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권력》 1강. 2강 콜레주드프랑스에서 매년 진행한 강의는 각각 그 시기 푸코가 가장 관심을 보였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낸다. 1970년부터 진행된 강좌명은 ‘사유체계의 역사’였다. 철학을 비롯한 각 분과학문의 역사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를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이 푸코가 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과거의 자료를 토대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은 낯설고 고되며, 자주 반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많은 부분을 재검토하게 했다. 푸코는 1973년 말부터 1974년 초까지 진행되었던 이번 강의의 주제를 ‘정신의학의 권력’이라고 밝힌다. 이 시기 푸코의 관심사는 의학(을 포함한 인간학)을 다루던 구조주의적 작업 시기에서 벗어나 권력 중심의 계보학적 분석으로 변화한다. 관심의 초점도 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점차 권력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또렷해진다. 이 무렵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1963) 초판본을 수정하여 재출간(1970)했다. 마찬가지도 이 강의에서도 자신의 지난 저작인 《광기의 역사》(1961)에서 다뤘던 내용을 수정한다. 그 수정을 통해 푸코는 19세기 초 유럽 정신의학의 변화를 권력 유형의 변화로 다시 설명한다. 신체 내부까지 적용되는 이 새로운 권력에는 일정한 질서와 규율, 규칙성이 필요하다.(19쪽) 이 질서와 규율, 규칙성은 의학적 지식이 객관적으로 구축되고, 항구적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19세기 초반(특히 1817~1818)은 정신의학적 지식이 의학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전문 분야로 독자성을 확보한 시기이다. 푸코는 당시의 정신의학 관련 텍스트들을 분석하며 이 사실과 함께 광인을 제압하는 데 필수적인 새로운 요소를 확인한다. 그 요소는 바로 광인을 제압하는 건강한 신체(특히 남성 신체)이다. 푸코에게 의학적 심급은 지식 이전에 권력이며, 이 권력이 드러나는 곳은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사의 신체이다. 물론 의사가 병원의 유일한 신체가 아니듯, 의사가 유일한 권력도 아니다. 권력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속하지 않으며, 분산, 중계, 망, 상호지지, 잠재력의 차이, 격차 때문에 존재한다. 권력은 이 차이들의 체계에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환자를 시선으로 포위하는 간수와, 환자에게 규정이라는 익명적 권위를 환기하는 간병인이 이런 중계지점의 예에 해당한다. 이 중계지점을 통해 환자는 의사의 의지나 병원의 규칙에 포위된다. 푸코에게 19세기 초반 유럽의 정신병원(요양원)은 광인을 제압하는 싸움터로 보인다. 그 이전 시기에 정신병을 ‘착오’로 받아들였다면, 이 시기에는 정신의학적 담론과 실천 내부에서 ‘광기’라는 개념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제 광기는 ‘힘의 폭발’로 받아들여지고, 광인의 힘은 제압되어야 한다. 이 힘을 제압하는 일이 병원의 전술 목표이자 치료이다. 약물 치료와 같은 의학적 치료 대신 환자를 길들이는 도덕 요법이 이때 발달한다. 의학적 지식과는 별 관계 없이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착란이라고 인정하는 고백을 거치며 치유 절차가 완결되는 과정에서 푸코는 힘, 권력, 사건, 진실의 일정한 배분을 발견한다. 또 이 배분이 의학적 모델에서 발견되거나 당대 임상의학에서 구성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1800~1830년대에 정신의학이 의학적 실천 내부에 편입되었다는 통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서는 정신의학과 의학 간에 이질성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푸코는 어쩌면 의학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이 이질성이 정신의학의 특징이 아닐지 의심한다. 이런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은 의학과 결부되면서 여러 제도체계 안에서 토대를 구축한다. 정신의학의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이 토대를 추적하기 위해 푸코는 자신이 《광기의 역사》에서 사용했던 몇 가지 개념들을 비판하고 교체한다. 바로 ‘폭력’, ‘제도’, ‘가정(국가기구)’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푸코가 떠올린 새로운 권력 형태를 설명하는 데 이 개념들이 유용하지 않거나 오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푸코는 권력에 대한 거시적 접근에서 미시적 접근으로 옮겨가면서 ‘폭력’과 권력 개념을 분리하려 한다. 푸코에게 모든 권력은 신체적이며, 폭력적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로 신체적이다. 권력은 폭력처럼 균형을 상실한 힘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세심한 형태로 신체에 작용한다. 필립 피넬의 텍스트 안에서 조지 3세의 광기를 치료하는 과정을 인용하면서 푸코는 더 자세하게 새로운 권력의 유형을 분석한다. 왕이었던 자가 광인이라는 치료 대상이 되면서 새로운 권력관계 안에 놓이는 과정은 극단적인 대조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주권권력의 거시물리학에서 규율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 권력의 유형도 변화한다. 조지 3세가 행사했던 권력과 조지 3세를 대상으로 행사되는 권력은 전혀 다른 형태의 권력이다. 19세기 유럽은 새로운 정치형태가 나타났던 시기이다. 영국에서는 의회의 강화와 미국 독립전쟁을 겪으면서 점점 왕권이 축소되었고, 조지 3세는 왕에서 광인으로 신분이 변화했다. 더 이상 왕일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왕일 수 없는 상태와 정신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왕임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광기는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도 비슷한 변화를 감지하게 했다.
푸코의 독특한 점은 이 정치형태의 변화를 단지 거시적 권력 유형의 변화로만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헌군주제 하의 왕과 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정치가나 군주는 그 이전 시대 왕과 같지 않다. 어쩌면 군주의 지위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각, 권력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방법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푸코는 궁전이나 의회가 아니라, 광인의 신체를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규율을 강요하는 19세기의 정신병원에서 새로운 권력의 형태를 감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