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들어가는 글, 1. 장애학의 시간과 불구의 미래 장애란 무엇일까? 온통 비장애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장애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장애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정상성’에 대한 환상과 규범은 우리가 장애를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이런 사회 전반의 몰이해에서 당사자인 장애인마저 자유롭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렇기에 장애인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힘들게 받아들이고, 미래와 장애 있는 몸이 양립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 미래를 상상할 힘을 잃어버린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떠나 장애는 과연 명확한 개념일까? 국가는 각종 복지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의료기관은 치료를 목적으로 계속해서 장애를 정의하고 분류하려 한다. 장애의 정체나 개념을 명확히 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의와 분류는 장애의 개념이 그만큼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장애의 개념도, 경계도, 나아가 장애/비장애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작업을 계속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애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장애를 개념화하는 여러 모델을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이 작업을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이어간다.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장애와 장애 있는 몸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우 길고 복잡한 논의 끝에 저자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과 개별적 모델 사이에서 정치적/관계적 모델을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다. 의료적 모델과 의료적 개입에 대한 장애학의 입장은 모순적이다. 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의료적 개입 자체를 거부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장애의 개별적 모델은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가리고 사회 절차나 정책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장애인의 치료에 집중하게 만들기에 의료적 모델과 관계가 깊다. 의료적 모델과 개별적 모델 모두 장애를 특정한 몸과 마음에 내재한 특성의 문제로 본다. 저자가 주장하는 장애의 정치적/관계적 모델에서 장애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 파악된다. 장애는 특정한 몸과 마음이 아니라 특정한 몸/ 마음/ 존재 방식을 배제하거나 낙인찍도록 구축된 환경과 사회적 패턴 안에서 문제화된다. 접근 불가능한 공간과 차별적 태도, 정상과 일탈의 기원을 특정한 몸과 마음에서 찾으려는 이념 체계가 바로 장애의 문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애는 치료보다 사회/정치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된다. 장애의 정치적/관계적 모델은 사회적 모델과 유사하지만, 저자는 두 모델을 구분하려 한다. 예를 들면 사회적 모델은 손상/장애를 구별하는데, 장애를 만드는 원인이나 물리적 변화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장애를 정치적 의미와 멀어지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 자신이 느끼는 고통들(통증, 피로, 우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손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의료적 개입을 원하는 장애인을 주변화할 수 있다. 장애의 정치적/관계적 모델은 누가 ‘장애인’에 포함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다. 오히려 이 모델에서는 장애가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기에 장애 자체를 신체나 정신에 관한 여러 질문이 제기되는 장으로 본다. 장애는 인종이나 계급, 젠더 등 여러 문제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장애는 ‘불구’라는 좀 더 포괄적인 단어와 만난다. 장애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불구와 관련된 문제도 드러난다. 1장에서 저자는 장애와 불구를 시간성의 관점에서 다룬다. 장애나 고통은 ‘만성’ 피로, ‘간헐적’ 증상, ‘지속적’ 통증처럼 시간의 범주로 표현될 때가 많다. ‘빈도’나 ‘발생률’ 역시 그러하며, ‘후천적’이거나 ‘선천적’, ‘발달’ 같은 단어들은 시간을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사용된다. 장애의 시간은 ‘정상성’의 시간과는 다른 특정한 시간이다. ‘너무 일찍’ 혹은 ‘언젠가는’이라는 시간적 표현 안에서 비장애인도 장애인이 된다. 한편으로 불구의 시간은 미래가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미래의 재생산에서 배제되며, 미래에 순종하기 위해 속박을 강요당하고, 특정 집단의 미래를 범주화하는 우생학과 연결된다. 미래성은 장애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장애인은 미래성을 위협하는 듯 묘사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미래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자는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특정 집단은 장애와 무관하게 미래가 없다. 장애와 인종, 젠더, 계급의 범주는 서로에 의해 구성된다.
물론 저자는 장애의 문제를 그대로 퀴어나 젠더로 옮겨가는 일을 경계한다. 그러나 자주 우리는 이 범주들이 서로 침입하며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는 일을 목격한다. 현실에서 더 많은 ‘불구’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다. 불구는 장애의 문제를 확대하여 사유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또한 불구를 사유하는 일은 불구라는 소속에 관한 질문, 내가 (혹은 우리가) 불구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