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과학혁명의 구조>규칙의 준수도, 변화에 대한 저항도 변화를 막을 순 없다2023-03-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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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0329 발제 – 아라차



규칙의 준수도, 변화에 대한 저항도 변화를 막을 순 없다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정상과학 연구로 과학자들은 과학 지식의 범위와 정확성을 확장한다. 과학 연구가 갖는 보편적 이미지는 이런 모습이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에 맞는 실험과 규칙을 준수할 뿐,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뜻밖의 현상이나 새로운 이론을 발견했다. 패러다임 내에서 하는 연구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유발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발견(사실의 새로움)과 창안(이론의 새로움)에 대해 고찰해 보면, 의외로 사실과 이론 사이의 구분이 지극히 작위적인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발견은 변칙현상의 지각, 즉 자연이 패러다임에 맞는 예상들을 어떤 식으로든 위배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런 변칙현상에 대한 인식이 탐험을 확장시킨다. 이 탐험은 변칙현상이 패러다임 이론을 조정하는 경우에 끝난다. 예시로 산소의 발견 사례를 보자. 스웨덴의 약제사 셸레는 처음으로 산소 기체 시료를 얻은 사람이지만 산소 발견의 역사적 양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프리스틀리는 발견한 산소를 아산화질소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플로지스톤이 덜 들어있는 공기라고 설명했다. 1775년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의 실험에서 힌트를 얻어 “보다 순수하며 호흡하기에 더욱 좋은” 기체를 얻을 수 있는 “산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산소를 언제 발견했고, 누가 발견했냐는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낼 수는 없어도 “발견의 본질”을 조망하게 해 준다. 발견이란 이런 질문을 물을 수 있는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산소 발견의 우선권에 대한 질문은 1780년대부터 계속됐는데 이런 물음 자체가 과학의 이미지가 뭔가 빗나가 있다는 징후를 보여준다. 발견을 한순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발견의 시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복합적인 사건으로 무엇인가가 ‘그것’이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두 알아야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발견에는 분명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요구된다. 개념적 범주가 확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발견했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라부아지에는 산소의 발견에 기여하기 훨씬 이전에 기존의 플로지스톤 이론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잘못된 것을 미리 인지했다는 점은 동일한 실험을 한 프리스틀리가 볼 수 없었던 기체를 볼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뢴트겐의 X선 발견도 그의 스크린이 예상치 않은 빛을 낸다는 것을 인식함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산소의 발견과 X의 발견, 두 경우에 변칙현상의 감지는 새로움을 인지하는 길을 여는 데 필수적인 구실을 했다. 또한 패러다임에 맞는 실험과 규칙의 준수를 차근차근 이행한 결과였다.


그러나 산소의 경우 화학혁명으로 이어진 것과 달리, X선의 존재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음에도 X선은 발견 이후 10년 동안 과학 이론의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변화를 부정하는 입장이 상당히 강경했다. 정교한 속임수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었다. 예상컨대 뢴트겐의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도 음극선에서 X선은 발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X선으로 인해 이제 과학자들은 실험 장치를 모두 바꾸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장치를 도입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결정은 그로 인한 예상된 상황들만이 전개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이론상의 예측뿐만 아니라 도구적인 예상도 전제하는 것이다. 과학은 표준 시험과 표준 도구로 연구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적인 실험법과 응용은 패러다임 법칙과 이론만큼이나 과학에 필수적이다. 


두 사례는 정상과학으로부터 진전된 사례라면 전기를, 담아놓은 레이던 병의 경우, 이론 유도형 변칙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용어 자체가 패러독스처럼 느껴진다. 전패러다임 시대와 패러다임의 대규모 변혁이 진행되는 위기의 시기에는 과학자들도 추론적이며 명료화되지 않는 이론을 전개하게 된다. 단일한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았던 전기학 분야에서, 변칙적인 결과만 있고 성공적인 이론이 없던 상황에서 레이던 병이라는 장치가 등장한 것이다. 


과학에서의 새로움은 어렵게, 저항에 의해서 구현되면서, 예측에 의해서 제공되었던 배경을 거스르면서 등장한다. 변칙의 인지로 개념적 범주가 조정되고 마침내 변칙이 결과를 바꾸게 된다. 이런 과정은 정상과학이 새로움을 지향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혁신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전문화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하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상당히 저항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과학이 더 상세한 정보와 정확한 관찰과 이론의 일치로 과학자들을 인도한다. 예측된 기능을 위해 제작된 장치가 있고, 그 장치를 통해 예측된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가 나올 때,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누군가는 새로움과 만나게 된다.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저항도 유용성이 있다. 과학에서의 유의미한 새로운 발견이 흔히 여러 실험실에서 때를 같이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은, 바로 정상과학의 강렬한 전통적 성격과 탐구가 그 자체로 변화의 길을 열어주는 지표가 됨을 보여준다.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대폭적인 변동은 새로운 이론들의 창안으로부터 비롯된다. 정상과학은 이론보다는 발견을 더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론들이 정상과학으로부터 탄생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친다. 이런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계승하여 정상과학 연구를 펼쳤으나 여러 요소가 들어맞지 않았다. 전통적인 연구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이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비판, 신플라톤주의 융성이나 여러 역사적 요소들도 전통 천문학의 붕괴를 부르고 있었다. 


화학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1770년대 초 라부아지에가 공기에 대한 실험을 시작할 무렵 기체화학자들의 수많이만 많은 플로지스톤 이론 수정안이 나오고 있었다. 하나의 이론과 관련하여 이처럼 수정안이 무성해지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상대성 이론의 탄생에도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의 수용 등 많은 배경이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이론은 정상 과학 활동의 실패를 겪은 후에 출현했다. 새로운 이론은 위기의 직접적 반응이었다.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붕괴가 일어난 문제들은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온 형태였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하나 이상의 이론이 성립될 수 있음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들이 문제를 잘 풀 수 있다고 증명되는 한 과학은 최고의 속도로 발전한다. 위기는 이 도구를 바꿀 적기에 도달했음을 가리킨다. 위기는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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