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인문] 노동자는 누구인가.2024-04-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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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아야 할 현대 중국의 모든 것11장 소수민족과 저항, 12장 홍콩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13장 중국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 14장 중국 트로츠키주의의 역사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중국을 비판하겠다는 이 책을 읽는 도중에 강하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노동자는 과연 무엇일까?” 책의 앞부분부터 저자는 중국이, 노동자가 아니라 도시 중간계급 지식인과 농민 중심의 혁명으로 구성된 나라임을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시작부터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구현하지도 못했고,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이어받은 트로츠키주의와도 점점 멀어졌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 나는 정말 그런 강조나 지적이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의심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트로츠키주의에서 강조하는 연속혁명은 이론이기보다는 전략이다.(225) 어디 연속혁명뿐이겠나. 트로츠키주의니,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니 하는 개념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전략으로 활용해야 할 이론에 대한 과몰입으로 보일 뿐이다.

 

물론 어떤 사안이든, 누구든 과몰입을 할 수는 있다. 과몰입 이후에 펼쳐질 상황을 잘 모르거나,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중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상황은 잘 모르는 편에 가까웠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중국 공산당의 내전 과정에 대해 중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보였던 입장을 저자는 이렇게 비판한다. ‘현실을 이론에 꿰어맞춰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의 저자 역시 현실을 이론에 꿰어맞춰 주장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론에 과몰입하며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교조주의자라 부른다면 저자 역시 교조주의자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저자가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이유는 자신이 아는 이론으로 중국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론으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은 거의 착각에 가깝다.

 

현실은 언제나 이론을 초과하고 벗어난다. 과도하고 역동적인 현실은 짧은 순간 일부분으로만 이론에 포착된다. 그렇게 포착된 이론이 현실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이론은 오류가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쉽게 이론으로 현실을 설명하려 드는 이유는 현실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 사람들, 노동자들, 복잡한 노동의 현실에 관심이 없기에 몇몇 숫자와 고유명사에 대한 언급으로 현실을 대체하려 든다.

 

그렇게 대체되고 축소된 현실은 어떤 주장을 위해 쉽게 소비된다. 언뜻 보면 그럴듯하고 현실을 반영한 듯 보이는 주장들 이면에는 주장하는 이의 편견과 혐오가 짙게 깔려있다.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이 알아야 할 현대 중국의 모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책의 내용이야말로 저자가 말할 수 있는 현대 중국의 대부분이다. 편견과 혐오에 낡은 이론을 버무리고 얄팍한 주장을 끼얹으면 완성되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혁명을 이끌어야 할 노동자 계급은 과연 누구인가? 노동자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국가이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소수민족과 여성, 홍콩 문제에서도 중국의 노동자들은 국가의 정책에서 벗어나는 목소리를 많이 내지 못한다. 물론 이 노동자에는 소수민족과 여성, 홍콩인들도 포함된다.

 

노동자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살아있으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자기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좇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처럼 민족이라는 허구적 개념에 집착하기도 하고,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맹목적 추종자가 될 때도 있다. 자신과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혐오하며 차별하는 일도 흔하다.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비난하거나, 성소수자의 존재를 불쾌하게 여기고, 난민이나 이주민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냉담한 이들은 또 누구인가. 이들의 대부분이 노동자다. 자신이 속한 국가나 민족이라는 허구적 틀 안에서 사고하고 움직이는 노동자는 혁명을 이끌기는커녕 혁명을 방해하는 세력이 된지 오래다. 그들과 혁명을 연결하려면 이백 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이론을 들이대는 대신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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