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서문, 1.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통치인가 민주주의는 가까우면서 어려운 문제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는 도달해야 할 정치적 목표나 이상적 사회를 ‘민주주의’로 이해했다.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고 비로소 국민투표 체계가 자리를 잡은 후에도 혼란은 여전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자신들의 집권을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 저자의 말대로 서로 대립하는 국가들이 각각 국가명에 ‘민주’를 쓰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상황이니, ‘민주주의’만큼 혼란스러운 이름이 있을까. 2024년의 겨울을 지나 2025년의 봄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혼란 속을 헤쳐 나가고 있다. 과거부터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이 민주주의를 조롱해 왔던 말들에 어느 정도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조롱에 합세하며, 입바른 소리나 하는 일이 덜 어리석어 보이는 태도일까. 혹은 혼란스럽지 않은 민주주의를 위해 명확한 노선과 방향을 제시하거나, 그런 노선과 방향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까. 누군가는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고 문제를 선명하게 하려고 책을 읽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바로 혼란을 직면하며,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조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원리 안에 존재하는 ‘역설, 근거 와해, 무분별, 뒤섞임’(14쪽)을 직시하며, 민주주의를 여전히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려고 한다. 저자는 플라톤의 조롱에서 민주주의의 특징 두 가지를 추론한다. 바로 ‘아르케’ 없음과 ‘형상’ 없음이다. 민주주의에는 ‘아르케’(원리)가 없고, 민주주의의 주체인 데모스(대중)에는 ‘형상’이 없다. ‘아르케’가 없기에 민주주의는 모든 정체의 외부나 한계로서 존재하고, ‘형상’이 없기에 데모스는 집합적 신체의 역량으로 존재한다. 진리는 없고 의견만 있는, 올바름의 기준을 찾을 수 없는 이 정체를 철학자 플라톤이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짐작이 간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들며 민주주의의 어리석음과 위험을 주장하지만, 저자는 동굴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내려보내려 한다. 바로 ‘근거의 근거 없음’(26쪽)을 드러내는 니체의 ‘심연’이다. 니체의 말대로 신이 죽은, 혹은 진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토대, 어떤 척도, 어떤 원칙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어떤 자격이나 조건 없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린다.’(27쪽) 근거 없는 원초적 ‘평등’뿐인 세계이다.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자들이 혐오하던 대상도 바로 이 ‘평등’이다. 차이와 분란, 변이와 생성을 추방하려던 플라톤, 인간을 분류하며 위계를 세우려는 이들,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선을 긋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평등을 원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지식도, 재산도, 혈통도, 성별도, 심지어 숫자도 다른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27쪽)하는 민주주의의 이면을 외면하려 든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을 돌아보게 된다. 2011년, 오랜 민주화 투쟁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실현되었을 때였다. 어떤 이들은 그때 우리 사회의 평등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으나,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가로막혔다. 차이와 분란, 생성과 변이를 불러올 말들이기에 그랬다. 저자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돌아보자고, 더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민주주의가 야기하는 혼란을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시기는 바로 그때였다. 플라톤은 어리석은 데모스를 선동하는 타락한 정치가 ‘데마고그’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경고한다.(31쪽) 플라톤에게는 어리석은 데모스보다 선동가가 더 위험한 존재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각주 27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한다. 데마고그가 데모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결국 데모스의 역량과 관계가 있다. 데모스가 무능해졌을 때 데마고그가 선동의 힘을 발휘하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데마고그는 선동가인 동시에 혁명가의 형상이기도 하다. 충분한 역량을 가진 데모스를 촉발하여 생명력을 끌어낸 데마고그는 혁명가가 된다. ‘형상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주체 데모스는 고정되거나 단일하고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더 다양한 집합(소수성)으로 데모스를 구성하(려)는 힘 자체가 데모스의 역량이고, 이 역량이 곧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다수결, 즉 숫자의 힘으로 보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