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좀비학] 좀비,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2021-03-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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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좀비,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hwp (26.5KB)

《좀비학》 6장 괴물에서 벗어나는 좀비들

 

영화를 통해 여러 존재들이 좀비로 불리게 된 이후에도 좀비는 변화를 거듭해왔다. 더 빠르고 강하게 변한 좀비는 점점 더 강력한 파국을 몰고 왔다. 강력한 좀비의 위협은 애초에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잊게 만들었다. 좀비는 노예였고, 이민자였으며, 병든 자들이었다. 어떤 면에서 파국은 지배의 다른 이름이다. 지배를 원하는 자가 파국을 원한다. 아무리 해도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지 못하는 이들은 좀비가 되어야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어느새 좀비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존재가 되었다.

 

좀비는 어떻게 주체가 될 것인가? 그 전에 좀비는 과연 주체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보아야겠다.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주체=인간’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주체는 흔하게 ‘코기토’(사유하는 주체)로 이해되기 때문에, 스스로가 사유의 능력을 가졌다 여기는 인간만을 주체로 상정하였다. 이런 주체 개념은 다시 20세기에 주체를 부정하는 ‘탈주체’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에 이어 푸코가 선언한 ‘인간의 죽음’은 이런 식으로 주체의 공백을 불러왔다.

 

현대의 철학자들은 주체의 공백을 넘어서기 위해 다시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주체=인간’이라는 공식을 깨고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제 인간 이후의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 인간과 주체가 분리되면 식물과 동물의 주체성도 발견될 수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도 희미해진다. 이런 배경에서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괴물 타자로 인식되었던 모든 존재들과 좀비 역시 우리와 공존할 또 다른 주체로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 기계 문명과 함께, 과학 기술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이다. 우리 안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애호와 기대, 공포와 증오가 공존한다. 우리의 삶은 이미 과학기술과 분리 불가능한 관계에 있으므로, 막연한 애호나 공포만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포스트휴먼의 입장에서 인간은 세계에 대해 특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휴머니즘은 이미 낡았고,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을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만물은 신의 양태(양상)이며, 각기 다른 속성으로 나타날 뿐이다. 존재는 하나의 신에게서 나왔으므로, 모두 동등하다. 식물, 동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모든 존재자를 위계질서 없이 평등한 관계로 ‘내재성의 공통평면’ 위에 놓는다고 표현한다. 이 공통평면 위에서 우리는 ‘코나투스’라는 생존력으로 살아간다. 삶을 가능하게 하고, 존재를 변화시키는 역량만이 우리를 주체로 만든다.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좀비의 파괴적 힘에서도 물론 우리는 새로운 주체의 역량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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