 활용해왔다. 산업이 지역이나 국가를 옮겨 다니는 동안 각 지역이나 국가의 여성들은 산업을 지탱하면서 소모된다. 미국의 백인 여성에서 흑인 여성으로, 다음엔 아시아의 여성들로. 이 여성들의 역사는 페미니즘과 노동운동의 주류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도나 해러웨이는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안에서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신화에는 주로 신이나 영웅, 미인이 등장하지만, 이 신화의 주인공은 사이보그이다. 반도체산업의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노동자는 기계화된 작업장에서 기계의 방식으로 기계를 생산하는 사이보그다. 이 여성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뽑아내어 생산한 반도체로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도나 해러웨이가 이 에세이를 쓴 85년 당시에 사이보그 주인공은 아시아에서도 한국의 여성들이었다. 페미니즘과 노동운동은 정치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치적 정체성에는 이전부터 많은 균열과 불안이 감지되어왔다. 정체성은 전략적으로 유용하지만, 한 집단의 정체성을 명명하는 일에는 이미 배제가 개입된다. 젠더․인종․계급은 사회적․역사적 구성물일 뿐 그 자체로 어떤 집단을 묶는 통일성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백인 여성과 아시아 여성의 삶은 다르고, 미국 남성 노동자와 아시아 여성 노동자가 처한 현실 역시 다르다. 페미니즘과 노동운동에서 말하는 ‘여성’과 ‘노동자’는 단일한 실체가 아닌 존재론적 구조에 기반을 둔 인식론적 개념이다. ‘인간’을 분류하고 지칭하는 개념들 대부분은 지식 대상이나 역사의 행위자로 최근에 나타났다. ‘인종’, ‘계급’, ‘젠더’는 물론이고 ‘동성애자’ 같은 분류 역시 그렇다. 유럽의 부르주아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간’ 개념은 시혜적인 ‘인권’ 개념과 함께 점차 외연을 넓혀 왔지만, 여전히 차별과 배제를 전제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페미니즘이나 노동운동 역시 이 ‘인간(남성)’ 중심의 휴머니즘에 복무하는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현실의 개별 인간은 범주화가 불가능할 만큼 서로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세계는 정보과학과 더불어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젠더, 계급, 인종 개념에도 적용된다. 인간 존재의 작동 방식은 점점 확률이나 통계학적 체계의 구조 속에 놓인다. 유기체/기계, 정신/육체 등 신체를 위계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해체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생명공학이 우리 신체를 재가공한다. 여성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생명공학을 통해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현하는 동시에 강제당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 하이테크 사회가 촉발한 인종․성․계급의 재배치가 페미니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긍정적 신호를 발견한다. 첨단산업 등장 이후 미국에서도 많은 남성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저임금 임시고용 상태에서 일하게 된다. 거의 모든 미숙련노동이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던 파트타임 성격을 띠게 되면서, 노동 자체가 여성화된다. 노동의 여성화는 곧 빈곤의 여성화를 초래한다. 백인 특권층에서도 남성 노동자가 받던 가족임금이 점점 사라지면서, 여성은 파트타임 노동과 가사를 전담하고 가정 내 복지를 책임지게 된다. 가족임금의 붕괴는 가정의 해체와도 연결되며, 이런 경우에 여성은 가장의 역할과 가사를 모두 전담한다. 여성이 빈곤한 미숙련 노동자의 대표로 기능하게 되는 현실에서 도나 해러웨이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까?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10대 여성은 가족의 생활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공장노동자와 성매매, 가사도우미 등이 선택지로 놓인다. 이 여성들은 가정을 떠나 세계와 접속하기 위해 언어(영어)와 읽고 쓰기를 배운다. 20세기 초 전쟁과 함께 사회에 나왔던 여성들처럼. 도나 해러웨이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 역시 냉전시대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덕에 생물학 박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황이나 시대는 다르지만, 여성들은 손쉽게 소환하거나 폐기처분 가능한 사회의 예비노동자나 잉여인력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기계와 비슷한 대접에도 기꺼이 노동을 계속하지만, 여성들이 체제에 언제나 긍정적이지는 않다. 많은 여성이 체제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면서, 한편으로 의심과 환멸을 느낀다.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체주의적 환상에 가깝다면, 페미니즘은 이 의심과 환멸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오래도록 ‘인간’의 주변부에서 살아온 이들은 ‘인간’의 범주와 경계를 의심하면서, 경계 밖의 존재를 인식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들을 총체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난 이들로 본다. 읽고 쓰기를 배웠지만 ‘인간(남성)’ 정체성을 신화화한 지식 체계 밖에서 살아온 이들은 주류와 다른 사유가 가능하다. 태생부터 타자인 그들은 주체의 허상을 간파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타자가 되려 한다. 다양해지고, 경계를 없애며,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면서. 그들은 스스로가 사이보그임을 깨닫는다. 사이보그는 선택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 사이보그가 된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타당하고 가능한지를 묻는 존재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여신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선언을 통해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 한다. 경계에 선 자신의 출신을 긍정하면서 재생의 이점을 누리는 사이보그. 물론 사이보그 역시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정체성 밖에 있는 존재라 보기는 어렵다. 도나 해러웨이가 말하는 ‘사이보그’가 ‘인간’처럼 인식론적 개념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실의 사이보그는 도나 해러웨이의 상상처럼 푸코의 생명정치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기계와의 결합에는 의료적 행위가 필요하므로, 어떤 면에서 사이보그는 생명정치가 원하는 새로운 생명 형태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