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관한 질문들》 3부 양극단의 국가 국가에 관한 질문들은 3부에 이르러 혁명이 종결된 국가를 마주한다. 2부에서 경제학, 사회학과 만나 발전한 근대 국가는 점점 더 총체적인 무엇이 되어 ‘총체적 국가’라는 개념과 만난다. 3부에서는 총체적 국가와 전체주의, 혁명과 국가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통념과 달리 저자는 총체적 국가와 전체주의가 동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체주의가 국가를 격하시킴으로써 총체적 국가 개념을 의문시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총체적 국가 개념은 독일 나치즘과 관계가 깊다. 총체적 국가 이론을 발전시킨 카를 슈미트는 국가-사회주의당(나치)에 적극 가담했었다. 슈미트는 총체적 국가를 자유주의화와 관료주의화, 사회화가 이루어진 현대 법치국가로 이해했다. 이 권위적 국가 형태는 제1차 세계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허약함이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할 때 이해하기 쉽다. 총체적 국가는 권위적인 동시에 국가의 무력함과 대중정치를 전제한다. 국가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이며, 정치의 위기는 정치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 경제적인 것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슈미트는 이를 법적 규범주의로 설명하는데, 법적 규범주의는 주권 역량 정당성을 적법성에 종속시키면서 국가를 무효화한다. 슈미트에게 법은 법의 역량과 분리될 수 없기에 이미 정치적인 문제이다. 허약해진 총체적 국가를 재정치화하는 주체는 각 이익집단(당파)이며, 슈미트는 그 구심점을 당의 수장인 총통에게서 발견한다. 물론 슈미트의 ‘총체적 국가’ 개념이 그 자체로 나치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나치 교조주의자들은 당과 운동보다 국가에 중요성을 부여한 슈미트를 신뢰하지 않는다. 당과 운동성에 집중하는 나치즘 혹은 전체주의 연구는 이후 한나 아렌트와 들뢰즈-가타리를 통해 이어진다. 특히 아렌트의 연구는 대중운동 출현과 국가-당 형태 등장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결합하여 분석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는 권력기법의 문제이며, 권력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항구적 운동에 기초한다. 사회구조의 파괴와 사회의 원자화라는 이중의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 이 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통합되지 못한 ‘대중들’이다. 계급이나 공동체에 관한 관심을 상실한 대중운동에는 운동성만이 남는다. 전시 체제와 총력전을 통해 시민들은 운동을 가속화하는 형태로 운동 내로 통합된다. 들뢰즈-가타리도 아렌트가 주목한 전체주의의 운동성과 이 운동성이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들뢰즈-가타리에게 전체주의는 본질적으로 자기 파괴를 포함하며, 여기서 총체적 국가의 완성은 ‘자멸적 국가’를 의미한다. 전쟁이론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치적 도구’라고 말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전쟁과 정치를 분리하면서 ‘전쟁 기계’ 개념을 도입한다. 전쟁 기계는 국가와 결합할 때만 정치적이다. 전쟁 기계가 국가와 결합하여 총력전에 돌입하고 극단으로 흘러간다면, 전쟁 기계의 정치적 의미는 오히려 사라진다. 무조건적 전쟁에서는 목표 없이 전쟁만이 이어진다. 총력전 기계는 오로지 파괴를 위한 국가장치를 만든다. 들뢰즈-가타리는 국가 이론을 통해서는 나치즘에서 나타나는 이런 파괴의 운동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나치즘은 국가 소멸을 막으려는 무제한적 운동성을 통해 공동체의 붕괴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혁명은 어떻게 국가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 독재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지배계급을 재조직하려는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이중의 과제였다. 혁명은 국가를 양가적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혁명 외부의 존재도 아니었고, 혁명을 지탱하는 동시에 혁명의 장애물이기도 했다. 아나키스트들과의 오랜 싸움이 보여주듯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복잡한 문제였고, 단지 국가의 파괴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생산 관계를 변혁하기 위해 점점 국가 권력 장악과 국가장치 활용이 혁명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반면에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점차 확장하면서는 국가 철폐가 생산 관계 변혁의 조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국가 기능보다 구체적인 실천들이었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에서 자발적인 정치적 실천으로 공적 기능이 인민에게 이양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바쿠닌 같은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이 정치 자체의 거부로 이어진다면, 마르크스의 입장은 정치가 다른 정치에 의해서만 타도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과정이었다. 마르크스가 부딪혔던 복잡한 문제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구체적인 일련의 과정들로 현실화되었다. 혁명의 독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마르크스의 고민은 발리바르에게로 이어진다. 프랑스혁명을 종결하기 위해 나타났던 국가에 관한 질문들은 혁명 이후 소비에트혁명이라는 다른 혁명을 지나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국가에 관한 사유가 무르익기도 전에 국가는 스스로 기능을 강화하고 점점 더 필연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지금 우리는 과연 국가를 사유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혁명이 필요하지만, 마르크스의 말대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과정인 혁명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16년 우리는 국가 수장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경험을 했다. 그때 등장했던 구호 하나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게 나라냐?’ 이런 질문을 하려면 ‘이게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에 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이 국가가 어떠해야 한다는 합의된 틀을 가지고 이 구호를 외친다고 느꼈고, 그 점에 놀랐다. 그 합의된 틀 안에서 국가가 따뜻한 가족이나 자식을 보살피는 부모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나에게 국가는 언제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존재였다. 인민의 신체와 복장을 단속하고, 습속을 통제하며, 노동과 군 복무를 비롯한 각종 의무를 강제하는 국가. 그렇기에 나는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온갖 보수 독재 정부를 감내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이런 냉소는 국가의 유해함에 대한 역치만 높일 뿐이었다. 이 책을 마무리하며 인민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대한 기대와 국가에 대한 환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