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주권과 호모 사케르 (<호모 사케르> 2장 발제)2026-05-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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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2장 호모 사케르 (호모 사케르, 신성함의 양가성, 신성한 생명, ‘생살여탈권’, 주권자의 신체와 신성한 신체, 추방령과 늑대, 경계 영역)

 

언젠가부터 호모 사케르라는 단어가 눈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번 인식하게 되니 점점 더 많이 보이고, 들렸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난민과 장애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왠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단어로 호모 사케르는 자주 쓰였다. 아감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학살된 유대인들을 이야기하려고 이 단어를 고대로부터 끌어왔다. 왜 그토록 먼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을까? 단일한 사건으로서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넘어, 정치와 국가에 내재한 폭력의 역사와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호모 사케르는 라틴어로 성스러운 (혹은 저주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로마법에 따르면, ‘죽여도 되지만, 제물로는 바칠 수 없는존재이다. 법의 보호를 받는 시민을 죽이면 처벌되지만, ‘호모 사케르를 죽이면 살인죄의 책임에서 벗어난다. 동시에 희생 제의에서도 배제된다. 여러 학자가 양립하기 어려운 호모 사케르에 관한 설명을 신성함과 연결하려 했다. 터부나 추방령을 통한 설명은 흥미롭지만, 여전히 종교적 차원에 머물렀다. 아감벤은 종교적 차원의 해석만으로는 호모 사케르의 법적·정치적 차원을 설명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아감벤에게 호모 사케르는 예외의 형태였다. 면책 살인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는 인간의 법에서 예외이고, 희생 제의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는 신의 법에서 예외이다. 이 예외는 주권을 특징짓는 신성함인 이중의 예외와 유사하다. 신성함을 통해 법이 주권적 예외 상태에 놓이듯 호모 사케르 역시 이중의 배제와 포획 속에서 신성한 생명이 된다. 아감벤은 신성함보다는 이중적 배제와 폭력의 특수성에 더 집중한다. 나아가 호모 사케르가 주권자의 추방령에 포섭된 생명의 근원적인 형상을 보여준다는 가설을 제시한다.(176)

 

호모 사케르는 주권의 추방령과 관계된 생명이다. 또한 벌거벗은 생명을 창출하는 일이 곧 주권의 근원적 활동이다.(177)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는 법질서의 양극단에서 대립하는 형상들’(178)이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로 간주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며, 누구나 그의 앞에서는 주권자로 행세하는 존재가 호모 사케르이다.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는 자신을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노모스와 퓌시스 모두로부터 예외화한다. 동시에 종교와 세속, 자연질서와 법질서 모두와 구분되는 최초의 정치적 공간을 구획한다.(179)

 

푸코가 주권권력의 특징을 생살여탈生殺與奪이라고 보았다면, 아감벤은 이 권한이 가족 내부 부자 관계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모든 자유민 남성 시민들이 태어날 때부터 생살여탈권을 갖는다고 할 때, 죽음에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은 근원적인 정치적 요소가 된다.(184~185) 결국 정치적 지배란 모든 시민에게로 확장된 아버지의 생살여탈권이며, 정치권력의 토대는 살해 가능하기에 정치화되는 생명이다. 국가는 사회적 결합이 아닌 결합을 가로막는 절연에 기반하며, 결합 자체도 내버려짐이라는 해소나 예외의 형태였다.(189)

 

생명이 정치화되는 현상은 고대 로마 황제의 장례식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왕의 장례식이 두 번 거행되는 일은 왕의 두 신체를 드러내는 일로 학계에서 이해되었다. 아감벤은 왕이 두 신체가 아니라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바로 자연 생명과 성스러운 생명이다. 이 중 성스러운 생명은 생물학적 죽음만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의례를 통해 신격화된다. 신에게 봉헌되었으나 살아남은 존재인 데보투스도 마찬가지다. 왕과 데보투스, 호모 사케르는 모두 정치적 기능과 결부된 (신성한) 생명이다.(207)

 

아감벤이 보기에 절대권력이란 자신과 타인들을 살해할 수는 있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으로 구성해내는 능력이다.(207) 주권자의 신체와 호모 사케르 신체의 대칭 관계에 주목하는 아감벤은 두 신체에서 법적·정치적 지위의 유사성과 일치점을 찾아낸다. 호모 사케르에 대한 살인이 면책되듯 왕을 살해하는 일도 살인죄로 취급되지 않는다. ‘희생물로 바칠 수 없기에 주권자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주권자의 권력은 자신의 신성한 생명에서 비롯되어 모든 존재를 신성한 생명(호모 사케르)으로 만들고자 하는 권력이다.

 

주권자가 경계와 비식별역에 존재하듯, 공동체에서 추방된 호모 사케르도 짐승과 인간, 퓌시스와 노모스, 배제와 포함 사이 비식별역과 이행의 경계선에서 살아간다. 호모 사케르는 자주 짐승과 인간 사이 존재인 늑대인간에 비유되었다. 홉스가 자연 상태를 국가의 원리로 내세우며 인간이 서로에게 늑대라고 주장할 때도 문제는 야생의 늑대가 아닌 늑대인간이다. 홉스의 주장은 아감벤에게 모두가 모두에게 벌거벗은 생명이자 호모 사케르로 이해된다. ‘늑대인간이라는 경계선, 예외 상태는 국가의 분해를 핑계 삼아 주권의 전제로 작동한다.

 

국가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주권적 결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치의 근원적 요소는 시민들의 생명이며, 추방령은 벌거벗은 생명과 주권 권력을 하나로 결합한다.(222) 아감벤은 국가에 관한 홉스의 신화를 계약이 아닌 추방령으로 읽기를 권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주권 권력과 민주주의의 관계, 국가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정치를 새롭게 사유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추방은 주권의 표식이자, 주권자의 노모스이며, 모든 영토화와 영토 구획을 가능하게 하고 지배하는 근원적인 공간화이다.(225)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홀로코스트를 반박한다. ‘홀로코스트라는 표현을 희생 제의적 아우라를 부여하는 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유대인 살해는 사형 집행이나 희생 제의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말살이었다. 유대인 살해를 광기 어린 홀로코스트로만 본다면, 우리 이해와 사유는 제한된다. 호모 사케르는 멀리 있지 않다. 추방하고 처벌하는 동시에 살리고 포섭하는 주권은 우리 모두를 호모 사케르로 만든다. 이 단어를 들을 때 느꼈던 숙연함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하나의 분명한 생명 반응이었을 그 쭈뼛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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