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 우환의 도덕철학에서 우월의 정치철학으로―대륙신유가의 ‘어그로’2020-10-27 13:20
작성자
첨부파일차이나리터러시_우환의_도덕철학에서_우월의_정치철학으로(수정본).pdf (116.9KB)

우환의 도덕철학에서 우월의 정치철학으로대륙신유가의 어그로

에레혼

금속주 위 쟁 울리는

옥방 앞 하얀 손.

주랑周郎이 돌아보게 하려

때때로 현 잘못 퉁기네.

[] 이단李端 - 청쟁聽箏1)

  

 

어그로(aggro)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원래는 게임에서 쓰던 용어인데, 이제는 어원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어그로라는 말은 ‘aggravation(도발)’이라는 영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 어그로와 관련해서 이러한 밈도 생겼다. 인터넷에 장문의 글을 쓴 다음, 자신이 올리고 싶은 (이어왔던 글과 전혀 상관없는) 사진·짤 등을 올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장문의 글에 몰두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글쓴이가 의도한 본론까지 봐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인터넷 게시물의 성격과 대륙신유가의 행보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 심하게 말해서, 현재 중국에서 유학을 부흥시키려는 일파는 어그로 끄는 집단에 불과하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주선율영화2)가 어쩌고, 공자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서 저쩌고, 할 때만 해도 이런 현상은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중국이 본론을 말하기 위해 깔아둔 포석에는 그래도 성의라는 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10여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고, 유학 부흥을 외치는 이들은 이제 선을 가장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동중서·강유위 같은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행보는 노골적이다 못해 웃음이 날 지경이다.

 

해외신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파벌을 새로 만들고 종파를 새로 세우자는 사고방법은 1990년대 이후 대륙신유가 학자들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95년 장칭의 공양학인론출판은 자신의 정치유학과 해외 심성유학과의 결별을 매우 분명하게 선포한 것이다. (본문 225)

 

거자오광의 <기상천외:최근 대륙신유학의 정치적 요구>는 대만신유가(논문의 표현대로라면 해외신유가’)의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중화권 유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중국철학강의>를 보고 나서 대만신유가의 사상이 얼마나 당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거자오광의 글을 읽어보면 모종삼을 필두로 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륙의 입장에서 80년대 이전의 학술사는 유학의 종주 자리를 대만에 빼앗긴 시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격지심을 표출하는 대신 우리만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인도자(본문 220)’로 불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로 대륙 역시 자신들만의 유학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때마침 장칭蔣慶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말엽에 공양학 운운하는 글은 웃음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이는 장칭이라는 학자가 출발선상에서는 다른 학자들에 비해 네임드의 위치에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단적 사상에 악플조차 없었던 까닭은, 당시에는 공양학인론이 시류를 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비슷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1991년 덩샤오핑이 중국 대학의 대학 116개를 지정해 중국의 대학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을 때,21세기를 대비해 116개의 대학을 지정했다 하여 ‘211공정이라고 불림사람들은 그 목표가 10년 이내에 실현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처럼 중국은 다소 무모해보이는 계획이라도 하나하나 실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륙에서 신유가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도 이러한 자기 충족적 예언이 이뤄지는 과정 중 하나일까? 대륙신유가라는 호칭도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 그들의 불협화음에 뒤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이들의 주장 혹은 문제의식은 중국의 현실에 부합하게 되었다.


확실히 대륙신유가의 배경은 현재이며, 관심 또한 현재이며, 현재 중국의 현실에 대한 관심이 해외신유가와 길을 달리 하는 대륙신유가의 탄생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강요했는가? 분명 중국의 현 시세이다. ‘군주를 만나 도를 행하고자시도하는 대륙신유가는 대부분 시세에 주목한다. 그들이 제출하는 정치적 청사진과 제도 구상의 배후에는 분명 시세에 대한 판단이 놓여 있다. 최근 몇 년간 그들의 수많은 언설 중에서 우리는 그들이 반복해서 중국 대륙의 경제적 비약과 국력의 강성을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본문 259)

 

그동안 차이나 리터러시에서 다양한 책을 보았고 다양한 책만큼이나 상이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딱 하나 있다. 중화민족의 비대한 자아. 거자오광 역시 자신의 글에서 대륙신유가 학자들과 중국 정치인들의 야심을 묘사하고 있다. 유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중국 대륙의 지식인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정말로 패권국이 되어버리면, 우리 민족은 어떤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것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가정법이 아니다중국 정치인과 석학들은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과거의 표어는 잊은 채로,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상중이다.

 

청말-민국초기의 학자 양계초梁啓超신중국미래기라는 소설을 발표한 적 있다. 이 소설은 중국이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어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1902년부터 1962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 신중국미래기의 소재는 요즘 유행하는 평행세계인 셈이다.

 

양계초가 신중국을 상상하던 시기로부터 시간은 100년이 훨씬 넘게 흘렀다. 중국의 번영은 더 이상 이세계異世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와중에 세계인은, 특히 아시아인은 중국의 이후 행보를 초조하게 지켜볼 뿐이다. 중국 대륙의 행보를 지켜보는 기분이 달가울 수 없는 이유는 최근 주류가 되어버린 신유가의 정치 구상 때문이다.

 

대륙신유가는 우주의 영원한 진리를 대표하고 또 전 인류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 체제를 상상한다. …… 그렇다면 저렇게 훌륭한 방안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장칭의 구상에 따르면 통유원, 서민원, 국체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는 보통선거와 직능 단체의 선거로 서민원을 설립하고, 유가학자의 선거와 유가 경전에 정통한학자에게 위임하여 통유원을 설립하고, 역대 군주의 후예와 역대 명인의 후혜 및 각종 정부 관원, 종교 영수, 대학 교수를 포함하여 연성공을 의장으로 하여 세습과 지정을 통해 국체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 234)

 

저런 발상이 유효한 소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중국의 현실이 더 문제이다. 대륙신유가의 구상은 팍스시니카시대 중국의 정치체제 선택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네오-유교국가를 건설하려는 그들의 야심을 보고 있으니, 차라리 모종삼을 비롯한 대만신유가의 구상이 오히려 소박해 보인다. 아니, 대만신유가는 순진했다고 말하는 게 나으려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륙의 신유가학자들은 당 지도부를 유가 정권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거자오광은 이러한 학자들의 행보를 주랑고곡周郞顧曲고사에 비유하고 있다. (본문 257) 주랑은 삼국지의 오나라 장수 주유周瑜의 별칭이다. 주유는 음악에 정통했는데, 연회 자리에서 만취하더라도 악공이 음악을 틀리게 연주하면 그것을 즉시 알아채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주유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가락을 틀리게 연주하는 여자 악공들도 있었다. 본문 서두에 인용한 당시唐詩는 주유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프로 지은 작품이다.

 

논문에서는 마음에 둔 사람”, 다시 말해 중국 지도부의 관심을 끌려고 신유가가 이렇게 삑사리를 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다른 생각도 들었다. 대륙신유가가 내는 불협화음이 비단 중국 내부만을 겨냥한 것일까, 하는. 그들이 고개를 만들려는 대상이 아시아, 혹은 세계라면? 대륙에서 울려오는 굉음은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제 주변 국가는 중국에 어떤 방식으로 고개를 돌릴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

 

삼국지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과 연관된 고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위나라 책사 사마의司馬懿에 대한 이야기다. 사마의는 신체구조가 특이해서 고개만 180도가 돌아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가 사마의를 부르면 그는 몸을 돌리지 않은 채로 상대방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이리의 몸 구조와 같아서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이리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낭고지상, 狼顧之相)’은 반골 혹은 역적의 징표처럼 여겨졌고, 조조는 생전에 줄곧 사마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중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과 중국을 공부하려는 태도는 병존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비판적 접근은 부정적 감정과 맞닿아 있다. 자칫하면 중국을 바라보는 태도가 삐딱한 시각이 되기 쉽다. 삐딱한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서 비난만 늘어놓을 뿐 중국을 배우려 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하지만 이제는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환대하는 제스처를 갖든,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는 표정을 짓든, 불만에 찬 얼굴을 하고 고개만 180도 돌리든, 어떠한 태도라도 골라잡은 채로 중국을 주시해야 한다.


1) 鳴箏金粟柱, 素手玉房前. 欲得周郎顧, 時時誤拂弦. 

2) 1990년대 이후 중국 정부 주도하에 제작되는 영화로, 민족의식‧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제작된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