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1. SF의 미학에 관해 2. 사변: SF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3. 신비화로서의 SF와 테크롤로지 조애나 러스가 1970년대에 쓴 세 편의 SF 비평을 읽었다. 조애나 러스의 글에서 문학 안에 SF의 자리를 마련하고, 왜 SF라는 새로운 장르가 필요한지를 설명하면서, SF가 새로운 시대와 맺고 있는 관계를 밝히려는 비평가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 설명과 노력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페미니즘 SF 비평이라는 측면에서 과학과의 관계를 통해 SF와 우리 세계가 처한 상황을 밝히려는 조애나 러스의 관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세 편의 글 중 두 편이 《사이언스 픽션 스터디스》에 실렸으며, 조애나 러스는 이 글들이 SF에 관한 학술적 논의에 기여하기를 바란 듯 보인다. 먼저 1장에 실린 글은 SF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비평가들을 공격하면서 SF가 가진 특성들을 나열한다. 조애나 러스는 SF가 교훈적이며 현상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SF의 주인공은 개인이 아닌 집합적 의미의 인간이며, SF가 과학과 맺는 관계는 중세문학과 기독교의 관계만큼 공고하다고도 설명한다.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조애나 러스가 말한 SF의 의미는 편협하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다만 SF가 교훈 없이 자극적 이야기나 미래 예언에만 열을 올린다고 여겼던 당시의 문학 비평가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겠다. 서구 문학의 역사에서 SF의 존재는 분명 기존 문학과 단절하는 계기이며, 새로운 시대의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특성을 조애나 러스는 과학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조애나 러스는 과학이 그 자체로 ‘진실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방식’을 포함한다(42쪽)고 말한다. 진실을 결정하는 과학의 힘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SF의 시선과 맞물린다. 그렇기에 조애나 러스는 SF가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사고실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SF의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SF는 기존 문학의 한계를 넘어 과학이 종교가 된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열쇠이다. SF가 기존 문학과 달리 가벼운 즐거움에만 탐닉한다는 통념으로는 SF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SF에 대한 이해는 SF 이전 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며, SF 문학에 대한 이해는 비SF 문학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근대와 근대 이전 세계, 과학과 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SF를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SF 비평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문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롭게 등장한 ‘이 새로운 영토’(49쪽)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SF와 판타지를 구분하려는 조애나 러스의 노력 역시 과학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중세인들이 신을 믿으며 살아갔듯, 근대인은 과학을 믿으며 살아간다. 과학을 저버리는 일은 시대와 멀어지는 일이다. 동시에 과학과 거리를 두는 일은 우리가 사는 시대와 거리를 두고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과학이 신의 역할을 대신한다면, SF는 내부에 판타지의 자리를 다시 마련해야만 우리 시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문학 안에 SF의 자리를 마련하기 바쁜 조애나 러스에게 아직 판타지는 의심스러운 영역이다. 다만 조애나 러스는 SF가 ‘불가능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71쪽)는 표현으로 이 친숙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장르의 특성을 설명하려 한다. 물론 이 친숙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은 SF의 속성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무척 유용하다. SF는 현실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에 근접하며 현실을 바꾸려는 문학이다. 그런 면에서 조애나 러스는 SF의 신비화에 저항한다. 조애나 러스는 이 신비화의 주범을 테크놀로지로 본다. 테크롤로지는 SF에 대한 논의와 이해 없이 열광을 불러오면서 오히려 SF에 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애나 러스의 비유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자연의 단맛이 아닌 인공의 단맛이다. 인공의 단맛은 자연의 단맛과 달리 단맛에 대한 갈증을 절대 해소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단맛을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절대 완전히 포착하여 알 수 없는 일을 주변부만 논의하면서 더욱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일, 테크놀로지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이런 양상으로 벌어진다. 조애나 러스는 이 논의들이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시스템과 자본주의를 가리고 그에 대해 논의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테크톨로지를 애호하든, 증오하든 마찬가지다. 남성성과 결합한 테크놀로지는 권력에 대한 감각과 밀접해지며, 젠더와 인종에 대한 배제로 이어진다.
보수적 사고방식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전시하는 백인 남성 작가들이 쓴 SF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인종과 젠더에 대한 차별과 배제, 이성애와 혈통, 계급에 대한 찬양을 테크놀로지에 대한 묘사 속에 슬그머니 섞어버리는 일이다. 과학이 종교를 대체한 시대에 이런 일이 어떻게 놀랍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흑인 여성 SF 작가들이 쓴 판타지에 등장하는 주술적 힘은 과학에 저항하는 힘인 동시에 그 차별과 배제를 폭로하는 힘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