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부 2021-02-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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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2부 시간이 없는 세상

 

2020. 2. 19. 발제 : 토라진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건들의 끊임없는 변화가 세상을 만들어간다. 시간이라는 변수 없이.’

저자 카를로 로벨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시간의 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변화의 대상 또한 사물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사건이다. 돌이나 심지어 사람조차 양자장들의 복잡한 진동, 힘들의 순간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사건, 잠깐 동안 변함이 없는 사건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사건의 네트워크 속에서 태어나 그 안의 변화 과정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의 질문(플라톤과 케플러는 우주의 시체를 도형으로 이해했다.)에서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는가의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다. 뉴턴역학, 맥스웰방정식, 양자역학 등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문법의 부적당함

: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는 사물은 위에 있고......지구 전체가 다 그러하다.’

 

로벨리는 현재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현재주의철학자들에게 묻는다. 과연 범세계적이고 객관적인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입증될 수 있는 것일까?

로벨리에 의하면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존재인가라는 철학자들의 질문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실재존재라는 말은 애매하거나 많은 뜻이 있어 이것은 모든 것을 뜻할 수도 아무 것도 뜻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체들은 다른 실체들과 서로 다른 의미로 존재하고 실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세상이 현재들의 연속이 아니며 현재와 과거, 미래가 모두 똑같은 실제이고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는 영원주의와 맥락이 닿아 있다. 영원주의에 의하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것은 블록 우주론이라고도 불린다. 우주의 역사를 모두 똑같이 실재하는 하나의 블록으로 보고 모든 것이 블록의 변화와 연결망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이라고 여겼던 과거, 현재,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단지 허상일 뿐일까? 그렇지는 않다. 시간의 구분은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이며 복잡한 시간적 관계를 단순화된 문법이다. 문제는 하나의 세계적인 이 시간 문법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2천년 전에 지구가 구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모순된 문장 표현을 했던 고대인의 기록(위의 인용)처럼 약속된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관계의 동역학

: ‘시간변수가 없는 세상은 복잡한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연결된 사건들의 그물망이며 여기에 작용하는 변수들은 우리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확률 규칙을 따르고 있다. 산 정상에서의 강한 바람, 사춘기 청소년들의 갈라진 입술처럼 아름다운 세상이다.’

 

세상을 설명하는데 시간변수가 필요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시 말해, 이러한 변수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이러한 원리를 처음으로 설명한 것은 미국 물리학자인 브라이스 다윗과 존 휠러의 휠러-다윗 방정식이다. 이들의 양자중력 이론을 기반으로 로벨리는 루프양자중력 방정식을 발전시켰다.

루트양자중력 이론에서 장들은 입자로 나타나며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고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한다. 이러한 상호작용 동역학은 확률적이다. 세상은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점들의 총체와 같다.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란 없다. 공간적 인접관계는 공간 양자들을 네트워트로 묶는데, 이를 스핀테트워크라고 한다. 스핀 테트워트 안에 있는 한 개의 고리를 루프라고 한다. 네트워크는 비연속적인 점프를 통해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데 이를 스핀거품이라고 부르는 구조로 설명된다. 루프 양자중력은 기본적인 공간과 시간 없이 일관성 있는 이론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변화는 무엇일까?

 

로벨리는 관계동역학을 설명하면서 휠러와 다윗과의 마지막 만남을 소환한다. 그리고 휠러의 부재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이제 그는 양자중력의 미스테리에 가장 먼저 근접한 사람이다는 내 생각을 말할 수 없다. 이제 그는 지금 이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과 추억, 부재의 고통. 그것이다. 그렇다고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부재는 아니다. 고통은 애정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존재와의 관계였다. 그가 몰두하고 있는 양자중력은 어쩌면 이 세상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과의 정서적 교류과 감정들을 어떻게 물리학적, 철학적 감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그는 사건의 변화와 관계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이루고 이해할 것인지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로벨리의 고민 속에서 우리는 그의 텍스트 안에서 어떤 확률과 불확정적인 만남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미 그와의 사건은 우리 안에서 벌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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