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2주차 / 20250211
여러 우주들
1 합일의 원리
중국의 고전 『주례』에는 생산을 결정하는 네 요소가 나온다. 때, 기氣 , 재료, 기술이 그것이다. 네 요소 중 기술은 기를 촉진하는 것으로 쓰인다. 이때 기술의 촉진 능력이란 기氣적 세계관의 존재가 우주질서 속으로 합일되는 것과 관련된다. 이 우주질서는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도덕질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또한 4원인을 갖고 있다. 형상인, 질료인, 운동인, 목적인인데 하이데거는 그중 운동인을 드러남과 결부시킨다. 또 이 드러남이 기술과 연결된다. 기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에서 ‘진리(알레테이아)를 드러내는 것’이란 이런 의미이다. 이렇게 기술의 위치와 관련해서 볼 때 중국철학의 도덕의 추구와 그리스-독일철학의 진리의 추구라는 서로 다른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유가와 도가의 가르침에서 공통적인 것은 도덕적이거나 선한 삶을 이끈다는 의미에서의 ‘삶’에 대한 물음이었다. 유가와 도가 모두 육후이가 ‘도덕적 코스모테크닉스’라고 부르는 것을 구현한다. 이 용어는 우주와 인간 존재에 대한 관계적 사유를 가리키는 것으로, 거기서 우주와 인간 둘의 관계는 기술적 존재에 의해 매개된다. 다시 말해 이런 육후이의 의도는 유가와 도가 모두에서 가능한 테크놀로지 철학으로 그러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법에 따르면 중국철학에서 ‘도’는 존재의 최고 질서를 나타낸다. 이때 육후이는 기술이 최고 기준에 이르기 위해 도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최고 기준은 도기합일道器合一로 표현된다. 이 도기합일에서 ‘기’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도구, 연장, 일반적으로는 기술적 대상을 의미한다.
육후이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가 개념 간에 유사성을 끄집어내려고 시도할 때는 기저에 갈린 비대칭성을 가시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려운 육후이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유사성, 어디까지나 이해를 위한 구조적 유사성에 의존해 관계도를 그려본다.
도 도 ㅣ ㅣ # 조화, 합일 관계 기氣 기器
2 테크네에 대하여
중국 사상에서 볼 수 있는 조화와 합일은 ‘도’라는 우주론적 질서에서 연원한다. 여기에 기술(기器 ㅡ 계속되는 이 글에서 ‘기’는 모두 ‘그릇 기器’이다)은 이 도에 종속된다. 이와 다르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테크네는 퓌시스을 모방하는 것인 동시에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이데거는 테크네를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것, 즉 폭력으로 인식한다. 알레테이아(진리)에서 유래한 디케는 하이데거에겐 질서를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테크네와 이 디케 간의 대립을 이끌어낸다. 또한 테크네의 폭력 행위가 인간학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화론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디케 ㅣ # 폭력(질서에 따르려는 시도) 테크네
3 하늘
육후이가 서론에 쓰고 있듯이 ‘코스모테크닉스’란 기술적 활동을 통한 우주질서와 도덕질서의 일치이다. 이런 코스모테크닉스적 측면에서 그리스와 다르게, 고대 중국사상은 인간과 다른 우주론적 존재자들 간의 공명에 기초한 관계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공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원전 125년에 저술된 『회남자』에서 자연의 도와 인간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연의 변화, 즉 한 해 내내 부는 바람(조풍, 명서풍 … )은 정치적, 사회적 행동의 지표였다. 이 자연의 도-하늘-우주에 대한 견해는 이론적인 변화를 겪지만 중요한 것은 하늘과 도덕 간의 관계이다. 이것이 장자와 노자 같은 초기 경전부터 계속되는 천인합일이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며, 천-인 또는 우주-도덕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주는 도덕에 우선하며, 따라서 우주가 도덕을 설명한다. 이것의 의미는, 인간이 이미 세계 내에 있을 때 세워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주가 우선하다는 것이며, 그래서 우주와 도덕의 합일은 우주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따르는 육후이의 이론이 우주론인 이유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 아레테에 대하여
중국 사상의 도-기에서 ‘도’를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고대 그리스 논의로 넘어가 ‘테크네’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플라톤-하이데거 철학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육후이는 여기서 테크네의 간략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플라톤 이전과 이후, 또 그것을 해석하는 하이데거의 논의는, 테크네와 아레테(훌륭함, 미덕)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선 테크네는 쉽게 기술로 생각할 수 있지만, 긴 육후이의 연구가 도달한 지점에서 테크네는 티케(운 또는 우연의 일치)의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 즉 테크네는 우연을 극복하는 질서와 비율의 보증자이다. 그런데 이 테크네는 어떻게 미덕(아레테)과 관련되어 있을까?
육후이가 제시하는 요약은 이렇다. 개인적인 자기-통제와 관계 깊은 아레테는 산물을 갖지 않는 반면 테크네는 산물을 가진다. 여기서 이 테크네가 산물을 가진다는 것은 목적이 있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도식적으로 이해해서 그 목적의 위치에 아레테가 자리하는 것으로 육후이가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네의 목적으로서 아레테”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레테는 요리술과 같은 단순 기술의 수준을 넘는 것이다.
아레테와의 관계를 생각할 때, 하이데거는, 테크네는 일상적인 수준을 넘어 ‘사물을 보는 것’ 또는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하이데거가 이론화한 형이상학의 역사는 테크네가 파악하려는 본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레테 도 ㅣ # 티케(우연)의 극복 ㅣ # 합일 테크네 기
5 도에 대하여
위 관계도에서 처럼 아레테-테크네, 도-기의 미묘한 유사성은 상이한 코스모테크닉스를 드러낸다. 이제 중국적 도-기 관계로 옮겨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곽상은 『장자』주석에서 ‘자연’이라는 측면에서, 도의 근본 이해를 제안한다. 불필요한 개입 없이 우주의 원리를 따름으로써 말이다. 『장자』에 나오는 소잡이 포정 이야기를 통해 이해한 도는 연장이나 솜씨로는 해낼 수 없는 완벽화는 도이다. 그리고 도는, 그 칼에 이미 내려진 사회적 규정(소 잡는 칼)을 제거함으로써 날카로운 것으로서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게 한다. 이렇게 포정의 칼은 도를 따름으로서 소의 몸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행된다.
6 기에 대하여
유교에서 ‘기’는 종종 의례 또는 예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는 자기 시대에 도덕이 부패하고 파괴되던 것을 예를 통해 회복하려 했다. 공자에게 도덕은 예의 실천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예라는 기를 통해 도덕적 우주론을 안정시키고 복원하는 과정이다.
유교와 도교에서의 기의 차이도 중요하다. 앞의 공자의 ‘예’처럼 유교에서 기는, 도의 중요성에 더해 하늘의 질서를 보존하고 위대한 인격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에서만 사용된다. 반면 도교에서 기는 그러한 도구적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자연적 존재 또는 자연에 의해 도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7. 스토아학파의 자연과 도덕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영향을 많이 받은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학파의 일원인 제논에 의해 규정된 대로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이다. 이것은 미덕을 따르는 삶으로 볼 수 있으며 에우다이모니아(행복)와도 깊이 관련된다. 그러면서도 이 미덕과 행복은 다른 개념인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미덕을 따르는 삶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 원리에 따라 행복에 속하지 않음에도 미덕을 따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레스토텔레스가 이 에우다이모니아의 실현과정에서 미덕과 미덕적이지 않은 것(외적 선 ㅡ 좋은 태생, 친구들, 돈 그리고 명예) 모두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스토아학파에게 에우다이모니아는 (윤리적) 미덕들만 구성된다고 본다. 스토아학파에게 행복은 이렇게 미덕과 일치된 것이었다.
행복의 실현은 미덕들로 구성된다는 것에, 스토아학파의 가장 중요한 공리가 놓여 있다. 앞에서 말한 제논의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은 후대의 해석에서 자연과의 조화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자연, 즉 퓌시스는 도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두 영역을 매개하는 것이 스토아학파가 오이케이오시스(전유)라고 부르는 이념이다. 영혼이 우주적 조화를 내면화할 때,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을 질서와 조화 속으로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은 오이케이오시스에 의해 주도된다. 또한 이런 스토아학파의 논의 구조는 지금까지 얘기한 육후이의 코스모테크닉스의 논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퓌시스 퓌시스 ㅣ 오이케이오시스 ㅣ 코스모테크닉스 도덕 도덕
8. 고문운동
마지막으로 코스모테크닉스의 논의 기초가 되는 기-도 관계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중국 역사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기-도 합일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들이 강하게 있어 왔다. 이 위기는 불교가 전래된 시기에도 해당된다. 당 초기(618~709년)에 불교가 중국의 지배적 종교가 되었다. 그리고 당 중기에 유교 부흥 운동이 불교에 대한 저항으로 재개되었다. 특히 문장의 기능과 과제를 재주장함으로써 유교의 가치를 재천명하려는 노력, 즉 기-도 합일의 노력이 있었다. 이것이 ‘고문운동’인데, 이 고문장의 고대적 양식을 재건하려는 시도는 ‘문장으로 도를 밝힌다’는 구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문장’은 기-도 사이의 합일을 재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특수한 형식의 ‘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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