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제국과 의로운 민족 1장 - 상투를 튼 유학2022-04-1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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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제국과 의로운 민족_1장_상투를 튼 유학.pdf (194.9KB)

차이나 리터러시: 제국과 의로운 민족- 1장 중국과 조선

우리실험자들 2022.4.14.

 

상투를 튼 유학

에레혼

"요즘 중국 반한 감정 심하지 않나요?" 중국에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여기에 "적어도 만나본 사람 중에는 없어요"하고 이렇게 애매하게 답을 하곤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지내는 한국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끝에 꼭 덧붙인다. 내가 만나는 중국인들이라고 해봐야 주로 대학원생, 교수, 교직원이 전부니까. 중국인 연구자들은 한국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악플보다는 무플이 서럽다는 말. 중국에서 한국인이라 겪는 감정을 대변하는 문구로 제격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 대한 악플이 좀 달리는구나, 싶을 때가 많다. 올해 초의 동계 올림픽에서 벌어진 설왕설래를 차치하고서라도, 갑자기 이런 비난은 왜 나온걸까 어리둥절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핫한 한국 관련 밈(meme)'한국은 금메달 뿐만 아니라 중국의 모든 것을 가져가려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인들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뺏어가려 하는 대상 중에는 공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세계청년설(世界靑年說)'이라는 중국의 토크쇼 프로그램의 캡쳐 화면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방영했던 '비정상회담'의 중국판이다. 방송은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출연하여 자국의 문화 등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번째 사진 오른쪽에 표시된 자막을 한국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공자는 대체 한국인인가요? 아니면 중국인인가요?(孔子到底是韩国的还是中国的?)" 이 질문을 받은 한국인 패널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한국인은 누구도 공자를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을 대표해서 이야기하는데 공자는 중국인이다"라고 대답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고 받네, 하며 넘어갈 일은 아닌 듯하다위 예능은 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방송에 인터넷에서 오고 가는 극단적 발언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이 공자를 빼앗아 가려 한다는 비난을 하는 네티즌이 많다>는 사실과 이런 음모론(?)이 예능 프로그램 같은 공식적 영역으로 진출한 것은 큰 차이이다. 그만큼 중국에서 한국의 '문화 공정(이런 표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임의로 만든 말이다)'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까? 아니면 거꾸로도 볼 수 있다. 이런 '도시 전설'이 자주 노출되면서 중국 사람들의 확증 편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어떤 '카더라'도 맨땅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한다며? 누군가 이렇게 물어볼 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려니 찔리는 구석이 있다. 한국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공자 동이족'이라고 검색해보자. 알고 보니 공자가 한국인이었다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죽기 전 자신을 은나라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2)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국가이다. 3)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고 불렀으니, 공자도 사실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공정'이라고 불리려면 이런 논리적 뜀뛰기는 기본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시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면, 앞에 나온 공자라는 단어를 유학으로 대체하면 어떤가? 키워드를 바꾸니 이야기가 조금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거치고 나니 제공대전祭孔大典을 할 수 있는 이가 남아있지 않아 한국의 성균관에서 의례를 배워갔다는 에피소드, 혹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우리의 이학이 청나라보다 우수하다고 믿었다는 일화들까지…… 한국이 중국에 대해 유학으로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고 산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 아닌지. 공자 한국인 설도 이런 토양에서 자라난 '변이종'처럼 보인다.

유학에 대한 자존심 싸움에 고금에 차이가 있다면, 지금 중국이 '원조 맛집 논쟁'에 불을 지폈다는 정도이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도 조선인들의 유학(성리학)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조선이 유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우월감'과 연관된다.

"청이 중국을 정복한 이후, 많은 상류층 조선인들은 이제 조선이야말로 야만적인 통치자들이 압도하고 있는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문명을 고수하고 있는 지역이라 보았다. 중화의 역할을 이제 조선이 대신한다는 논리는 고통스럽지만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한 세대도 채 되지 않아 이제 중국은 문명의 보금자리에서 문화적으로 타락한 지역이 되었다."(85)

중화의 가치를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감. 그런데 이런 숭고한 마음이 명나라의 붕괴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명나라와 조선은 형제의 나라였으나, 조선이 마냥 순종적인 아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65쪽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리 상국上國의 황제라고 한들 예법에서 어긋나는 결정은 지탄의 대상이었다. "숙부에 이어 제위에 오른 가정제嘉靖帝1524년 생부와 생모를 황제로 추숭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중종은 즉시 진하사進賀使를 보내기로 했다. 이와 같은 결정에 조선 조정의 유학자들이 반대를 표했다. 그들은 가정제의 결정이 유교적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원산지에서 건너온 유학이 오히려 이역만리로 건너오니 본질을 운운하는 형국이 펼쳐졌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1장 앞부분에서 저자는 제목에 사용된 단어들에 대한 뜻을 풀이하며 논의를 진행한다. '제국', '민족', '의로움' 가운데 앞서 살펴본 유학과 가장 관련이 깊은 단어는 의로움이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가치 중에 의로움을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의로움이 사회 밑바닥 정서로 자리 잡은 데에는 성리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성리학에 대한 자체적 고찰이 이뤄졌다. 또한 성리학과 뗄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의로움이다.

"주희와 그를 따르는 성리학자들은 의로움이 사물의 타당함이자, 가족과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의 올바른 질서를 의미한다고 가르쳤다. …… 주희의 성리학 전통에서 의로움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니는데, …… 먼저 하나의 측면은 원리에 대한 지식이다. 다른 하나는 …… '상황에 맞게 덕을 바르고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의사결정 능력'이다."(44-45)

결국 의로움으로 똘똘 뭉친 조선은 좋게 말하면 전통의 수호자요, 다르게 보면 근본주의자에 불과했다. 의로움이 부각된 조선식 성리학은 우리가 더 제도를 운용하기에 적합한 집단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기 쉬웠으리라. 조선시대에는, 특히 명청 교체기에는 이런 중국에 대한 감정 가운데 문화·사상적 우월감이 지배적 정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성리학으로 누가 더 원조인지 가늠해보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제국과 의로운 민족을 읽고 나니 뜬금없는 '공자 국적' 논쟁 역시 한국인 특유의 의로움에서 촉발된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공자가 동이족이라는 주장을 들여다보면 '역시 중국이 지금 공자의 가르침에서 한참 엇나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타나기 일쑤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자의 도를 향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들이 의롭지 못하다'는 논리가 다시금 동원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의로운 민족'이라는 표현이 마냥 긍정적인 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한국 혐오 정서는 의로움에 근거한 평가가 장기간 누적되며 등장한 방어기제는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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