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국가vs.개인과 민간2022-10-06 10:34
작성자

2022.10.06. 

차이나 리터러시

<민간중국> 

우림


국가vs.개인과 민간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꿰뚫는 보편논쟁이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나”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여 반대로 “개인은 국가가 필요없나”까지 개인과 국가 간의 스펙트럼에서 균형추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삶에서 반복되고 있다. 개인보다 국가의 역할을 앞세울 것인지, 개인을 중시하여 국가의 개입을 부정할 것인지 말이다. 

이 국가-개인 관계는 “국가가 허용한 규범의 세계에서 제외된 영역”인 민간(p.283)에서 구성된다. 어떻게 보면 국가와 개인의 회색지대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의 범위에서 제외되었지만 용인된 공간, 반대로 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개체에 머물러있지 않고 사회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하는 공간을 민간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본 책의 <들어가기>에서 언급한 국가와 개인의 접면이 발생한다. 이 책의 전체는 국가의, 혹은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개인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응했는지, 혹은 생존을 위해 적응했는지, 나아가 소극적으로 순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국가의 형태가 하나의 개발정책인지, 철거정책인지,  혹은 외교관계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국가가 허용한 규범이라는 정책영역에서 발생한 변화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또 동시에 그 제한 내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우리 사회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그래서 각각의 모습에서 기시감이 들면서도 낯설기도 하다. 10장에서 다루고 있는 하이징 성중촌 세입자들이 갑작스러운 무더기 퇴거 명령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순응을 택했다는 것이 사뭇 낯설었다. ‘하이징 성중촌은 언젠가 재개발되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무더기 퇴거였지만 결국 예상하고 있었던 퇴거명령이었다. 이 충격을 완화하자.’라는 행동 논리와 인식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비슷한 상황에서 철거민들은 자신의 공간을 비워줄 수 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저항한다. 이에 반해 성중촌의 그들은 어떻게 보면 국가 개발 정책이라는 목표가 내재화된 듯 보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나고 자란 권위주의 체제 특유의 사고방식 일수도 있고, 여전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거보다 배는 부를 수 있는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도 언급한 ‘소문’이라는 양면적 칼이 민간에서 정부를 향하면서 동시에 정부에서 민간으로 향한 결과물일수도 있다. 

11장의 모습은 오히려 낯설면서 익숙했다. 대만은 적어도 나에게는 미중 전략 경쟁의 중요한 지정학적 장,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국 견제 수단, 그리고 중국의 핵심이익(하나의 중국)으로 이해되었다. 양안관계의 불안정성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함의를 뽑아내는 그 어떠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양안관계 속에서의 사람들이 어떤 국가와 국가관계를 마주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아래로부터의 양안관계 바로보기’운동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제정치에서 일반 개인은 주요 행위자가 아니다. 아마 일반 개인이 외교관계의 주요한 독립변수가 되기는 어려워서 일 것이다. 정책과 전략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람을 향해있어야 하지만 국가이익이라는 거시적인 목표 아래에서 개인은 계속해서 매몰되는데, 어쩌면 이는 국가가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정책이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와 외교 관계가 지속되면서 개인이 지속적으로 이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은은한 폭력’일 수도 있다. 양안관계, 전쟁 이후의 대만이라는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떠한 이야기를 가져왔고,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반대로 국가관계와 국가의 폭력을 설명하는 10장의 내용은 굉장히 낯설뿐이었다.

양안관계와 개인이라는 문제에서 사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중국 상관없이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여성이 약자라는 이유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와 이 문제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이 이 양안결혼문제에서 겹쳐보였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11장의 목적이 중국의 일면을 다루고 중국과 한국이 가져온 문제가 사실상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면 이에 동의한다. 외교관계에서 발생하는 약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려 했다면, 그 목적을 달성했다 볼 수 있다. 다만, 양안관계를 이주여성의 문제로 봐야만 했을까. 왜 굳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국한하여 젠더문제까지 건드려야 했을까. 양안조례라는 제도가 대륙에서 온 여성 외성인들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성별에 상관이 없었다는 점에서 해당 제도로 인해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포함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여성이 더 약자이기 때문에, 혹은 대만 사회에서의 ‘돌봄 노동자’의 비율에서 외성인 여성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양안관계를 바로 보기위해서는 양안결혼만이 갖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여 그 특수성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특히 문경연의 논문이나 칼럼에서 전쟁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퇴역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돌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동향의 여성들을 대만으로 ‘제한적으로’ 이주시켜 이 ‘돌봄’을 전가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차라리 이러한 내용이 이 10장에서 주로 다루어졌다면 젠더문제까지 건드는 작가의 주장에 더욱 동의할 수 있었을 것 같다. 

12장에서 언급한 사드문제 역시 이를 단순화하면 국가의 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경우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드배치 문제, 중국의 경우에는 정책이 특정되지는 않지만 시진핑 정권 이후에 진행된 애국주의 운동과 반한감정과 한국 상품에 대한 보이콧에 정부가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 등 개인의 이익은 그 속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에 개인들은 중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판매하는 물건과 서비스에서 ‘한국’을 지우는 ‘적응’의 형태로 문제를 해결한다.  

국가와 개인의 접면,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민간이라는 애매모호한 공간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가 중심적으로 중국이라는 현상을 바라보아 느꼈던 갈증이 일부 해소되었다. 중국의 민간을 접할수록 한국의 민간이 떠올랐고,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각 국가의, 혹은 각 정치체제 아래에서의 민간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 각 개인은 그 민간의 영역에서 어떠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개인-(민간)-국가라고 했을 때, 중국의 개인과 민간, 국가는 각기 어떻게 정의될 수 있으며, 어떠한 관계성에 있는지 질문만 마주한 채 이 책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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