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속의 악마> 1. 생명이란 무엇인가? 0423 발제_아라차
물질과 정보가 만나 생명이 된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명을 원자와 분자의 물리학으로 설명해 내려고 노력한다. 성공했으면 좋겠다. 어떤 목적이나 영혼같은 개념 없이도 생명에 대한 의문이 해결된다면 인류가 많은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리 간단치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의 저자인 폴 데이비스는 우주론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이다. 우주의 기원, 블랙홀의 양자적 상태, 시간의 본질 등과 같은 문제를 다뤄왔고, 생명의 기원과 본성, 우주생물학으로 관심을 확장했다고 한다. 일찍이 양자물리역학자였던 에르빈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처럼 “생명”에 대한 수수께끼는 물리학적 존재론을 탐구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주제이다.
슈뢰딩거는 혼돈에서 생명이라는 질서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즉 생명이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그 명령이 어떤 식으로든 분자에 부호화돼 있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DNA 구조가 발견되면서 슈뢰딩거의 통찰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분자생물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생명을 원자와 분자의 물리화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강한 환원주의’가 과학계의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 부호가 해독된 지금도 유전자와 생물학적 형질이 어떻게 연결되고 조직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슈뢰딩거는 생명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물리법칙’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암시했다.
저자는 슈뢰딩거의 생각에 동의하며, “생물은 깊고 새로운 물리적 원리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원리들을 밝혀내 거두어 쓰게 될 문턱까지 우리가 와 있다”고 말한다.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물질 이외에 어떤 마법과도 같은 생명력-공기(숨), 열, 전기, 영혼, 에테르 등-에 의해 생겨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생기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비록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생명 물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정보’다.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가르는 것은 정보이다.” 유기체가 생식을 통해 종을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DNA와 단백질이 수행하는 유전 정보의 저장, 처리, 전달이 필수적이다. “이 명확한 물질적 복잡성(생명의 하드웨어)을 꿰어 잇고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숨이 멎을 것 같은 정보의 복잡성(생명의 소프트웨어)이다.” 하지만 ‘생명=물질+정보’라는 주장에는 한 가지 난점이 있다. 생명을 구성하는 분자는 물리적 구조이고 정보는 추상적 개념인데, “어떻게 추상적인 정보를 분자의 물리와 이을 수 있을까?” 폴 데이비스는 해결의 열쇠를 150여 년 전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제안한 사고실험에서 찾아낸다. 이른바 “맥스웰의 악마”. 맥스웰의 악마와 생명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다음 장에서 이어진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복잡한 생명체들은 수십억 년에 걸쳐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어마어마한 세월에 걸쳐 지금에 도달했음을 “불가능의 산”이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닿을 수 없어 보이는 산도 가까이 가면 완만한 등선을 통해 오를 수 있다. 생명이 가진 복잡성에는 이 모든 능선들이 겹겹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생명 이전의 불가능의 산까지 파고든다. 이 여정에서 눈에 띄는 질문은 두 가지다. 생명이 가진 성질들을 원자와 분자의 물리학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비생명에서 생명으로의 상전이(이를테면 액체 상태의 물이 기체 상태의 수증기로 뜀뛰기하는 것)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앞 질문이 해결되면 뒤 질문도 쉽게 풀릴 수 있다.
이런 질문들이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휴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명이 아님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생명의 본질을 묻는 질문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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