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인류학] 폐허에서 송이버섯을 만나다 (<세계 끝의 버섯> 1부)2025-03-1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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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1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문명, 발전론을 불신하고 비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떻게 비판하는지, 또 비판 이후에 무엇을 말할지가 문제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예상치 못한 비판 방식과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는 진보에 지나치게 길들었고, 자본주의와 문명에 대한 비판조차 이 진보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폐허를 상상하며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기에 생존도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나 칭이 오리건주의 방치된 숲에서 발견한 송이버섯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로 근대화나 진보에 대한 기대 없이 살아갈 가능성이다. 진보와 생존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진보할 수 없다고 여겨 불안정을 느끼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이 생존에는 협력과 호기심, 상상력이 필요하다. 폐허에서 생존하려면 폐허에도 여전히 무언가가 살아가며 그곳을 변형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애나 칭이 보기에 송이버섯과 송이버섯 채집인은 모두 그런 폐허에서 발견된, 변형의 결과이며 한 요소들이었다. 애나 칭은 인류세 개념에서 인류가 접두사로 쓰일 때 인간과 비인간의 가변적 배치, 협력적 생존이라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50) 실제로 국가와 자본주의의 기획 바깥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 있었다. 국가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주목하면서도 그 존재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물어야 한다.(51)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인간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세계는 다종의 세계이며, 식물과 동물, 박테리아, 무생물 등 모든 비인간 역시 세계-만들기에 참여한다. 물론 자본과 국가는 이들 비인간의 배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애나 칭은 이런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배치 안에서 정치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관찰하기에 유리하다고 말한다.(58) 인간과 비인간의 세계-만들기에는 병치의 과정이 중요하다.

 

애나 칭에게 생존은 정복이나 팽창이 아니며, 개별자의 이익이나 자립과도 거리가 멀다. ‘자립이라는 불가능한 환상은 인간이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스스로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66) 그에게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는 일이며, 곧 오염이다. 협력이 가져오는 다양성은 순수한 다양성이 아니라 오염을 통한 다양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범주와 명칭은 폐허의 역사에서 생겨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송이버섯은 이 오염된 다양성의 산물이다. 오리건주의 숲이 남벌을 거쳐 인간의 손에 교란되면서 송이버섯이 나타났다. 오리건주에서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미엔인들 역시 도주와 전쟁의 역사 안에서 오염된 다양성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이런 사례는 흔하게 발견되지만,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애나 칭은 이처럼 복잡하고 추하고 초라하며 요약되지 않는 역사를 말하는 일을 우리 지식 실천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나 칭이 연구하려는 역사는 쉽게 요약되지 않을 뿐 아니라 확장되지도 않는다. 유럽의 식민지 플랜테이션은 자연스럽지 않은 확장성이 우리에게 자리 잡은 과정을 보여준다. 플랜테이션 작물인 사탕수수는 교배되지 않고 다른 작물과 마주치지 않은 채 단독으로 재배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작물인 사탕수수처럼 경작자들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었다. 고립된 생물종을 고립된 경작자들이 경작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송이버섯 숲은 이 사탕수수 농장과 완전히 대조된다. 송이버섯은 땅속 곰팡이의 자실체로, 변형하여 다른 생물종과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의 재배는 불가능하다. 송이버섯 채집인도 고용되지 않은 이들이다. 숲에서는 기업이 확장될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도 애나 칭은 송이버섯 숲이 확장성의 잔재이며, 확장성에 기대고 있다고 말한다. 플랜테이션에 저항하며 폐허가 된 숲에 송이버섯이 자라고 아시아에서 온 채집인들이 몰려든다.

 

애나 칭의 말이 확장성은 나쁘고 비확장성은 좋다는 주장은 아니다. 확장성은 사회를 대규모로 변화시키려 하지만, 그 기획이 실패하는 지점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그 지점에서 (송이버섯 숲처럼) 확장성 없는 생태적, 경제적 관계가 분출되는 점을 응시해야 한다. 불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이다. 우리가 보려는 배치는 오염되었고, 불안정하며, 순조로운 확장을 거부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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