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를 이탈하는 중국 독해는
가능한가 에레혼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도살장이다.”라는 헤겔의 유명한 경구가 있다. 이는
문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책들은 영원히 사라졌다―그리고 ‘대다수'라는 말은 실제 핵심을 놓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 19세기 영국 소설의 정전을 200권 정도로 정한다면(이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것은 여전히 출판된 전체 소설 중의
약 0.5퍼센트에 불과할 것이다. 프랑코 모레티, 김용규 역, 《멀리서 읽기》, 현암사, 2021, 101쪽. 모든 문헌과 유적을
다 섭렵해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사관의 명령은 문학의 역사, 그것도 잘 쓴 문학 작품들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럽다. 세상의 어느 문학사가도 자기 나라의 문헌은 고사하고 문학을 다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근대 역사가 중에도 절대적 사료인 《왕조실록》을 다 읽은 분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실증주의 역사가들은 대개 사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에 그친다. 실증적 문학사가도 문학에 관련된 사항들을 시대적으로 나열하고 고증학적, 서지학적
설명에 그치는 일이 많다. 이상섭, <문학사>, 《문학비평 용어사전》, 민음사, 2018, 102쪽. 책을 덮기 전에
다시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설로 읽는 중국사 2》는
‘중국 겉핥기’를 가능하게 했는가? 이 책에서는 소설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처럼 간접적인 방식으로 중국 현대사를 읽는 것은 어떤 메리트가 있는가? 이
질문들에 망설임없이 긍정하기는 어렵다. 책 한권으로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통찰력을 갖추기란 어렵다. 다만 소설을 통해 중국사를 들여다보는 역사 독해는 기존의 역사 독해와 다른 면모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러한 기대 역시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설과 함께 중국 역사를 그리는 일은 기존의 중국사 서술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로 읽는 중국사 2》에서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중국 현대사에서
반복되는 아이러니였다. 책에서는 [사상의 해방 - 상호 비판 분위기 조성 - 반대파 색출 - 사상의 통제] 의 구도에 주목하는데, 더욱 단순화시키자면 이 패턴은 ‘방(放, 자유로운 의견 개진)’ - ‘수(收, 사상에 대한 통제)’ 의 길항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도는 중국 현대사에서 문예강화, 정풍운동, 개혁개방 천명 등의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이와 같은 분석은
‘사건을 지나치게 일반화시켜 법칙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예컨대 마오 집권기의 사상의 해방/통제는 정치 책략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지만, 덩샤오핑 시기의 해방/통제는 사상적인 측면과 직결되지 않는다. 애초에 덩샤오핑을 비롯한 80년대 공산당 원로들은 경제 체제 이외의 사회 부문을 개방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경제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을 필두로 한 그룹이 중국의 체제 변화에 사상 해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러한 역사 해석은
중국 역사를 교과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왜 중국
근현대사는 어떤 방식으로 읽어도 비슷한 사건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커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 물음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20세기 중국 역사가 천편일률적으로 구성되는 데에는 지식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소설로 읽는 중국사 2》의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은 누구인가?
사상 해방이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해도 눈치만 보던 이들. 유력자가 모범을 보여 ‘백가쟁명’하는
분위기를 몸소 만들면 뒤따라서 목소리를 내던 이들. 시간이 지난 뒤 지도층에 박해를 받은 사실을 피해
서사처럼 활용하던 이들. 이와 같은 비판 법칙화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20세기 중국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과대표되어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문예강화가 중국 근현대사에서 주목받는 사건이 된 이유는 지식인들의 담론 생성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문혁이 광기의 이미지로 각인된 까닭은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와도 연관되지만) 피해를 받은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정상이라 지칭하고 홍위병들을 ‘무뢰배’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더 단순화시키자면, 중국 현대사를 지금과 같은 구도로 만든 것은 지식인들의 인정 투쟁에 불과하다.
‘세상 사람들의
근심을 그들보다 앞서 근심하고,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바는 그들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고고한 우환의식은, 그
우환이 유효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소설로 읽는 중국사 2》의 마지막 두 챕터에서 지식인들의 앓는 소리를 잘 보여주는 부분은 왕숴의 문학에 대한 설왕설래이다. 왕숴의 문학은 중국 현대사에 지겹도록 반복된 순수문학-정치문학의
대립 구도 어느 것에도 포함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규정할 수 없는 현상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자, 그의 작품에 ‘건달 문학’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자신(지식인)은 고고하고, 자신과
동떨어진 이는 적대시한다. 적대의 대상이 된 인물은 마오, 홍위병, 80년대 이후 등장한 상업문학 작가 등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이후 역사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문학사의 주요 사건으로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990년대 중반 무협소설가 김용이 북경대에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사회적인 파장이 일어났던
사건, 혹은 인터넷 문학이 문학장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현시점에 ‘현대문학은 소멸되었는가’ 하는 식의
비판조 질문이 등장하는 일은 지식인들의 협소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로 중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도는 왜 주류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는 20세기
들어 소설이 이미 주류 담론으로 편승된 까닭이다. 소설이 시와 경서에 짓눌려 있던 원나라 이전, 소설 작품은 탈중심적의 집합소와 같다. 대중성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들의 필독서’ 취급을 받던 명나라∙청나라
시기에도 소설 작품을 보는 것은 해당 시기의 전복적 사고를 살펴보기 위한 통로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이
근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소설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언더독’ 현상처럼 고무적인 일이지만, 비주류가
곧 주류가 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설의 신선함을 갉아먹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중국 역사를
해석하는 데에 소설을 경유하는 일은 더 이상 신선한 역사 독해 방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전공 연구 차원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중국을 주류가 아닌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주류가 아닌 중국을 바라보겠다는 욕망 또한 ‘만들어진 중국’을 중국 공부를 위해 재현하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